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언니처럼…” 초딩들도 병원 기웃
▲ 10대 얼짱들을 대상으로 한 병원들의 과도한 성형협찬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얼짱은 얼굴이 예쁘게 생겨 인터넷 상에서 유명해진 일반인을 뜻한다. 얼짱들은 주로 10대들이 자주 찾는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들의 화장법, 헤어스타일, 패션 등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방법으로 최근 몇 년간 10대 청소년들의 문화 트렌드를 주도해왔다. 일부 성형외과에서는 이러한 얼짱 트렌드를 상술로 활용해 ‘성형협찬’까지 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10대 얼짱들을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고 무료 ‘성형협찬’ 백태를 취재했다.
최근 10대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는 “얼짱 ○○언니가 입은 블라우스하고 교복 입었을 때 찼던 팔찌, 어디서 살 수 있어요?”라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얼짱들이 마치 연예인처럼 액세서리, 미용렌즈, 옷 등을 협찬받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 덕분에 ‘코 묻은’ 돈으로 유명 메이커 옷을 사 입고 ‘진한’ 화장을 시작하는 10대들은 남녀 구분 없이 급증하고 있다.
얼짱 협찬 마케팅을 해온 한 유명쇼핑몰 관계자 김 아무개 씨는 “기본적으로 10대들은 동 떨어져 사는 것 같은 유명 연예인보다 적당히 예쁘고 유명한 얼짱들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실제로 연예인보다 얼짱에게 옷을 협찬해줬을 때 10대 가입고객이 약 40% 이상 더 늘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얼짱 협찬 마케팅이 성형외과병원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얼짱 이 아무개 군은 한 유명 성형외과로부터 ‘수술을 무료로 해주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코 수술과 지방이식을 받았다고 한다. 이 군은 성형 협찬을 받는 조건으로 수술 과정과 수술 전후 사진을 팬 페이지에 공개해야 했다. 성형 과정을 공개하자 개인홈페이지 조회수는 급증했다.
이 군에 대한 10대 팬들의 관심도가 예전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성형 후 그는 유명 쇼핑몰들로부터 고액의 의료 협찬 제의를 받기도 했다. 이 군은 “성형하고 나서 더 유명해진 것 같다”며 흡족해했다.
얼짱 정 아무개 양도 비슷한 케이스다. 정 양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얼짱 의 소개로 성형협찬을 받았다. 정 양은 “얼짱들끼리 서로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처음 성형협찬을 받은 얼짱이 성형외과의 부탁을 받고 또 다른 얼짱들을 그 쪽에 소개시켜주면서 성형하는 얼짱들이 많아진 것 같다. 나도 이번에 소개받고 성형을 하게 됐는데 결과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기자가 ‘얼짱인데 성형을 한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얼짱으로서 좀 더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에 성형을 결정했다. 무엇보다도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무료 협찬을 제의해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답했다.
‘10대 팬들이 성형수술을 따라할 수도 있다는 우려는 안 해봤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솔직히 중학생 때 (성형)수술해서 얼짱이 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성형수술은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고 답했다. 정 양은 이어 “얼짱들 간에 대결구도가 있기 때문에 팬들을 의식해서라도 더 예뻐지고 잘생겨져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다”고 고백했다.
팬들이 늘어나다보니 얼짱들만의 책임감도 막중해졌다는 것이다. 자주 자신의 사진을 찍어 올려 10대 팬들과 소통하는 것은 물론 성형수술로 자기관리도 해야 한다는 게 요즘 얼짱들의 임무 아닌 임무라고 한다.
▲ 얼짱들의 성형 후기들이 올라 있는 성형외과 블로그 캡처 화면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최근 전단지 알바를 시작한 문 아무개 양(16)은 쌍꺼풀 수술을 해서 얼짱 홍 아무개 씨처럼 되는 게 목표다. 문 양도 처음엔 자신의 얼굴에 큰 불만이 없었으나 몇 달 전 평소 좋아하는 한 여자 얼짱의 성형수술 전후 사진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언니가 너무 예뻐서 매일 사진만 저장했다. 그 언니가 간단한 수술 한 번으로 더 예뻐진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언니처럼 될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기고,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뒤쳐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어 문 양은 “솔직히 얼굴이 예쁘면 선생님들한테 관심도 더 많이 받는다”라며 씁쓸한 현실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심지어는 ‘초딩 얼짱’도 등장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실제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얼짱 모집이 한창이다. 하루 평균 30여 개의 사진이 올라올 만큼 지원자도 많고 반응도 뜨겁다.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얼굴을 찍어 게시판에 올리면 혹독한 평가 댓글이 달린다. 초딩 얼짱 지원자 최 아무개 양(11)은 “얼짱이 되고 싶어서 사진을 올렸다가 혼쭐이 났다. 못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더니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유명한 얼짱들이 성형수술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저걸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을 졸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 양처럼 성형수술을 문의하는 초등학생의 수도 대폭 늘었다는 게 성형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0대들의 수술 문의 폭주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밝힌 성형외과 원장 박 아무개 씨는 “요즘은 소녀시대가 아니라 얼짱 사진을 들고 와서 수술시켜달라고 하는 10대들이 많다”며 “얼짱이 유명하긴 한가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진즉에 얼짱 성형협찬을 할 걸 그랬다”고 털어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성형외과 원장은 이런 현상은 10대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몇몇 성형외과병원들의 ‘고도의 상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비단 얼짱들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얼짱을 이용하려는 일부 성형외과의 장삿속에 10대들이 현혹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현재 국내 성형외과 시장은 과포화상태다. 한 해 평균 성형외과 전문의가 80여 명 넘게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자극적인 홍보에 총력을 기울여서 손님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욱 원장은 “얼짱 협찬 등 성형외과들의 대대적인 홍보도 문제지만 이미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됐기 때문에 앞으로도 10대들의 성형 ‘러시’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