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10일 방송되는 KBS 'UHD 환경스페셜'은 '먹다 버릴 지구는 없다' 편으로 꾸며진다.
한 해 동안 지구에서 생산되는 음식은 40억 톤. 그 중 3분의 1은 식탁에 오르기도 전에 버려진다. 반면 세계 인구의 약 11%는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끼니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막대한 양의 음식물쓰레기가 끊임없이 배출된다.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1조 5400억 원에 달하는 식품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버려진다.
음식물쓰레기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도 꼽힌다. 전체 탄소 배출량의 8%가 음식물쓰레기에서 온다. 1년에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를 40톤 트럭에 담아 일렬로 세우면 지구를 7바퀴 돌릴 수 있는데 이것을 처리하는 데만 지구 담수의 21%가 사용된다.
많이 생산하고, 많이 버리는 풍요의 역설.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에 이어 방송되는 '먹다 버릴 지구는 없다'는 버려지는 식품에 주목한다.
2021년 11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연사로 나섰던 덴마크 청년 맷 홈우드. 그는 3년째 코펜하겐 마트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포장도 뜯지 않은 식품들이 얼마나 버려지는지 기록하고 있다.
전날 포장된 돼지고기와 할인 스티커도 붙지 않은 닭고기까지 제작진과 동행한 날 그가 발견한 음식들은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는 쓰레기통에서 수확한 것들을 집에 가져가 요리를 하곤 한다.
그리고 환경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과 함께 나누며 이 식품 문제를 알리고 있다. 날짜가 한참 남은 채 버려진 파스타와 하나가 깨져서 한 판째 버려진 달걀은 버리는 음식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지구 한편에서 멀쩡한 음식이 버려지는 동안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굶주림에 고통 받는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했던 케냐 북부에서는 2년째 기록적인 가뭄이 지속되고 있다.
주민들이 목축을 하며 자급자족하던 땅은 희망 없는 불모지로 변했다. 이 곳에서 먹거리를 구하는 것은 어렵고도 절박한 생존의 문제다. 이처럼 탄소배출을 거의 하지 않은 많은 나라들이 지구 온도 상승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재난에서 빗겨난 부유한 나라에서는 멀쩡한 음식을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과연 버려지는 음식과 기후변화는 무관한 것일까.
부유한 나라에서 고민 없이 버려지는 식품들은 전 세계의 막대한 자원을 사용해 생산된다. 가공식품에 사용되는 팜유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으로 손꼽히는 인도네시아의 칼리만탄. 언제부터인가 건기만 되면 이곳에서 몇 달째 숲이 불타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팜유 농장을 만들기 위해 숲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화재를 일으킨 것이다. 숲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식품의 수요가 높아질수록 숲은 대형 농장으로 개간되고 그곳에 살던 생명은 갈 곳을 잃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버릴 음식을 위해 자원이 고갈되고 온실가스가 배출되어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일 버려지는 음식물의 양만 무려 1만 4000톤에 이르는데 이 중 97%가 자원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안심해도 되는 걸까. 제작진은 음식이 버려진 이후의 경로를 추적했다.
음식물쓰레기를 실은 트럭들이 하루에도 수십 대씩 드나드는 서울의 한 음식물자원화센터. 유입된 음식물쓰레기는 거저 재활용되지 않는다. 들어오는 음식물 사이에서 일일이 비닐과 나무젓가락 같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분쇄부터 건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야 동물 사료로 재탄생한다.
이렇게 매일 음식물쓰레기는 사료나 비료로 재탄생되지만 음식물쓰레기로 만든 사료와 비료는 거의 판매되지 않는다. 지자체는 이를 무상으로 배포하지만 농가에서는 오히려 거부하는 현실이다.
돼지열병 등과 같은 전염병에 대한 우려와 악취, 침출수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음식물쓰레기의 90%는 오염도가 높은 물인 음폐수가 된다. 이는 비료나 사료로 재활용도 불가능하다. 매립지로 운반해 약품과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해야만 음폐수를 정화할 수 있다.
음식물쓰레기는 기후변화를 촉발하는 거대한 탄소 배출원이기도 하다. 음식물쓰레기는 이산화탄소보다 21배 강한 온실가스인 메탄가스를 뿜어낸다.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식품법정책클리닉 교수 에밀리 브로드 레이브는 더 많은 음식을 버릴수록 더 많은 사람이 굶주리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1조 5400억원에 달하는 식품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버려진다. 마트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식품들이 들어오고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음식들도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선진국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시행하고 있다. 유통기한은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을, 소비기한은 실제로 식품을 섭취해도 안전한 기간을 말한다.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10~20% 정도 길다.
2023년 1월부터 우리나라는 유통 기한을 폐지하고 소비 기한을 도입한다. 먹을 수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유통 기한 탓에 버려지는 음식물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형 마트들의 '초신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당일 판매, 당일 폐기를 내세운 초신선 마케팅의 바탕에는 갓 생산한 식품이 더 우수하다는 인식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산 날짜가 다른 음식들에서 맛과 냄새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까. 제작진이 일반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유통이 갓 시작된 식품과 실험 당일 유통기한이 만료되는 식품 간의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달걀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안전했고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포장 후 14일까지 안전성에 문제가 없었다. 초신선 마케팅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다.
2016년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대형 마트의 재고 식품 폐기를 금지했다. 면적 400 제곱미터 이상의 마트가 팔다 남은 음식을 버릴 경우 약 1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만료가 임박한 식품들은 모두 복지 기관에 의무적으로 기부해야 한다. 기부가 의무화되면서 전에는 보기 힘들던 고기, 과일 등 신선 식품의 기부도 늘었다. 높은 음식 값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도 더 건강한 한 끼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버릴 음식을 위한 지구는 없다. 지금도 지구 어디선가 숲을 태우고 만든 농장에서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낸다. 버려질 음식이 되기 위해 많이 동물들이 희생당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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