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도 닮은꼴…겁쟁이인가 강심장인가
▲ 7월 19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리해고 대상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해고 철회 요구 농성을 위해 회사 앞으로 모이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그렇다고 조남호 회장이 재계나 경제단체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재계 고위 인사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대한항공에만 신경 써왔을 뿐 조남호 회장과 한진중공업에 대해서는 잘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남호 회장은 필리핀 대통령훈장, 고려대 경영인상 등 특정 상을 수상할 때 짤막하게 언급된 바 있다. 필리핀 대통령훈장은 필리핀 수빅조선소 건설에 대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고려대 경영인상의 경우 고려대 출신 경영인들에게 매년 주는 상이다. 그는 현 정부 초기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인맥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1951년 1월 7일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복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4형제 중 유일하게 해외 유학을 하지 않은 ‘국내파’다. 형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동생인 고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모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남가주대) 등 미국에서 공부했다. 공부는 국내에서 했지만 해외 근무 경험은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남호 회장이 형제들과 다른 점은 공부만이 아니다. 조 회장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연애결혼을 했다. 김원규 전 교육감의 딸 김영혜 씨와 테니스 코트에서 처음 인연을 맺어 결혼까지 이어진 것이다. 조 회장은 부인과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아들 조원국 한진중공업홀딩스 상무는 2008년 3월 한진중공업 등기이사로 선임돼 3세경영의 시동을 건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 바 있다.
조 회장의 형 조양호 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성격이 걸걸해 건설과 중공업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고 조중훈 회장이 조남호 회장에게 중공업을 맡겼다고 한다. 실제로 계열분리 후 형제 간 유산다툼에서 보인 면모나 이번 영도조선소 사태를 보면 꼼꼼하고 신중하고 소심한 성격보다는 거친 성격이라는 편이 더 적합하다는 평가다. 한진그룹이 형제간 계열분리 전 조 회장은 한진그룹 내에서 줄곧 레저, 건설, 중공업을 맡으며 경영수업을 했다.
조남호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9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와 필리핀 여행을 다녀오면서 여행 경비를 대준 것은 물론 평소 강남의 고급 룸살롱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홍업 씨의 술값을 대준 것으로 2002년 <일요신문>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많게는 일주일에 두 번씩 술자리를 함께했고 외부에서 ‘미모의 여성’까지 불러왔다고 한다. 당시 DJ 정권과 가까운 항공 라이벌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견제하고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분가 전 한진그룹을 대표해 조남호 회장이 적극적으로 로비 활동을 펼친 것이다. 조 회장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남호 회장이 주목받은 것은 이번 영도조선소 사태처럼 주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다. 지난 2005년 계열분리 후 수년간 끌어왔던 ‘형제간 법정 공방’ 때도 그렇고 2003년 한진중공업과 한진건설의 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과 당시 김주익 노조위원장의 죽음, 갑자기 변화한 고배당정책, 그룹 지주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 지분 확대 등과 관련해 조남호 회장은 번번이 이름이 오르내렸다.
한진중공업 측이 자랑스레 말하는 필리핀 수빅조선소와 관련해서도 자칫 우리나라와 필리핀 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할 뻔했다. 지난 2009년 초 필리핀 상원 노동위원회가 수빅조선소의 필리핀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안전에 대해 진상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해마다 산재로 여러 명 사망하는 사건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한진중공업과 조남호 회장은 지난 2003년 지금의 영도조선소 사태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바 있다. 당시에도 한진중공업 측은 해고자와 노동조합원들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 등의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요인으로 노조와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당시 김주익 노조위원장은 크레인에 올라 조합원 복직 등을 요구하며 129일 동안 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뜻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2003년 10월 17일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뒤따라 30일에는 조합원이자 용접공인 곽재규 씨가 투신자살했다. 당시 김주익 위원장이 오른 크레인이 현재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이 올라가 있는 높이 35m의 85호다.
한진그룹이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해 한진중공업으로 출발한 직후인 1991년에는 박창수 노조위원장이 경찰조사를 받던 중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부분은 2003년이나 지금이나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는 와중에 조남호 회장 등 최대주주는 막대한 배당금을 챙겨갔다는 점이다. 2003년엔 이 배당금을 이용해 지분을 늘렸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훈장을 받고 있는 조 회장. |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말 대규모 정리해고 직후 주주들에게 174억 원이라는 거액의 배당을 실시했다. 더욱이 직원들을 내보낸 다음날이었다. 조남호 회장이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 지분 46.50%를 소유하고 있어 최대주주다. 게다가 부인 김영혜 씨와 아들 조원국 상무, 딸 민희 씨도 지분을 갖고 있어 일가가 배당금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둔 셈이다.
