“무상급식…과잉복지 맞습니다”
▲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국민투표와 앞으로의 정치적 계획에 대해 말했다. 작은 사진은 오 시장이 지난 6월 20일 서울시의회 정례회에 참석해 업무보고를 하는 모습. 오 시장의 참석은 민주당 측 시의원들이 ‘초등학교 무상급식 전면 실시 조례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에 반발해 출석을 거부한 이후 6개월 만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인터뷰 내내 그가 보인 결연한 의지는 무상급식이라는 단순한 서울시의 정책을 뛰어넘는, 대한민국의 복지 시스템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임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서울시 무상급식이 대한민국 복지정책을 가를 상징처럼 돼 가고 있는 데 대해 오 시장은 집무실에서 웃음을 짓고 있었겠지만,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의 친이계 대권주자들은 “남이 깔아 논 멍석에서 춤을 춰줄 필요가 있느냐”며 짐짓 뒷짐을 지고 있었다. 적어도 오 시장이 올해 1월 돈키호테처럼 무상투표 주민투표를 강행하려고 할 때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 오 시장의 반대세력들은 뒷짐 진 손을 풀고 무상급식 테이블로 모일 채비를 하고 있다. 상황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한나라당이 최근 중앙당 차원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지원 독려를 약속하면서 이 문제가 전국구 이슈로 떠오를 조짐이다. 민주당은 여전히 김 빼기 작전을 통해 일체의 대응을 하지 않고 투표회피 전략을 견지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중앙당 수준으로 움직일 경우 맞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여기에 친이계 대권주자 김문수 경기도 지사와 정몽준 전 대표가 오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박근혜 철옹성’을 허물기 위한 사다리로 이용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 문제는 여권의 대권구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 변화는 오 시장의 대권행보에도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는 “조용하게 시장 재선 임기를 마치는 것보다 무상급식으로 사단을 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게 향후 대권행보에 유리할 것이기 때문에” 그가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건곤일척을 했다는 분석이 많다.
그런데 오 시장이 여권의 왕따로까지 몰리면서 ‘은밀하게’ 주민투표를 관철시키자 일각에서는 “아무리 서울시의회 4분의 3이 민주당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시장이 목숨을 걸고 협의를 진행했다면 180억 원이나 드는 주민투표 강행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무리수에 대한 의혹제기를 하고 있다.
기자도 오 시장이 과연 최후의 순간까지 서울시의회와 협상을 하며 180억 원이나 드는 주민투표를 끝까지 피하려는 노력을 하였는지가 궁금했다.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서울시의회와 수차례 협의를 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주민투표가 일순위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올해 1월 주민투표 아이디어를 맨 처음 낸 사람이 오 시장 본인인가.
▲지난해 12월 무상급식에 대한 서울시 조례안이 통과되기 전에 내가 ‘주민투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검토해봐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참모들이 그땐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서명도 많이 받아야 하고 시의회의 동의를 받아서 시장이 직접 제안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고 했다. 서울시의회에서 동의해줄 리도 없고 40만 8000명의 서명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초벌 검토에서 폐기가 됐다. 그러고 나서 무상급식 조례안이 통과되기 직전 의회 의장과 만나서 점심을 하면서 다시 제안을 했다. 여론조사를 해서 조금이라도 많이 나오는 쪽으로 따르자고 했는데 저쪽에서는 자기들 숫자가 4분의 3이나 되니까 통과시키면 된다라고 간단하게 생각한 모양이더라.
―바로 그 자리에서 거절당했나.
당시 의장은 한번 고려해보겠다고 했고 교육감은 ‘된다 안 된다’ 말은 안했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제안이라는 표정이었다. 분위기는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있다가 통보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조례안이 통과가 된 것이다. 하지만 당장 주민투표를 제안하지는 않았다. 그 뒤 시정 질문 기간 마지막 날 하루를 답변 거부하고 서울시의회와 대치해 지금까지 왔다.
―그럼에도 주민투표 제안이 최선이었나.
