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파 ‘뒤뚱’ K리거 ‘으쓱’ ‘붙박이’는 없다
▲ 지난 6월 축구대표팀이 세르비아와 친선경기에서 2 대 1로 승리를 거둔 후 응원석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분위기를 되살려라!
월드컵 예선을 통해 무엇보다 바닥까지 추락한 신뢰와 축구 붐을 되살려야 한다는 숙제를 안은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프로축구 K리그 판에 한창 승부조작과 불법 스포츠 베팅의 파장이 불거졌을 때(물론 창원지검의 집중 수사가 끝난 건 아니다. 수사 종결 선언은 아직 없다. 항간에서는 11월까지 수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실망했던 축구 팬들에게 따스한 위안을 안겨준 것은 다름 아닌 조광래호였다.
“축구? 승부조작 한다며?”라고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던 일부도 대표팀의 퍼포먼스만큼은 인정하고 갈채를 보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한껏 위축돼 있던 축구인들도 현장에서 만날 때마다 “우리에게 유일하게 희망을 주는 게 그래도 대표팀이다. 월드컵 때만 반짝 인기를 누린다는 의미에서 ‘한국 축구 존재 가치는 대표팀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있지만 조광래호의 선전을 보며 충분히 위안을 삼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렇듯 거듭된 A매치에서 쾌속 순항을 12경기까지 늘리며 한참 승승장구했던 대표팀이었지만 불과 하루아침에 쌓았던 모든 걸 잃어버렸다. 허정무호가 2010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동아시아선수권에서 ‘공한증’에 시달려온 중국에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던 1년 전 그때보다 일본전 패배를 통해 팬들은 배 이상의 아픔을 곱씹어야 했다.
하지만 분위기를 다시 지필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열려있다. 레바논이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아시아 3차 예선에서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국가들은 무시할 수는 없지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상대들이다.
레바논과의 1차전이 9월 2일 홈그라운드인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치러진다는 점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첫 단추를 자칫 잘못 꿸 경우, 예선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끝 모를 추락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모두가 바라는 시나리오대로만 간다면 조 감독과 거듭 갈등을 빚어온 축구협회 내 고위 인사들과의 파열음도 줄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듯해도 불신과 반목이란 석연치 못한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있다. 언제든 다시 마찰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선수 차출과 (성인대표팀-올림픽대표팀 간) 선수 선발 기준을 놓고 이미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조광래호와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관계는 마냥 매끄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조광래호는 축구계 안팎의 우려와 곱지 않은 시선을 벗어나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모두 안고 있다.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라
레바논과 홈경기에 이어 쿠웨이트 원정 2차전을 치르게 될 한국 축구에 바라는 결과는 당연히 승리. 하지만 단순한 승점 3점을 확보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다.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도 완벽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앞서 거론된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라도 내용과 결과라는 두 마리 토끼몰이에 모두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각오에 비해 대표팀 선수단의 기류는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주전들이 대거 이탈해 풀(Full) 전력이 아니다. 홈-원정으로 이어지는 이번 소집 스케줄을 준비하며 조 감독은 ‘2% 부족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왼쪽 풀백 김영권(오미야)은 다행히 일본전 때 입은 발목 부상에서 회복돼 썩 나쁘지 않은 모습으로 컴백했지만 다용도 카드로 활용하고 있는 독일파 구자철(VfL볼프스부르크)은 팀 훈련 도중 왼쪽 발목 인대가 부분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구자철의 부상에 조 감독도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최초 볼프스부르크 구단은 ‘수개월 이상 그라운드를 떠날지도 모른다’고 발표했지만 다행히 예상은 자기공명영상(MRI) 진단 결과, ‘2~4주 이후 회복’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몸 상태가 100% 컨디션이 아닌 선수의 출전 여부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은 결코 달갑지 않았다. 구자철은 본래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는 물론, 플레이메이커를 겸한 중앙 미드필더와 좌우 측면 날개로도 활용이 가능한 소위 ‘멀티 플레이어’의 전형이다. 그간 조광래호도 여러 가지 포지션을 주문했고, 구자철은 이를 비교적 잘 수행했기에 전체적인 전술의 틀을 다시 짜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계속 이어지고 있는 향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숙제도 있다. 1월 카타르 아시안컵이 종료된 이후 한국 축구가 가장 고민해온 부분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항상 거론되는 얘기가 바로 ‘포스트 (박)지성-(이)영표’ 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2000년대 이후 대표팀의 터줏대감이었던 스타플레이어 둘의 빈자리는 유독 크게 느껴지고 있다.
그럭저럭 이영표의 자리는 김영권으로 메웠고, 서브 멤버를 놓고 고민하는 수준이지만 박지성의 그림자는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구자철을 이리저리 돌려 세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번에 선발된 선수들 외에도 몇몇 선수들의 이름이 조심스레 거론된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꽤 높은 가운데 이천수(오미야)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윙 포워드 카드로 적합하다는 평가다. 농익은 실력은 많은 아픔을 겪었음에도 출중한 편이다.
다만 전 소속 팀 K리그 전남 드래곤즈와의 갈등과 해외 진출, 돈 문제 등 이런저런 구설에 오른 적이 많아 “실력 못지않게 인성부터 철저하게 갖춰야 하고, 도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조 감독의 대표팀 선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다.
