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라인 ‘투톱’ MB 충성파 콜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한 후보자는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특수·공안통이 아닌 국제·기획통 출신이란 점에서 동기들과의 총장 경쟁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후 한 후보자는 검찰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총장 후보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김준규 전 총장이 물러나면서 사시 23회가 후임 총장 기수로 거론됐고, 결국 한 후보자는 쟁쟁한 동기들을 물리치고 총장 후보자로 최종 낙점됐다. 하지만 한 후보자는 ‘정실인사’ 논란과 더불어 그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고 있어 청문회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검찰 총수 등극을 눈 앞에 둔 한 후보자의 검찰 인생을 조명해봤다.
한후보자는 검찰의 ‘공룡 기수’로 불리는 사법시험 23회(연수원 13기) 출신으로,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특수·공안통이 아니라 국제·기획통 출신이다. 이 때문에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부임하기 전만 해도 동기들에 비해 총장 낙점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처져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한 후보자는 1989년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 검사를 시작으로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법무부 국제법무과장, 법무심의관 등을 거쳤다. 지난달 세계검찰총장회의 때 첫 세션 의장직을 맡을 정도로 영어실력이 뛰어나다. 검사장 승진 이후에는 법무부 법무실장, 검찰국장도 지냈다. 독립적 외청인 검찰청이 아니라 행정부처인 법무부에서 근무한 인연이 많아서인지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원칙과 강단이 있다는 평가도 듣는다. 2002년 서울지검 형사1부장 시절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자제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 씨를 ‘무고’ 혐의로 구속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한 후보자와 서울지검에서 함께 근무했던 아무개 변호사는 “당시는 국민의 정부 시절이라 김대업 씨는 정권의 영웅과 같은 사람이었다”며 “검찰 수뇌부가 만류하는데도 한 후보자는 원칙대로 구속 방침을 밀고 나갔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의 원칙과 강단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사례는 서울중앙지검장 재임 시절 단행한 일련의 개혁 조치다. 그중에서도 검찰 수사관이 조서를 작성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형사소송법 원칙대로 검사가 직접 조서를 작성하게 한 것은 일선 검사와 직원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한 후보자가 시작한 수사 패러다임 전환 실험이 상당 부분 안착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속도와 정확성을 강조한 수사 원칙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수부 검사 경력도 꽤 된다. 1986~87년 서울지검 특수2부 검사 시절에는 대검 중수부에 파견돼 당시 전경환 새마을운동본부장 비리사건을 수사하기도 했다. 부산지검 1차장 때는 항운노조비리사건 수사 지휘로 대검 중수부가 주는 ‘올해의 특별수사상’을 받았다.
하지만 한 후보자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다. 특히 청와대가 한 후보자의 사법시험 1년 후배인 노환균 대구고검장이 거쳤던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서울고검장이었던 한 후보자를 하향 이동하는 이례적인 인사를 단행하자 한때 대세론이 나오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후보자에게 기회를 준 것이고, 한 후보자 입장에선 정권과 코드가 맞는지를 보여줄 시험대에 오른 것이란 해석이었다.
검찰 안팎에서 한 후보자를 친 정권 성향의 인물로 분석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먼저 그는 검찰 내 고려대 그룹을 이끄는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 후보자의 병역면제에 대해선 누구보다 비판적이었던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한 후보자의 검증 과정에서 침묵한 데에는 고대 라인의 힘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있다.
또 한 후보자의 장인은 TK(대구 경북) 지역의 대부로 통하는 박정기 씨다. 박 씨는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 육군사관학교 14기 동기로 73년 예편한 뒤 한국중공업과 한국전력 사장을 지냈다. 현재도 국제육상경기연맹 집행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출신과 이력이 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맥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미국에서 한인방송을 운영하는 한 후보자의 친형 상기 씨가 이 대통령과 막역한 관계라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하지만 이는 과열된 경쟁 과정에서 부풀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후보자는 이에 대해 “형님은 이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다. 형님이 나 때문에 괜스레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고 말한다.
어쨌든 한 후보자가 차동민 서울고검장과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경합 끝에 낙점을 받은 것은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시험대에서 민감한 사안들을 매끄럽게 넘겨 합격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림로비, 태광실업 세무조사 직권남용, 기획입국설 등 현 정권의 비밀을 간직한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됐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 사건, 2007년 대선 정국을 달구었던 BBK 사건의 핵심 인물 에리카 김 사건 등은 큰 잡음 없이 종결됐다.
하지만 총장 승진을 염두에 두다 보니, 지나치게 몸 사리는 수사지휘를 한 것 아니냐는 내부의 불만도 없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수사한 친박 외곽조직 한강포럼 불법정치자금 사건이 용두사미로 끝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또 지나치게 정교한 수사를 일선 검사들에게 요구하다 보니, 각종 의혹 사건에서 제대로 된 성과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도 받는다. 실제로 대검 중수부가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파죽지세로 밀고 나간 것과 비교하면 삼화저축은행 수사의 성과는 매우 초라한 편이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