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선 가을이 바다에선 맛이 익어가네…
▲ 백수해안도로가 끝나는 부분에 자리한 흥곡리. 다랑논 풍경이 멋있다. |
“해수와 조수가 포구의 앞을 돌고, 호수와 산이 아름답고, 동네가 열을 지어서 사람들이 소서호라고 부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영광을 이렇게 표현했다. 중국 항저우에 있는 서호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안개가 낄 때나 해거름 때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답다는 호수다. 이중환은 어떤 이유로 영광에서 서호를 보았을까. 그 해답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영광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될 뿐이다.
영광 칠산바다는 이중환의 말처럼 고요한 호수를 연상시킨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삼각파도를 일으키며 파도가 제법 성을 낼 줄도 알지만, 벼랑 위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면 그조차도 하찮아 보이고 바다가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마치 서호처럼 안개가 끼는 날이면 영광은 그 속에 폭 잠기는데, 위대한 자연의 마술을 공짜로 감상한 기분이 든다. 안개는 한로(양력 10월8일경) 무렵 극에 달한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커지면서 법성포를 휘도는 물에서 피워 올리는 안개가 운해처럼 형성된다. 찰기 없이 풀풀 날리던 여름의 안개와 달리 가을의 안개는 묵직하게 묶여 흩어지지 않는다. 더 짙고, 더 오래도록 그 시간이 이어진다.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낭만적인 그림이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역의 시간이다.
“워메, 무땀시 안개는 요로코롬 피어가꼬 지랄이당가. 것도 하루이틀이제, 허구헌날 피어싼께 맴이 안 좋아.”
안개 때문에 평소보다 배 이상 걸려 포구로 돌아온 어부들의 하소연이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법성포는 추수를 앞두고 있다. 물돌이마을 안에 있는 황금빛 논은 대덕산에 오르면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이 된다. 대덕산이 법성포 최고의 전망대다. 법성포를 굽어보는 대덕산은 높이가 겨우 240m에 불과하다. 대덕산은 법성면 대덕리 언목마을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대덕산은 올라가는 데도 30분이면 족하다. 높이나 등산시간으로나 무척 시시한 산이다. 그러나 결코 쉽지만은 않은 산이다. ‘눈 딱 감고, 엉덩이에 힘 한 번 꽉 주고 나면 정상’이라고 얕잡아 본다면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대덕산은 쉼 없는 오르막이다. 게다가 그 경사도 제법 가파르다. 물을 챙기는 것을 잊는다면 갈증으로 고생깨나 할 것이다.
▲ 대덕산에서 바라본 이른 아침의 법성포 전경. |
해거름을 감상하기로는 백수해안도로도 좋다. 영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을 품은 곳 중 하나다. 홍농읍 가마미해수욕장에서 시작해 염산면 설도항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표정의 해안선은 자연이 선사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구간에는 건설교통부가 2005년 10월 우리나라 전역의 도로를 대상으로 공모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아홉 번째에 꼽힌 백수해안도로도 있다. 백수읍 백암리에서 구수리까지 이어지는 총 16.5㎞의 길이다. 해안에는 거북바위와 모자바위 등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자태를 뽐내고, 바로 앞 바다에는 칠산도와 송이도, 안마도 같은 섬들이 오종종 떠 있다. 해거름은 따로 뷰포인트를 찾을 것 없이 아무 길 위에서나 멈춘 후 감상하면 된다.
이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운 법성포는 불교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영광은 백제시대 불교가 처음 도래된 지역이다. 384년 동진을 거쳐 온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최초 전파한 곳이 영광의 법성포 좌우두 일원이었다. 법성포는 그 이름부터가 불교와 관련돼 있다. 법성포의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뜻한다. 바다를 마주 볼 때, 법성포 오른쪽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한 백제불교성지가 조성돼 있다. 이 성지는 종교와 관계없이 역사적인 장소로서나 법성포 조망장소로서나 탐방을 권할 만한데, 성지 위쪽 인의산에서 굽어보는 법성포 풍경이 그림 같다.
한편, 이 계절에 영광을 찾으면 빼놓지 않고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불갑사다. 영광에 불교가 전해진 후 지어진 최초의 사찰이다. 부처 불(佛) 첫째 갑(甲)자를 써서 불갑사다. 불갑사는 요즘 꽃무릇으로 황홀하다. 꽃이 먼저 나고, 잎이 나중에 돋는 이 꽃은 절로 들어가는 길뿐만 아니라 절 뒤편 산으로도 흐드러졌다. 이 절에는 보물 제 830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해 만세루, 범종루, 해불암 등의 건물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특히 해불암은 주변경치가 뛰어나 예부터 호남 참선도량의 4성지로 불린다.
