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에 또 다른 ‘뇌관’ 불쑥
▲ 지난 18일 국회 환경노동위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 조남호 회장이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하지만 연이은 분양실패와 시행사 대표인 최 아무개 씨의 횡령 혐의까지 발생하면서 사업은 또 다시 파행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한진중공업은 공사비 320억 원을 받지 못했고, 삼성생명 역시 이자 지급을 받지 못해 큰 손실을 입었다.
여기에 최 씨가 지난 2007년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업은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현재 베르시움 사업은 공정률 70% 수준까지 진행된 뒤 멈춘 상태다. 한진중공업도 ‘못 받은 공사대금이 많고 분양 전망도 어둡다’는 이유로 공사를 중단했고, 공사가 중단되자 시행사는 파산했다. 급기야 파산관재인이 임명돼 6차례에 걸쳐 사업 매각을 시도했지만 계속 유찰됐다. 사기와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최 씨는 2009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사업 파행은 천문학적인 피해액과 수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또한 분양자들과 시행사, 시공사 간의 얽히고설킨 소송전으로 확전됐다. 시공사인 한진중공업과 자금대여사인 삼성생명도 지리한 법정공방을 벌였다. 삼성생명이 손실의 책임을 한진중공업에 전가하며 2006년 손해배상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소송의 핵심은 시행사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시공사인 한진중공업이 사업시행권을 인수할 의무가 있는지와 건물 준공의 책임 여부였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시행사에 대해 지급보증이나 연대보증을 서지 않았다. 치열한 법정공방전 끝에 1, 2심 재판부는 ‘시공사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하고 한진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시공사의 책임여부 등을 다시 알아보라며 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이에 고등법원은 지난 1월 한진중공업에게 시행사업을 대신 진행하지 않은 책임을 물었다. 결국 한진중공업은 삼성생명에 348억 원을 배상하고 이자 375억 원을 지급해야 했다. 떼인 공사비까지 포함하면 총 1043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셈이다.
문제는 한진중공업이 1000억대의 손실을 입었지만 사건이 여기서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베르시움 수분양자 20명이 지난 5월 조남호 회장과 최 씨 등을 사기분양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에 짓던 주상복합건물 ‘베르시움’ 전경. 공정률 70% 수준까지 진행된 뒤 공사가 중단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고소인들은 고소장을 통해 “종로구청의 분양 및 분양광고 중지명령이 있었다는 사실은 계약을 체결하거나 체결하려고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항이다. 만약 그 같은 명령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고소인들은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고, 계약을 체결한 사람이라도 그 후에는 중도금을 지급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피고소인들은 분양 및 분양광고 중지명령이 있다는 사실을 계약자 및 분양신청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며 “결국 피고소인들은 서로 공모해 사실을 은폐함으로써 고소인들이 계약금 및 중도금을 지급하게 했고, 이는 편취행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시공사인 한진중공업이 관할 구청의 분양중지명령 등을 통지 받은 만큼 대표이사인 조 회장 또한 이를 인지했을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조만간 조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시효도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본 건의 공소시효는 2010년 4월에 이미 만료됐다. 하지만 같은 건으로 최 씨가 2007년 기소돼 2009년에 유죄가 확정된 만큼 그 기간은 시효가 중단돼 2012년 2월 19일까지는 시효가 연장된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들은 종전 고소 내용 외에 분양과 관련한 자금횡령 등 추가 의혹이 제기된 만큼 조 회장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고소인들의 대리인을 맡고 있는 정인봉 변호사는 8월 17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수백명이고, 피해액 또한 수백억에 달한다. 시공사인 한진중공업에 통보된 종로구청의 중지명령 등을 대표이사인 조 회장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분양을 강행해 피해자들을 양산했다는 점에서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도 조 회장을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조 회장과 한진중공업 측의 입장을 듣고자 수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복잡한 회사 내부사정 등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과연 한진중공업 사태로 국회에 출석해 곤욕을 치른 바 있는 조 회장이 이번엔 사기분양 건으로 검찰청사로 출두하는 수모를 겪게 될지 검찰의 수사 추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