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26일 방송되는 KBS1 '동행' 346화는 '열세 살 영준이의 걱정말아요' 편으로 꾸며진다.
벌써 5년째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폐지를 줍는 열세 살 영준이. 하지 말라는 할머니의 만류에도 고집을 꺾는 법이 없다. 어릴 적 이혼 후 집을 떠난 엄마와 심한 우울증으로 잦은 병원 생활을 하는 아빠 대신 영준이에겐 할머니가 전부나 다름없다.
지난해 여름 허리와 목 디스크 수술까지 받은 할머니를 홀로 보낼 수 없어 늘 할머니의 수레를 함께 끌고 나서는 영준이. 폐지 시세가 오르면서 줍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경쟁자 걱정에 줄어든 폐지 양까지 걱정하는 열세 살 답지 않은 소년이다.
폐지를 줍고 돌아와 피곤할 법도 한데 할머니를 위한 마사지에 설거지, 빨래까지 할머니를 돕는 일이라면 우선 두 팔부터 걷어붙이고 보는 영준이. 지난날 넘치는 사랑으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할머니가 조금씩 편해질 수 있도록 할머니의 사랑에 천천히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올해 일흔셋의 할머니는 자나 깨나 아들 걱정에 손자 걱정이 가득하다. 아들과 며느리의 이혼으로 8개월 때부터 영준이를 키워온 할머니. 일 년에 몇 개월씩 병원 생활을 하는 아들 대신 할머니는 어린 손자를 등에 업고 시장에서 장사며, 아파트 청소, 가사도우미 등 안 해본 일 없이 돌봐왔다.
그렇게 품에 안겨 자라던 손자가 어느새 열세 살이 되어 할머니를 돕겠다 손수레를 끄는 모습을 볼 때면 기특함보다는 미안함이 앞서는 할머니. 보기도 아까운 손자를 일찍부터 고생시키는 것 같아 늘 마음이 아파진다. 말해주지 않아도 어려운 사정을 알고 일찍 철이 든 영준이. 좋은 옷 한 벌을 못 사줘도, 다 낡은 책가방을 메고 다녀도 불평하거나 사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늘 괜찮다는 말부터 먼저 나온다.
평소에는 아들과 함께 모은 폐지를 가져다 팔았지만 아들이 입원하면서부터 3개월째 쌓여만 가는 폐지. 몸이 좋지 않은 할머니의 속도로 40분도 더 걸리는 고물상까지 무거운 수레를 끌고 가기란 쉽지 가 않다. 게다가 매달 40만~50만 원가량의 아들 병원비도 내기 힘든 상황에 월세도 벌써 3개월째 밀려있는 상황이다. 막막한 형편에 손자까지 돌봐야 하는 할머니의 한숨이 늘어만 간다.
영준이에게는 세 가지 목표가 있다. 첫 번째는 '질풍 효도'. 다른 친구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때 본인은 효도를 하겠단다. 두 번째는 폐지를 줍는 시간 외에 하루 4시간씩 공부를 할 것. 그리고 마지막은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아빠도 아프지 않고 할머니와 자신도 폐지를 줍지 않고 다른 가족들처럼 그저 평범한 하루들을 보내고 싶다는 영준이. 사실 영준이도 처음부터 할머니를 돕는 일이 쉬웠던 건 아니었다.
한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도 당하고 힘든 시간들도 보냈던 영준이. 물론 지금은 다 함께 친구가 되어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 그때의 힘들었던 시간들이 영준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영준이는 아픈 할머니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게 속상하기만 하다.
최근 4개월째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빠 걱정에 부쩍 근심이 가득해진 할머니. 할머니의 걱정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걱정 말라는 위로를 전해보는데 사실 영준이도 아빠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들어 기운이 없고 밥을 안 드신다는 얘기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괜한 걱정이 밀려오며 영준이의 근심도 더해간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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