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잠수함? ‘이대로 침몰할 순 없다’
▲ 출격준비 완료 등판하지 못하는 아픔이 지진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김병현, 그래도 아빠가 돼서 그런지 삶의 여유가 물씬 풍겨온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마음을 비워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운드에 올라가본 지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운동을 많이 하고, 마운드에도 자주 올라가야 내가 야구선수라는 느낌이 드는데, 유니폼 입고 출근해서 스트레칭하고 피칭 연습하고 간단히 런닝한 뒤 벤치만 달구다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몸도 이상이 없고, 선수도 뛰고 싶어하는데, 감독이 왜 마운드에 올려보내지 않는 건가.
▲시즌 개막 직전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한 뒤 2군에서 재활에만 매달렸다. 그후 몸 상태가 좋아졌고, 한동안 매 게임 등판하며 경기 감각을 끌어 올렸다. 2주 동안 계속 공을 던지다보니까 조금씩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간혹 한두 개는 내가 만족할 만한 공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감독이 날 마운드에 세우지 않았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내가 감독이 아니니까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즈음에 코칭스태프와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한 번은 미팅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유니폼을 갈아 입다가 미팅실로 뛰어가면서 벨트를 차고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감독이 날 보고 큰소리를 내며 화를 내셨다. 통역이 전달한 내용에 의하면, 신성한 야구장에 오면서 벨트도 제대로 채우지 않고 들어온 데 대해 지적을 했다는 것이다. 벨트를 채우며 미팅실로 들어간 게 아침부터 감독이 화를 냈을 정도의 대단한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야구장이 신성한 곳이라고 여기 일본 선수들은 야구장에서 침도 안 뱉나. 그렇다면 야구장에서 밥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가면 안 된다. 그런 곳에서 야구를 배운 조지마는 시애틀 시절 타격훈련할 때 모자를 거꾸로 쓰고 훈련했다.
-그렇다면 감독이 일부러 더 화를 내고 야단을 쳤다고 생각하나.
▲추측일 뿐이다. 내 입장에선 잘못한 게 없었고, 벨트 문제로 아침부터 그렇게 화를 낼 사안이 아니었기에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감독이(나무라 카오루)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선동열 감독님이랑 함께 생활했다고 하시더라. 한국에서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고 해도 일본에 오면 2군으로 내려간다는 말을 하면서 내 감정을 자극하곤 했다. 이건 순전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국의 좋은 선수들을 데려가서 조금의 실수가 보이면 제대로 활용하지 않거나 기다려주지 않고 2군으로 내려보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2군에 있어서가 아니라, 여기 와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니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어쩌면 라쿠텐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라쿠텐과의 연봉 계약할 때 특별한 조항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처음에 연봉 협상을 할 때 구단 측에서 얼마를 원하는지 물었다. 1년 + 1년에다 바이아웃 조항 등 조금 거창한 계약 내용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조건을 받아들이기가 불편했다. 내 공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 채 무조건 돈만 많이 받고 싶지 않았다. 괜히 잘못했다가 날 구단에 소개해준 사람한테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옵션이야 앞으로 내가 잘해서 받으면 그만 아닌가. 그래서 ‘미니멈’을 달라고 했다(30만 달러). 야구가 안 되면 몇 달 뒤에 잘라도 된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그랬더니 구단에선 오히려 내가 잘 됐을 때 일본 내 다른 구단으로 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하더라.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편으로는 계약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만족할 만한 공이 나오면 1년 뒤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돈을 받고 내 몸을, 내 공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니까 은근히 너무 양심적으로 계약을 맺었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그렇게 해서 팀 훈련에 합류했고, 시범경기 때는 좋은 투구의 내용을 선보이기도 했다.
▲3년 동안 혼자 운동을 하다가 단체 훈련을 하니까 조금씩 몸이 좋아지더라. 선발이 아닌 불펜이라 1이닝, 2이닝 정도는 막을 수 있겠다 싶었다. 컨디션이 올라왔을 때는 145㎞의 직구 스피드가 나왔다. ‘아, 이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군 선수들을 상대로 어떤 공을 던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발목 부상을 당한 것이다. 부상에서 회복하고, 계속 감독의 호출만 기다렸다. 빨리 올라가서 던져야 스프링캠프 때 찾았던 감을 잊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급기야 코치를 찾아가 기회를 달라는 얘기를 꺼냈다. 마냥 기다렸다가는 득도의 경지에 오를 것만 같았다. 그래서 2주가량은 매 경기에 등판했다. 그렇게 경험을 쌓으면서 다시 감각이 살아올랐다. 그러다 아까 말한 것처럼 그 ‘벨트 사건’으로 감독이 날 이상하게 봤는지, 다시 등판을 시키지 않더라. 그렇게 기다리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 새 시즌이 한 달 반밖에 안 남았다.
