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코치 영입 내 연봉이 울걸ㅋㅋ”
▲ 박은숙 기자 |
그런 그가 9월 1일 NC다이노스 창단팀 감독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야구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지만, 두산 팬들은 적잖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산 사령탑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돼 다른 팀 감독으로 옮겨가는 ‘달 감독’의 모습에 큰 충격과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감독이 NC다이노스의 감독직 제안을 받아들이기까지엔 진한 번민과 갈등의 시간들이 존재했다고 밝힌다. “내가 두산 팬이라고 해도 내 상황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상으로 그렇다. 내 마음도 이상했는데, 팬들은 오죽했겠나. 그러나 난 두산 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독직에서 물러나면서 NC다이노스 감독직을 약속하지도 않았고, 이렇게 빨리 다른 팀 감독으로 가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한국에 있으면 여기저기 찾는 사람들도 많고, 기자들의 관심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머리도 식히고 야구도 볼 겸 미국으로 떠났던 것이다. 미국에서 지내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가운데, NC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았다.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두산 팬들이었다. 나의 사퇴를 아쉬워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신문에 광고까지 내준 그 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그래서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팬클럽 ‘두산베어스를 사랑하는 최강 10번타자’에선 김경문 감독의 사퇴에 대한 아쉬움을 광고로 풀어낸 바 있다. 호주머니를 털어 모은 광고비를 통해 한국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 김 감독에게 ‘감독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란 내용의 멋진 선물을 일간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 소식을 모르고 있던 김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와선, 팬들이 그 광고를 액자로 만들어 집으로 보낸 걸 받아들고서야 팬들의 사랑에 가슴이 젖을 정도의 따뜻함을 느꼈다고 한다.
“난 내 행동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게 싫다. 마치 구차한 변명 같아 보여서 더더욱 입을 열지 않는 편이다. 두산을 떠날 때도, 그래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NC 감독을 맡게 된 부분도, 솔직히 ‘사실이 이러이러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또한 두산 팬들 입장에선 변명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기자 분이 물어보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을 열겠다. 난 단 1%도 두산팬들한테 오해를 살 만한 일도, 또 부끄러운 일도 한 적이 없다.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 믿고 안 믿고는 팬들의 몫이다.”
김 감독은 올 시즌이 3년 계약의 마지막 해였다. 11월이면 그가 원하든 구단이 원하든 자동적으로 계약 해지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중에 자진사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 사퇴 후 처음으로 마음을 내보였다.
▲ NC다이노스의 김경문 감독이 훈련 중인 강진베이스볼파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솔직히 내가 그만두면 선수단이 새로운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로 전환될 것이라고 믿었다. 중간에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건 개인적으로 불명예스런 일이다. 누가 스스로 옷을 벗겠다고 하고 싶겠나. 선수단을 다시 일깨우려면 강한 충격요법이 필요했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두산과 관련된 얘기를 어렵게 이어나가던 김 감독은 “이젠 두산 얘기말고 NC다이노스 팀에 대해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다”란 말로 화제를 바꾸려고 했다.
김 감독은 50여 명의 선수들과 함께 첫 훈련을 시작한 날을 떠올렸다.
“우리 팀에는 어린 선수들도 많고, 사연 있는 선수들도 있다. 그런데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의 눈빛에는 하고자하는 의지가 강하다. 첫 날 선수들의 눈빛을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선수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고민이 많았다. 내가 창단팀을 잘 꾸려갈 수 있을지, 새로운 도전이 무모한 도전은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되더라. 그런데 선수들의 눈빛을 통해 내 선택이 잘한 선택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선수들을 위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
김 감독은 비록 시작은 어려움이 많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NC다이노스가 명문팀이 될 수 있도록 초석을 잘 다지고 싶다고 말한다. 공개트라이아웃을 통해 선발된 선수들에 대해서도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프로를 경험했지만,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프로에서 떠난 선수들이 많았다. 그들도 한 번쯤은 꽃망울을 터트릴 때가 되지 않았겠나. 절실하면 그만큼 소중하고, 결과를 얻기 위해 더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런 선수들이 우리팀에서 꽃망울을 터트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스타라는 건, 단순히 야구만 잘해서 되는 건 아니다.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있는 선수도 있어야 하고, 가슴 찡한 사연을 안고 정상에 올라서는 히든카드도 만들어야 한다. 신생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고 그래서 영화로 만들 수도 있는 부분이다. 흰 도화지는 만들어졌다. 그 위에 우리가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가 문제다. 그건 훈련을 통해 하나둘씩 해답을 얻어나갈 계획이다.”
김 감독은 박승호 수석코치, 김광림 타격코치, 강인권 배터리 코치 외에 넥센에서 은퇴 후 SK에서 주루코치를 맡았던 전준호 코치, 박영태 전 롯데수석코치, 구동우·지연규 투수코치, 전종화 불펜코치, 그리고 1990년대 삼성 에이스로 활약했고 일본 오릭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은 김상엽 투수코치를 영입해 코치진 인선을 마무리했다.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면서 김 감독은 또 다른 숙제를 안고 있었다고 토로한다.
“코칭스태프를 꾸려야 하는데 다른 팀은 아직 시즌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상대팀에 피해가 안 가게끔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나도 감독 생활할 때 다른 데서 우리 팀 코치를 데려간다는 얘기를 들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코칭스태프가 선임되자마자 곧장 전지훈련을 시작한 탓에 정작 김 감독과 코치들은 제대로 환영식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은 어떤 자리를 갖는 것보다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코치들 또한 선수들 못지 않게 하루 세 차례의 훈련을 시키느라 녹초가 되기 일쑤다.
인터뷰 말미에 ‘박찬호의 코치 영입설’에 대해 대놓고 질문을 해봤다. 김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박찬호같은 대선수가 우리 팀 코치로 오려면 내 연봉의 절반을 떼어줘도 모자랄 것이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한 후 “내 욕심을 내기보단, 찬호가 더 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금은 코치보단, 우리가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 찬호가 선수단을 방문해서 선수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들을 들려주고, 선수들의 훈련을 봐주는 것으로만 약속이 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김 감독에게 플레이오프에 올라간 SK와 롯데의 경기 결과에 대한 예상을 묻자, 노련한 그는 “내 성격 잘 알지 않나. 다른 팀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걸. 난 그저, 우리 NC가 언제쯤 포스트시즌에 올라가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을지를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비켜나갔다.
강진=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