#유럽과 K리그 사이에서
해외파 중용 시대는 당분간은 없다고 보는 편이 옳은 듯하다. 유럽 무대를 누비는 이들이 현재 대표팀 전력의 핵심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해외파’라는 타이틀이 꼭 주전 경쟁에서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실속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전에서 패하고 귀국길에 오르기 직전, 조 감독은 참패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한국 취재진에게 “유럽파의 플레이가 확실히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움직임도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허탈해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유럽 무대에서의 출전 여부였다. 경기력과 실전 감각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있으니 자신의 기본 역량마저 펼쳐내지 못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일본 J리그 멤버들과 카타르 등 중동파는 별개로 치고, 19세 새내기 손흥민(함부르크SV)과 기성용(셀틱FC) 정도 외에는 유럽 무대에서 만족할 만한 출전 시간이 보장되는 선수들이 극히 부족하다. 사실 기성용도 붙박이 주전이 된 건 지난 시즌 후반부부터였다. 거의 해외파 전원이 각급 유럽 무대에서 뛴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오른쪽 풀백으로 펄펄 날고 있는 차두리도 최근 들어 페이스가 뚝 떨어져 우려를 더하고 있다.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고도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완전한 주전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다. 대표팀에서의 경험적인 요소는 인정받을 만한 하지만 31세라는 나이를 감안할 때 이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동안 해외파를 전력의 핵심으로 여겨온 만큼 분명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더불어 K리그의 비중이 점차 높아질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대개가 소속 팀에서 주전급으로 활약 중인 일본과는 아무래도 비교하기 어렵다. 해외파라고 섣불리 뽑았다가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기보단 차라리 국내 리그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실력과 경험, 감각을 꾸준히 유지하는 편이 낫다는 목소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조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축구협회가 해외파를 대상으로 대표팀 차출 협조 공문을 각 구단에 발송하기에 앞서 “K리그를 좀 더 살펴보고 명단을 최종적으로 짜겠다”고 했던 것 역시 이러한 맥락이었다.
K리그의 수준도 해외 경험을 지닌 멤버들의 계속된 유입으로 예전에 비해 높아졌기 때문에 예전보다 국내파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대표팀 자체의 경기력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분석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K리그 승부조작 처벌 잣대 논란
“유명무죄, 무명유죄 아니냐”
그동안 쌓인 게 많은 듯했다. K리그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 기소됐거나 불구속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는 많은 프로축구 선수들의 부모들은 어렵사리 전화통화가 연결될 때마다 “아들이 저지른 잘못은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정확히 말하면 ‘유명무죄, 무명유죄’의 의미였다.
사실 이들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모든 상황과 기준이 애매모호했다. 프로축구연맹은 5월 말 대전, 광주, 포항 등 최초 수사를 통해 승부조작 혐의가 입증된 선수들에게 영구제명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2차, 3차 수사로 이어지며 창원지검과 군 검찰에 불려 들어간 일부 스타급 선수들에게는 일종의 혜택(?)이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수사가 진행되며 연루자들이 끊이질 않자 프로연맹이 검찰로부터 먼저 혐의 의심자들을 전달받았고, 이를 각 구단들에 통보하면 구단이 설득해 선수들로 하여금 검찰 조사를 받게 하는 형태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이는 ‘자진신고(실제로는 압박 신고)’로 포장돼 차후 형이 구형될 때 얼마간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한 무명 선수의 부친은 “내 아들만 용서해달라는 게 아니다. 다만 똑같은 기준과 잣대가 적용되는 게 진정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이름값이 높고, 돈이 많은 선수들은 좋은 변호사를 구해 이리저리 빠져나가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다면 어떻게 ‘불법 행위를 뿌리뽑겠다’는 축구계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며 한참을 흐느꼈다. [현]
“유명무죄, 무명유죄 아니냐”
그동안 쌓인 게 많은 듯했다. K리그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 기소됐거나 불구속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는 많은 프로축구 선수들의 부모들은 어렵사리 전화통화가 연결될 때마다 “아들이 저지른 잘못은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정확히 말하면 ‘유명무죄, 무명유죄’의 의미였다.
사실 이들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모든 상황과 기준이 애매모호했다. 프로축구연맹은 5월 말 대전, 광주, 포항 등 최초 수사를 통해 승부조작 혐의가 입증된 선수들에게 영구제명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2차, 3차 수사로 이어지며 창원지검과 군 검찰에 불려 들어간 일부 스타급 선수들에게는 일종의 혜택(?)이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수사가 진행되며 연루자들이 끊이질 않자 프로연맹이 검찰로부터 먼저 혐의 의심자들을 전달받았고, 이를 각 구단들에 통보하면 구단이 설득해 선수들로 하여금 검찰 조사를 받게 하는 형태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이는 ‘자진신고(실제로는 압박 신고)’로 포장돼 차후 형이 구형될 때 얼마간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한 무명 선수의 부친은 “내 아들만 용서해달라는 게 아니다. 다만 똑같은 기준과 잣대가 적용되는 게 진정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이름값이 높고, 돈이 많은 선수들은 좋은 변호사를 구해 이리저리 빠져나가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다면 어떻게 ‘불법 행위를 뿌리뽑겠다’는 축구계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며 한참을 흐느꼈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