-몸이 좋아지니까 이번엔 마음이 복잡해지는 일이 생겼다. 등판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에 정말 창피했다. 미국에선 필요 없을 땐 과감히 정리한다. 그런데 일본은 자르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나한테는 하루하루가 금쪽같은 시간인데, 그저 시간 때우는 사람인 양, 하릴없이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 너무 힘들었다. 만약 이전의 김병현이었다면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팀을 나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면 사랑스런 내 딸과 아내가 날 기다리고 있고, 난 우리 가족들의 가장이었다. 그 책임감이 이전처럼 쉽게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1군 용병제도가 ‘4명 등록, 3명 동시 출전’으로 제한돼 있는데, 1군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이 용병 제도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글쎄, 그건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 세 명의 용병들도 모두 좋은 상태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배운 건 단 한 가지다. 바로 인내심. 앞으로 한 달 반 정도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올시즌 모두 몇 이닝 등판했나.
▲너무 적다보니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웃음). 올해 점수 준 게임을 설명하는 게 낫겠다. 첫 등판 때 외야플라이성 공이었는데 좌익수가 뛰어오면서 다이빙하다가 놓쳤다. 그래서 3루타가 됐고 1점을 줬다. 그 다음 게임에선 9회 주자 2루에 1아웃 상황이었다. 수비수들이 제자리에 있었더라면 잡을 수 있는 공을 전진수비하는 바람에 놓쳤다. 1점 추가! 그리고 3점 홈런 한 개 맞고, 그 다음 게임에서 주자 3루, 한 타자 삼진잡고 투아웃 상황이었는데, 감독이 갑자기 투수 교체를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안타가 나왔고 1점 득점이 됐다. 올시즌 동안 모두 6점을 내줬다. 내가 마운드에 올라가면 통역이 내 등판 횟수를 줄줄 외운다. 워낙 외울 숫자가 적다보니 그게 술술 나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시즌 끝나고 라쿠텐과의 재계약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다음 시즌에 어디서 뛸 건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겠다.
▲정말 고민이다. 전반기까지 1군에서 뛰어보고 좋아지면 미국으로 건너가려 했는데, 1군에 오르지 못하면서 일이 복잡해졌다. 솔직히 중간에 한국행을 타진해보기도 했다. 한국에서 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넥센으로 가야 한다는데, 그건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나 한국행은 개인적으로 좋은 결정은 아닌 것 같다. 아직 난 미국에서 제대로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제대로 점을 찍어야 새로운 도전도 해보는 게 아닌가. 메이저리그 선수였던 김병현이 이렇게 유야무야 미국 무대에서 사라지는 게 싫다.
▲ 센다이역 앞에서 김병현을 마중 나온 아내 한경민 씨와 딸 민주 양.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
-혼인신고는 했지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아내 머리에 언제쯤 면사포를 씌워줄 예정인가.
▲올해 좋은 마무리를 했더라면 겨울에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올해는 힘들 것 같다. 결혼식 얘기만 나오면 아내한테 절로 미안해진다. 잘 참고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라 더더욱 미안해진다.
-올시즌 FA가 되는 이대호 선수에 대해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알려졌다. 한국 스타플레이어들의 일본 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게 팀, 감독과의 궁합이다. 이대호든 알렉스 로드리게스든 뛰지 못하고 벤치에만 앉아있는다면 똑같은 후보 선수일 뿐이다. 난 옛날에 몸이 아파서 뛰지 못한 적은 있었어도 아프지도 않은데 뛰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 처지에서 후배들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할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보다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해보길 권유하고는 싶다.
인터뷰 다음날 리후야구장에서 김병현과 함께 센다이 시내까지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또다시 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아파트 15층에 살고 있는 김병현은 아파트가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진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등판을 하지 못하는 아픔이라며 속내를 내보인다.
아이 아빠가 돼서 그런지, 김병현한테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삶의 여유가 물씬 풍겨나왔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센다이역 앞에는 김병현의 전화를 받고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그의 가족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아내 한경민 씨와 딸 민주 양. 민주를 품에 안으며 연신 뽀뽀를 해대는 김병현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차분한 이미지의 한 씨는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세 사람이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했다. 비로서 ‘김병현 패밀리’가 공개되는 순간이다.
센다이=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