▲서울시 복지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본인이 노력할 때 혜택이 더 돌아가도록 디자인돼 있다. 그런데 소득 구분 없이 1인당 5만 원씩 그것도 현금으로 주게 되면 앞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허리띠 졸라맸을 때 혜택을 더 준다는 얘기를 어떻게 하느냐. (무상급식은) 부자들에게 아무 조건도 없이, 달라고 하지도 않는데도 주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서울시의 기본 복지체계가 깨진다. 그래서 전면 무상급식은 도저히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소득하위 30% 혜택에서 50%까지 양보를 할 테니 그쪽도 좀 양보를 해라, 이렇게 해서 계속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다가 12월 말까지 협상이 안 되고 1월에 다시 주민투표를 검토시켰다. 그랬더니 역시나 같은 결론이 났다. 그 뒤 마지막으로 의회 의장을 만나서 ‘일언지하에 제안을 거절하지 말고 모여서 한번 회의나 해 보라’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주민들이 직접 서명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8월 말경에(24일경으로 예상) 실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과를 자신하느냐.
▲두고 봐야 알겠지만 여론조사 해보면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60%가 ‘하는 게 맞다’고 답변한다. ‘투표가 실시되면 투표장에 갈 것이냐’라고 물은 질문에도 약 70%가 가겠다고 했다. 전면과 부분 급식에 대해서는 서민부분급식이 60~70%, 전면급식 찬성이 30~40% 정도 나온다. 이런 여러 가지 민심 흐름을 보면 우리가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
―최근 서울시당 운영위원회에 참석해서 이번 주민투표 결과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 유리할 것이라는 정치적 배경도 언급했는데 그 주장에 대한 근거가 무엇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겠나. 지금 이른바 ‘3무 1반’(무상 급식·의료·보육과 반값 등록금)으로 대변되는 과잉복지 시리즈가 유행이 되고 있다. 그냥 현금을 거의 나눠주다시피 하는 과잉복지 시리즈가 민주당에 의해 발의가 됐다. 그것에 문제가 있다. 아마 이번 무상급식을 둘러싼 주민투표의 의미가 단순히 문안상으로 무상급식 하나를 소득구분 없이 부자들에게 다 줄 것이냐 서민에게만 줄 것이냐 이런 것이지만 그 근저에는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라는 마치 미래의 만병통치약인 것 같은 정책흐름에 대한 시민들의 판단을 묻는 게 깔려 있다.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 시민들이 한 수 한 발 더 앞서서 본다. 당장 뭘 베풀어주고 현금혜택을 주고 하면 지속가능한 복지가 안 된다. 남유럽 같은 데 보면 과거 과잉복지 하다가 지금 무너져 가고 있다. 이번 주민투표는 3무 1반을 표방하는 과잉복지 시리즈 세력들이 내년 선거에서 이익을 보려고 하는 발상 자체에 대한 따끔한 경종의 회초리가 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무상급식 투표가 총선 대선을 치르는 한나라당에도 불리할 게 뭐가 있느냐.
―이제 무상급식은 서울시의 정책 ‘하나’가 아니라 한국 정치에서 복지이슈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이것이 내년 대선 출마를 위한 승부수라는 시각이 있는데.
