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뜬 광주의 SUN 선수는 떨었고 팬들은 신났다
▲ 선동열 감독이 1년 간의 야인생활을 접고 KIA 지휘봉을 잡았다. 그가 말한 ‘타이거즈 정신’이 그라운드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벌써부터 내년 프로야구가 기대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2005년 선동열이 삼성 감독에 선임되자 야구계는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선 감독을 바라봤다. ‘천하의 선동열도 지도자로선 승승장구하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야구인 대다수는 그 이유로 “스타 선수가 명장이 된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모든 야구인이 선 감독의 실패를 예상한 건 아니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선 감독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봤다.
“선 감독은 머리가 영리한 야구인이다. 무턱대고 ‘나를 따르라’고 목소리만 높이는 여타 스타 출신 지도자들과는 다르다. 선수 구성부터 육성, 관리, 기용까지 체계적인 자신만의 이론과 구상이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뛴 경험도 지도자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일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었기에 무명선수들의 처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현역시절만큼 지도자로서도 대단한 성적을 세울 게 틀림없다.”
사실이었다. 김응용 감독의 퇴임으로 2004년 말 삼성 사령탑에 오른 선 감독은 데뷔 첫 해였던 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 야구계에선 초보 감독의 우승을 “우연” 혹은 “운 덕분”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6년에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자 선 감독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초보 감독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건 선 감독이 유일했다.
이후로도 선 감독은 2008년까지 4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며 ‘신세대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투수력과 수비력을 우위로 한 이른바 ‘지키는 야구’는 선 감독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많은 팀에서 삼성을 벤치마킹했다.
단기적 목표보다 장기적 비전을 중시했던 선 감독은 2군 육성강화에도 초점을 맞췄다. 선 감독의 바람대로 몇 년간의 노력으로 삼성은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팜 시스템을 갖췄다. 거칠 것이 없던 선 감독은 지난해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며 3번째 우승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SK에 4전 전패였다. 그렇다고 선 감독이 좌절한 건 아니었다.
선 감독은 되레 “우리의 목표는 애초부터 2012년 우승이었다”며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삼성은 설정한 목표를 따라 잘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은 선 감독 혼자만의 바람임이 밝혀졌다. 그해 12월 30일 갑작스럽게 선 감독의 해임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사임
야구계에선 지금도 선 감독의 해임을 ‘미스터리’라고 표현한다. 이유가 있다. 당시 삼성은 선 감독의 해임을 ‘자진 사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선 감독은 자진 사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되레 해임 발표 하루 전까지 의욕적으로 다음 시즌 전지훈련 계획을 짰다. 지역 유지들을 찾아가 “내년 시즌에도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건넸다. 내일 자진 사퇴할 감독이 전지훈련 계획을 짜고, 지역유지들을 만난다는 건 희대의 난센스다.
사실 선 감독의 해임을 모르긴 삼성 야구단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삼성의 고위관계자는 “우리도 당일에야 (해임 사실을) 전달받고 크게 놀랐다”며 “김인 사장님을 제외하고 전체 프런트가 영문도 모른 채 (해임 발표를) 준비했다”고 귀띔했다.
무엇보다 선 감독은 4년의 임기를 남긴 상태였다. 전해 선 감독에게 ‘5년 장기 계약’이란 초유의 선물을 안긴 쪽은 삼성이었다. 누구도 삼성이 선 감독을 해임하리라 예상하지 못한 이유였다.
하지만, 삼성은 선 감독을 내쳤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많았다. 그 가운데 ‘그룹 최고위층이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무기력하게 SK에 전패하는 걸 보고 크게 진노했다’는 게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삼성 관계자들도 그 소문에 대해선 대체로 수긍했다.
일부에선 김응용 사장, 김재하 단장이 차례로 낙마한 걸 상기하며 ‘이학수 라인 제거’ 차원에서 선 감독이 마지막으로 희생됐다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 사장, 김 단장, 선 감독은 ‘그룹 내 최고 실세’로 불리던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각별한 관계였다.