전국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에 따르면 “조 회장 일가가 챙겨간 주식 배당금만 합쳐도 회사 측이 해고 통보한 400명 노동자의 총 연봉”이다. 지난해에는 또 이사들의 연봉을 2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 때문에 경영 악화를 이유로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한진중공업 측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 같은 점은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돼 조남호 회장은 정치권과 노조, 일반인들에게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 심상정ㆍ노회찬 진보신당 고문 등은 연일 조남호 회장의 도덕성과 사태 해결 의지를 질타했다. 심지어 여당인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김형오 전 국회의장까지 나서 조남호 회장을 비판하고 조 회장의 귀국을 종용했다.
지난 7월 29일 손학규 대표는 아예 최고위원회의에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관련 5대 의혹을 파헤칠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가 말하는 5대 의혹이란 △조남호 회장 일가의 지분과 경영권 문제 △수빅조선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조세피난처’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는 의혹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가 일자리를 국외로 빼돌리기 위한 목적이라는 의혹 △수빅조선소의 노동탄압 의혹 △청문회 출석도 거부할 만큼 길어지고 있는 해외 출장이 도피성 아니었느냐는 의혹 등이다.
이밖에 눈에 띄는 점은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트위터를 통해 조남호 회장의 귀국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정 전 대표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현대중공업 최대주주로서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 그 성장을 체험한 인물로서 정 전 대표가 조 회장의 귀국을 촉구했다는 것이 남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정 전 대표는 지난 3일 트위터에 “조남호 회장께서 빨리 귀국하시길 바란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지 염라대왕이 아니다. 겁먹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글을 올렸다. 정 전 대표는 이전에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3년 연속 수주가 한 건도 없었다고 하는데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남호 회장을 세상에 가장 많이 알린 사건은 아무래도 한진가 형제들의 법적 분쟁일 듯하다. 2002년 고 조중훈 회장 별세 후 잠복해 있던 재산 상속 등에 대한 형제간 앙금이 2005년부터 연달아 터졌다. 2005년에는 한진 계열사 중 하나인 정석기업 차명주식 증여 소송, 2006년 대한항공에 면세품을 납품하는 업체 ‘브릭트레이딩’과 관련한 소송, 고 조중훈 회장의 기념관(부암장) 건립 문제와 관련한 소송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고 조중훈 회장은 아들 4형제에게 계열사를 골고루 나눠주기를 희망했다. 아마도 4형제가 다툼 없이 살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이 조용히 물러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큰아들 조양호 회장에게는 항공을, 둘째 조남호 회장에게는 건설과 중공업을, 셋째 고 조수호 회장에게는 해운을, 넷째 조정호 회장에게는 금융을 맡겼다.
고 조중훈 회장은 아들들의 성격과 전공을 감안해 일찌감치 관련 계열사에서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각자 전문 분야를 나눠주라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그러나 아들들은 지난 8년간 돈독하게 지내지 못했다. 조중훈 회장의 유언장에 없던 현금 1000억 원과 정석기업(정석은 고 조중훈 회장의 부모가 조 회장에게 지어준 아호로, 한진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다) 주식 7만 주가 발견된 것이 형제간 갈등을 폭발시켰다.
이를 기화로 한진 4형제는 ‘유언장 감정 의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지난 8년간 계속 치고받았다. ‘재벌 형제간의 다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한진 4형제는 늘 회자됐다. 2006년 고인이 된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을 제외하고 장남 조양호 회장과 차남 조남호-막내 조정호 회장 간의 분쟁이었다.
지난 3월 8일 부암장을 기념관으로 건립하는 문제를 두고 한진 형제가 법원의 화해안을 받아들임으로써 겉으로는 한진 형제들의 세 가지 큰 분쟁은 모두 마무리됐다. 하지만 8년간의 갈등의 골이 단박에 깨끗이 메워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재계 관계자는 “비록 법원의 화해안을 받아들였다고는 하나 만족할지는 의문”이라며 “애초에 한진 형제들의 다툼은 계열사 덩치 차이에 대한 불만에서 촉발된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고 귀띔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지금의 한진중공업 사태다. 회사 측은 영도조선소의 규모가 작고 시설이 낙후해 신규 수주가 힘들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불거진 조남호 회장을 비롯한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여러 가지 도덕적 해이가 말썽이 돼 비난을 받고 있다.
노조의 파업 철회 직후 컨테이너선 등 배 6척을 수주했다고 발표한 것도 의혹을 사고 있다. 3년 동안 수주가 전혀 없던 영도조선소가 노조의 파업 철회 직후 갑자기 수주했다는 것이 의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노사협상 타결 전부터 추진해오다 성사됐다”는 한진중공업 측 해명도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다. 거액의 배당금을 받아가고 6척의 배까지 수주했다면 더 이상 구조조정이 필요 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 과정에서 제기된 이런저런 의혹과 등 대해 속 시원하게 설명할 수 있는 조남호 회장이 이제 귀국했다. 그는 지난 10일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산시민과 영도구민, 국민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잡힌 셈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