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연하와 결혼 ‘섹슈얼 파워’ 과시
▲ 영화 <미녀 삼총사 2>에서 데미 무어(오른쪽)와 캐머런 디아즈. |
1962년 뉴멕시코의 로스웰에서 태어난 데미 무어의 유년기는 험난했다. 아버지는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가정을 포기한 채 어디론가 사라졌고 재혼한 어머니는 첫 딸인 데미를 낳았다. 하지만 데미의 부모는 알코올중독자였고 툭하면 직업을 바꾸는 아버지 때문에 마흔 번이 넘는 이사를 다녔다. 게다가 어린 데미 무어는 심한 사시로 안대를 하고 다녀야 할 정도였고 신장 질환마저 앓고 있었다.
동네 친구였던 나스타샤 킨스키의 권유로 배우를 꿈꾸게 된 무어는 16세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화보 모델 생활을 시작했고, 연기 수업을 거친 후 스무 살 때 배우가 된다. 무어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계기는 인기 TV 시리즈였던 <제너럴 호스피털>이다. 이때 얻은 인기는 그녀를 청춘스타의 길로 이끈다.
<리오의 연정>(1984) <세인트 엘모의 열정>(1985) 그리고 <어젯밤에 생긴 일>(1986), 데미 무어는 유망주로 떠오르며 이른바 ‘브랫 팩’(Brat Pack. 1980년대에 주목받던 청춘 영화의 스타들)의 일원으로 각광 받는다. 코카인을 끊었던 것도 이 시기. 18세에 뮤지션 프레디 무어와 결혼했다가 5년 만에 이혼한 그녀는 1987년에 브루스 윌리스와 결혼하면서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임신 중에 출연한 <세븐 싸인>(1989)에서 만삭 누드를 선보였던 그녀는 1990년 <사랑과 영혼>으로 최고의 흥행 스타 반열에 오른다. 청초한 청춘스타 이미지에서 좀 더 공격적인 섹슈얼리티로 변하는 것도 이 즈음이다. <은밀한 유혹>(1993)에선 빚을 갚기 위해 백만장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폭로>(1994)에선 부하 직원을 성 희롱하는 여성 상관이 된다. <주홍글씨>(1995)의 여주인공이 된 것도 이 시기. 악평이 쏟아지긴 했지만 <스트립티즈>(1996)에선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스트립 댄서가 된다. 그리고 목소리 연기를 맡은 <노틀담의 꼽추>(1996)에선 에스메랄다였다. 제작자를 겸한 <더 월>(1996)에선 낙태의 고통 속에 죽어가는 여성이 돼,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1990년대 할리우드에서 데미 무어는 성적으로 가장 파격적이고 화려한 캐릭터였으며 가장 많은 돈을 받는 배우였다. <노틀담의 꼽추>의 목소리 연기로 할리우드 여배우로는 최초로 1000만 달러 개런티를 돌파했던 그녀는 <스트립티즈>에서 1250만 달러를 받으며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 이후 무어의 기록은 줄리아 로버츠에 의해 깨진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그녀의 실험이 극에 달한 작품은 <지. 아이. 제인>(1997)이었다. 네이비실 대원이 되어 삭발 투혼을 발휘하는 그녀는 남성보다 강인한 육체이며 한편으로는 동성애자로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기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모성성을 드러내는 여성이었다. <세븐 싸인>에 이미 만삭으로 출연한 바 있는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던 1991년에 <베니티 페어> 표지에 만삭 누드로 등장했고, 셋째를 가졌던 1992년에도 만삭 상태로 <베니티 페어> 표지를 장식했다.
재미있는 건 <스트립티즈> 개봉 전에 출연한 ‘데이비드 레터맨 쇼’의 에피소드. 영화 속의 그녀가 너무 뚱뚱하다는 소문이 돌자 직접 출연한 그녀는 속옷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어버리는 ‘사고’를 쳤다.
브루스 윌리스와의 이혼과 연이은 영화의 실패로 슬럼프에 빠졌던 그녀가 다시 화려하게 컴백한 작품은 <미녀 삼총사 2>(2003). 이 영화에서 그녀는 ‘비키니의 화신’인 캐머런 디아즈와 과감히 ‘맞짱’을 떠 절대 밀리지 않는 노익장(?)을 과시한다.
단순한 성적 매력이 아니라 ‘섹슈얼 파워’를 자랑하는 데미 무어가 다시 세간의 관심사가 된 건 세 번째 결혼 때문이었다. 윌리스와의 이혼 이후 콜린 패럴, 오웬 윌슨, 토비 맥과이어 등의 연하남과 염문을 뿌리던 그녀는 16세 연하인 애시튼 커처(무어의 큰딸과 열 살 차이)와 결혼했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인디언의 피가 흐르는 정열적인 눈빛의 데미 무어는 너무 착하거나 그저 예쁘기만 한 할리우드 여성 캐릭터를 ‘쎈’ 이미지로 정면 돌파하며 숱한 논란을 낳았던 스타일의 여배우다. 또한 요부와 헌신적인 엄마와 페미니스트와 여전사가 공존하는 여배우이며 무심하게 “내가 나쁜 X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나도 잘 안다”고 내뱉는 여배우이기도 했다. 만약 앤절리나 졸리도 데미 무어가 개척한 길이 없었다면 절대 안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