4년의 계약기간을 남겨놓고, 타의에 의해 삼성 유니폼을 벗었지만, 선 감독은 올 시즌까지 삼성의 녹을 먹었다. 삼성은 선 감독을 ‘구단 운영위원’으로 위촉하고서 계약 2년째 연봉을 고스란히 지급했다. 야구계에서 “삼성이 선 감독에게 위로 차원에서 4년치 연봉을 모두 줬다”는 설이 대두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선 감독의 KIA행이 확정됐을 때 삼성이 가장 기뻐했기 때문이다. 삼성 내부 관계자는 “관행상 다른 팀 감독으로 갈 경우엔 잔여연봉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선 감독이 KIA로 가면서 어려운 숙제를 풀어준 셈”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선동열 감독이 21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선수단과 상견례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이날 선수들 사이엔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
선 감독은 삼성에서 빛과 그림자가 뚜렷한 지도자였다. 한국시리즈 우승 3회와 포스트 시즌 5회 진출이란 대업을 거둔 건 빛이었다. 강력한 투수진을 구축하고, 최형우와 박석민 그리고 채태인, 김상수 등 젊은 타자를 발굴한 것도 빛이었다. 2군 강화와 체계적인 육성시스템을 갖춘 것 역시 선 감독의 공로임이 틀림없었다. 특히나 선수들을 혹사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선수단을 관리한 건 성적 중심의 프로야구사에서 칭찬받아 마땅한 행동이었다.
많은 야구인이 올 시즌 삼성의 한국시리즈 직행을 선 감독의 공로로 돌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선 감독은 선수단과 연고지 대구에서 그리 인기가 좋은 지도자는 아니었다. 선 감독의 퇴임이 발표됐을 때 선수들은 시원섭섭한 감정을 나타냈다. 한 선수는 “감독님의 별명이 ‘대구 래퍼’로 불릴 만큼 더그아웃에서 쉼 없이 불평을 토로하셨다”며 “워낙 대선수 출신의 지도자라, 선수들이 감히 감독님의 지도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광주 출신의 선 감독은 삼성 감독 시절 대구 야구팬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좋은 예가 있다. 2007년 이만수 SK 수석코치(현 SK 감독대행)가 원정경기 차 대구구장을 방문했을 때다. 3루쪽 홈팀 응원단에선 연방 “이만수”를 연호했다. 일부 관중은 “이만수를 삼성 감독으로!”란 구호를 외치기까지 했다. 이를 듣는 선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선 감독은 퇴임사에서 “대구 시민의 많은 사랑을 받아 기뻤다”면서도 “지역 출신이 아니라는 한계에 간혹 좌절감을 느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선 감독은 언론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못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선 감독은 자주 보지 않는 언론인과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TV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는 것도 꺼렸고, 인터뷰도 사양하기 일쑤였다. 더그아웃에서 감독 자리를 비추는 형광등을 빼놓는 통에 모 스포츠케이블채널이 “감독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며 구단 측에 항의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모 방송사 PD가 “삼성 더그아웃은 크렘린, 선 감독은 소련 서기장 같다”고 평한 건 지금도 회자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그러나 선 감독을 잘 아는 야구인들은 “원래 선 감독은 세상에 둘도 없는 호인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호인 선동열은 서기장 선동열로 둔갑한 것일까. 선 감독은 이와 관련해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털어놨다.
“삼성 감독이라는 자리가 주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다른 팀 감독이었다면 모를까 삼성 감독은 항상 우승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경직된 감이 없지 않았다.”
삼성 수장에서 물러난 이후, 선 감독은 철저히 야인으로 살았다. 공식행사를 제외하면 지인들과 함께 산행을 하거나 술자리를 갖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선 감독이 다시 야구계의 중심에 떠오른 건 올 시즌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다.
#LG행 좌절과 KIA행
정규 시즌 종료가 가까워지면서 몇몇 구단은 새 감독 물색에 들어갔다. 두산과 LG가 대표적이었다. 선 감독은 두 구단의 감독 후보군에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애초 유력한 쪽은 LG였다.
2009년 LG는 삼성과의 재계약이 끝나는 대로 선 감독을 영입하려 했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삼성에서 ‘5년 계약’을 제시하며 선 감독을 잡는 통에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선 감독이 갑작스럽게 해임되며 LG는 그토록 원하던 선 감독 영입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일요신문>의 취재결과 선 감독과 LG는 어느 정도 교감을 나눴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 감독은 감독 선임 조건으로 “이순철 전 LG 감독을 수석코치로 임명하겠다”는 뜻을 나타냈고, LG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협상 막바지에 돌출문제가 생기며 선 감독은 LG 유니폼을 입는 데 실패했다. 두산은 몸값이 비싼 선 감독 영입을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선 감독은 어떻게 KIA에 둥지를 틀 수 있었던 것일까. KIA가 준플레이오프에서 SK에 패했을 때만 해도 조범현 감독의 유임은 확실시됐다. 조 감독 역시 “내년 시즌 다시 도전하겠다”는 말로 설욕 의지를 드러냈다. 구단도 조 감독의 계약기간이 내년까지임을 고려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10월 16일부터 이미 광주에선 조 감독 해임설이 파다했다. 일반 야구팬들이 “조 감독이 해임되고, 새 감독이 선임될 것”이란 소식을 접할 만큼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구단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사실이었다.