▲전혀 무관하다. 왜냐하면 내가 이 논의를 제기한 지난해 말, 올해 초와 상반기의 사회 분위기를 알지 않느냐.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돈이 많이 풀리고 그것 때문에 물가가 많이 오르고 서민들이 그럴수록 더 어렵고 살림이 고통스럽고 이른바 양극화가 심해진 상황에서 ‘따뜻하게 베풀어 주겠다’고 하는 것이 선거에서 유리한데 내가 대선에 정말 뜻이 있다면 나도 그 대열에 동참하지 뭐 한다고 욕먹는 일을 추진하겠는가. 나 참 욕 많이 들은 거 알지 않느냐. ‘뭐, 밥 한 끼 먹이자는데 (오 시장이) 야박하게 군다’ 이런 식의 프로파간다가 아주 고약했었다. 그걸 혼자 고스란히 뒤집어써 가면서 뭐하려고 지금까지 이런 스탠스를 취해왔겠느냐. 더구나 자꾸 대선행보에 도움이 된다 그러는데 아니 지지율 올라간 게 뭐가 있느냐. 6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5~6% 왔다 갔다 똑같은데. 논리적으로 말이 안 맞다. 대선행보 취한다 그러면 지지율이 팍 뛰어가지고 거기에 고무가 되어서 간다, 이런 말을 해야 하는데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주민투표에 대해 당 지도부는 찬성·반대로 양분돼 있다. 선거를 앞둔 당으로서도 표를 얻기 위해 무상급식에 호의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반대파 설득작업은 어떻게 돼가나(인터뷰 5일 뒤 황우여 원내대표가 주민투표에 대해 중앙당 차원에서 독려하겠다고 선언해 오 시장으로서는 서울시당 지원 선언에 이어 일단 지원군 확보와 전국 이슈 메이킹에 성공하고 있는 양상이다).
▲남경필 유승민 최고위원 다 만났다. 다른 반대하는 사람도 만날 것이다. 만나면서 오해도 시각차도 많이 좁혔다. 남 최고는 보수정당의 가치를 지난 1년 동안 공·사석을 막론하고 언급을 많이 했다. 이게 과연 가치에 관한 투표인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다. 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진짜 보수의 가치에 관한 투표일 수 있다고 보는 데 반해 남 최고는 무상급식 그 자체로 의미를 좁혀서 보는 편이다. 누가 옳은지는 유권자가 판단할 것이다.
―반대파와의 타협 여지는.
▲앞으로 ‘워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좀 보겠다. 요즘 새 지도부가 인터뷰를 많이 하니까 한 일주일 보도내용을 보면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선거는 어쨌든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서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그쪽과 총선과 대선에 대한 전략과 공감대도 이뤄져야 하는 측면이 있는데, 박 전 대표와 이 문제를 상의했나.
▲없었다. 아직까지는 그럴 단계는 아닌 것 같은데… 뭐, 고민을 해 보겠다. 물론 청와대에도 이 문제에 대해 협조를 구하지 않고 있다.
―투표율 34%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주민투표는 투표권자 1/3 이상의 투표와 유표 투표수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안건이 통과된다).
▲올해 재·보궐 선거 때 중구청장 선거가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투표율이 31.4%에 이르렀다. 지금 현재 이 사안이 대중적인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지만 투표 날짜가 확정되는 순간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양 진영에서 투표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 한 2~3주 된다. 그때 또 달궈질 것이다. 뜨겁게 논쟁이 되다 보면 투표율을 넘기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오 시장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는 뭔가.
▲한 10%포인트 이상 차이 나는 것이다.
―투표에서 패하게 된다면.
▲그런 상황은 상정 안 한다. 지금 여론분포 보면 어느 언론사가 해도 6대 4 또는 7대 3으로 벌어지고 있다.
―만일 투표율이 미달된다면.
▲맥이 빠지는 결과다. 여러 가지 고민 중이다. 내가 주민투표를 제안하고 시의회가 받았다면 분명히 백퍼센트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인데, 지금은 그 형태가 아니라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서 서명을 받고 진행이 돼 왔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책임을 피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왔다. 요즘 여론주도층 얘기를 두루 듣고 있는데 ‘이것이 시장 직을 걸고 책임질 일이냐’부터 ‘아니다, 직을 걸어라’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다. 지금 깊은 고민 중에 있다.
―투표결과에 따라 당내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 같다. 대권 도전 선언은 아직 하지 않았는데 언제쯤 할 것인가.
▲지금 현재로서는 주민투표가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기 때문에 공정한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문제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문제다. 미리 언급하기는 아직 이르다.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서울시 신청사가 한창 공사 중이었다. 그 뒤로 멀리, 안개 낀 청와대가 보였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