논에서 노릇하게 벼가 익어가는 동안 염전에서는 하얀 소금이 익어간다. 영광은 내로라하는 천일염 산지다. 염산면에서 소금이 생산된다. 이곳에서 천일염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55년 전후다. 그 이전에는 야월리 등지에서 재래식 소금인 화염을 생산했다. 화염은 천일염과 달리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한 소금제조법이다. 바닷물을 끓인 후 갯벌에 부어 말리기를 반복하면서 소금을 얻었는데, 같은 양의 천일염을 생산한다고 할 때 약 20%의 인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염산면에는 현재 흥국염전, 두우염전, 죽도염전, 운곡염전, 신흥염전 등 10여 개의 염전이 남아 있다. 염산면에서 생산된 천일염은 너무 짜지도 쓰지도 않아서 최상품으로 친다. 그 비결은 염도에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천일염은 미네랄과 게르마늄이 풍부하면서도 타 지역 생산 천일염에 비해 염도가 1도가량 낮다. 영광의 굴비맛 비결도 거기 있다.
▲ 두우리 염전. |
참조기를 간수가 완전히 빠진 소금으로 한 마리씩 간을 하여 15~40시간 정도 재워두었다가, 염도가 옅은 깨끗한 염수에 4~5회 세척한 후 해풍에 말린 것이 굴비다. 법성포굴비를 최고로 치는 이유는 이른 봄에 남지나해에서 연평도로 산란을 위해 이동하는 참조기가 영광 칠산바다를 지날 때 가장 물이 오르기 때문이다. 어획량이 많지는 않지만 경상도 쪽에서도 참조기가 잡히는데, 제대로 된 굴비로 대접을 못 받는 원인들이 여기에 있다. 양분이 풍부한 바다와 산뜻한 해풍과 명품 천일염이 만나 빚은 신의 맛, 그게 바로 법성포 굴비다.
김동옥 여행전문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영광IC→영광 방면 23번국도→단주사거리에서 우회전→844번지방도→신평교차로에서 우회전→22번국도→복용삼거리에서 직진→842번지방도→법성포.
▲먹거리: 법성포에 굴비정식집들이 많다. 그런데 이름난 곳들은 가격이 좀 ‘세다’. 1인분에 2~3만원. 게다가 최소 2인 이상이어야 상을 받아볼 수 있다. 그러나 골목골목 찾아 들어가면 싸고 맛있는 집들이 많다. 강화식당(061-356-2562)이 그런 곳이다. 가격이 절반 수준인데, 맛이 떨어지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한 마디로 놀랐다. 굴비구이 1마리 외에 조기매운탕이 달려 나오고, 굴비가 부족하다 싶으면 추가로 시킬 수도 있다.
▲잠자리: 영광읍내에 그리스모텔(061-351-1010) 등 숙박업소가 많다. 법성포 인근에는 청수장여관(061-356-4343), 반도모텔(061-356-0993) 등이 있다. 해안 경치가 좋은 백수읍에는 펜션이 주를 이룬다. 놀마루펜션(061-351-7455), 답동펜션(061-352-7806) 등이 괜찮다.
▲문의: 영광군청 문화관광과 061-350-5753.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영광IC→영광 방면 23번국도→단주사거리에서 우회전→844번지방도→신평교차로에서 우회전→22번국도→복용삼거리에서 직진→842번지방도→법성포.
▲먹거리: 법성포에 굴비정식집들이 많다. 그런데 이름난 곳들은 가격이 좀 ‘세다’. 1인분에 2~3만원. 게다가 최소 2인 이상이어야 상을 받아볼 수 있다. 그러나 골목골목 찾아 들어가면 싸고 맛있는 집들이 많다. 강화식당(061-356-2562)이 그런 곳이다. 가격이 절반 수준인데, 맛이 떨어지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한 마디로 놀랐다. 굴비구이 1마리 외에 조기매운탕이 달려 나오고, 굴비가 부족하다 싶으면 추가로 시킬 수도 있다.
▲잠자리: 영광읍내에 그리스모텔(061-351-1010) 등 숙박업소가 많다. 법성포 인근에는 청수장여관(061-356-4343), 반도모텔(061-356-0993) 등이 있다. 해안 경치가 좋은 백수읍에는 펜션이 주를 이룬다. 놀마루펜션(061-351-7455), 답동펜션(061-352-7806) 등이 괜찮다.
▲문의: 영광군청 문화관광과 061-350-5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