모그룹에서 감독 교체를 기정사실화한 터였다. 선 감독과 접촉한 것도 구단이 아니라 모그룹 관계자였다. 감독 교체를 이틀 앞두고 모그룹 관계자는 “조 감독이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올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KIA를 명문구단으로 만들기엔 리더십이 부족하다”며 “KIA도 삼성처럼 지역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를 영입해 새롭게 인기몰이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 관계자는 “누가 신임 감독이냐”는 질문에 “호남을 대표하는 최고 스타 출신”이라며 선 감독 내정설을 은연중에 시사했다. 그리고 결국 KIA는 구단이 아니라 모그룹이 나서 감독을 교체했고, 예상대로 선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영입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선동열의 구상은 무엇
‘종범아, 화끈하게 해보자잉~’
KIA 제7대 감독으로 공식 취임한 선동열 감독은 이름값에 걸맞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 5억 원, 연봉 3억 8000만 원 등 총 16억 4000만 원에 사인했다. KIA는 “선 감독이 계약조건에 있어 구단에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며 “구단도 선수단 운영에 있어 일체의 권한을 선 감독에게 부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칼자루를 감독에게 일임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 감독은 KIA를 앞으로 어떻게 진두지휘할까. 선 감독은 취임 일성에서 “수비 중심, 베테랑 중심으로 팀을 이끌어가겠다”고 밝혔다.
‘수비 중심’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키는 야구’를 KIA에서도 펼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작 주목해야할 건 ‘베테랑 중심’이었다. 선 감독의 취임과 함께 팀 내 최고참 이종범의 거취에 많은 이의 관심이 쏠렸다. 젊은 선수를 선호하는 선 감독이 이종범을 중용하지 않을 것이고, 이종범도 이를 잘 알아 은퇴를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선 감독이 “베테랑을 중심으로 팀이 뭉쳐야 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이종범은 내년에도 KIA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이종범은 자신의 거취를 묻는 신임 코칭스태프에 “1년 더 선수생활을 연장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선 감독은 전력보강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력보강의 화두는 역시 외야수다. 선 감독은 수비가 뛰어나고 장타력을 갖춘 외야수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레이드에 소극적인 한국 프로야구의 특성상 선 감독의 바람이 이뤄지려면 FA(자유계약선수)영입밖엔 답이 없다. 야구계 일부에서 “KIA가 FA 이택근을 영입하려 한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
‘종범아, 화끈하게 해보자잉~’
KIA 제7대 감독으로 공식 취임한 선동열 감독은 이름값에 걸맞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 5억 원, 연봉 3억 8000만 원 등 총 16억 4000만 원에 사인했다. KIA는 “선 감독이 계약조건에 있어 구단에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며 “구단도 선수단 운영에 있어 일체의 권한을 선 감독에게 부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칼자루를 감독에게 일임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 감독은 KIA를 앞으로 어떻게 진두지휘할까. 선 감독은 취임 일성에서 “수비 중심, 베테랑 중심으로 팀을 이끌어가겠다”고 밝혔다.
‘수비 중심’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키는 야구’를 KIA에서도 펼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작 주목해야할 건 ‘베테랑 중심’이었다. 선 감독의 취임과 함께 팀 내 최고참 이종범의 거취에 많은 이의 관심이 쏠렸다. 젊은 선수를 선호하는 선 감독이 이종범을 중용하지 않을 것이고, 이종범도 이를 잘 알아 은퇴를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선 감독이 “베테랑을 중심으로 팀이 뭉쳐야 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이종범은 내년에도 KIA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이종범은 자신의 거취를 묻는 신임 코칭스태프에 “1년 더 선수생활을 연장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선 감독은 전력보강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력보강의 화두는 역시 외야수다. 선 감독은 수비가 뛰어나고 장타력을 갖춘 외야수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레이드에 소극적인 한국 프로야구의 특성상 선 감독의 바람이 이뤄지려면 FA(자유계약선수)영입밖엔 답이 없다. 야구계 일부에서 “KIA가 FA 이택근을 영입하려 한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