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엔 ‘빅엿’을, 시민들엔 ‘정치’를…
▲ 대박 친 브랜드 <나는 꼼수다>가 대박을 친 후에도 김어준은 ‘배고픈 사람들이 골방에서 시시덕거리는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유료광고 논의를 일축했다고 한다. 사진제공=노동과세계 |
# 시사계의 아이돌 스타
<일요신문>이 1013호(10월 12일자)에서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정봉주 17대 국회의원, 주진우 <시사IN> 기자, 김용민 시사평론가를 폴리테이너(정치인을 뜻하는 politician과 연예인을 가리키는 entertainer의 합성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김어준은 폴리테이너를 넘어 ‘아이돌’이 됐다. 수천 명씩 모이는 사인회는 물론이고, 심지어 아이돌 스타에게서나 일어나는 학창시절 사진까지 인터넷 공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지금은 이미지가 거칠어 보이는데 고교시절에는 모범생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김어준은 1987년 문일고를 졸업했다. 그리고 학창시절에는 전교 5등 안에 들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다. 주위에서 ‘서울대는 떼논 당상’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실전에 약했는지 학력고사(지금의 수능)에서는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본선에서 낙방을 했고, 재수 끝에 후기대학으로 홍익대 공대에 들어갔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문일고에 다닐 때 도서반 동아리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언론계에 종사하고 있는 문일고 도서반의 한 후배는 “김어준 선배는 학과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일찌감치 책을 많이 읽고, 시사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최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닥치고 정치>를 비롯해 김어준은 그동안 다수의 저서를 내왔는데, 어려서부터 ‘책’과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 김어준의 언어능력은 탁월하다. 그가 사인 문구로 쓰는 ‘쫄지마’도 금세 유행어가 됐다. 출처=나는 꼼수다 카페 |
그런데 예상외로 김어준 총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를 하지 않는다. 정봉주, 주진우, 김용민 등 다른 세 명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하는데 반해 김어준 총수만 SNS를 기피한다고 한다. 김용민 시사평론가에 따르면 이유는 “그냥 싫다. 귀찮다”라고 한다. SNS가 <나는 꼼수다>의 최대 확산루트이고, 또 권력의 탄압에 대한 최대 울타리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것도 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 막강 내공
“김 총수의 내공은 정말 대단하다. 생각 자체가 일반인과는 다르다. 특히 프로그램의 사회를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 어떤 사안에 대한 의미부여나 캐릭터 설정이 탁월하다.”
김어준 총수 못지않게 폭풍 인기를 누리고 있는 ‘꼼수 멤버’ 정봉주 17대 국회의원의 평가다. 둘은 2004년 CBS라디오 <김어준의 저공비행>에서 처음 만났다. 특집 형식으로 꾸민 퀴즈 이벤트에서 비상한 입담과 특출한 ‘개념’을 과시한 정봉주 의원에게 김어준은 호감을 느꼈고, 이후 S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앤조이>, 하니TV의 <뉴욕타임스> 등으로 이어졌다. 정 의원은 누구보다 김어준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김어준의 이런 진행 능력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정봉주 수감 미수 사건’이다. 지난 8월 9일.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 선고 기일이 18일로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7년 대선과정에서 BBK사건과 관련해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실형(징역 1년)을 선고받은 지 3년 만에 갑자기 대법원 선고 기일이 잡힌 것이다. ‘나꼼수’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례적으로 대법원이 다시 선고기일을 무기연기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문제는 ‘나꼼수’ 녹음 당시의 분위기다. 2심 결과가 그대로 인정된다면 수일 내로 교도소로 가게 되고, 10년간 피선거권(선거에 출마할 권리) 박탈이라는 사실상의 정치적 사망선고까지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나꼼수’에서 더 이상 정봉주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게 된다. 당초 김용민 시사평론가는 슬프게 꾸미려 했다. 2AM의 ‘죽어도 못 보내’ 연주음악을 밑바탕에 두고 절망의 끝자락에 서 있지만 희망의 끈을 쥐고 있는 부산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과의 전화 편지를 띄우려고 했다. 그런데 김어준 총수는 “X까!”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리고는 방송에서 “아, 다음 주면 감옥에 갈 정봉주 의원 나오셨네요. 들어가면 사식 넣어줄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 평론가는 이후 “만약 슬프게 나갔다면 청취자는 같이 슬퍼하는 게 아니라 공포에 절게 될 거야. 생각해봐. ‘이명박에게 덤볐더니 결국 X된다’는 공식만 확인해주는 꼴 아닌가?”라며 무릎을 쳤다.
▲ <나는 꼼수다> 25회에 출연한 유명인사들. ‘나꼼수’ 4인방 외에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오른쪽은 김어준이 하니TV에서 진행하는 모습. 출처=나는 꼼수다 카페 |
<닥치고 정치>가 국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김어준은 최근 각종 행사에서 저서에 사인을 하기에 바쁘다. 재미있는 것은 사인문구로 ‘쫄지마!’를 쓴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쫄지마는 바로 유행어가 되고 있다. ‘꼼수’ 단어를 따라 쓰던 주요 언론이 최근엔 ‘쫄지마’를 즐겨 쓴다.
# 당당한 애티튜드와 카리스마
장면 하나. <나는 꼼수다> 내에서 ‘흥행’에 고무돼 유료 광고를 받고, 공개방송 및 주 2회 방송을 해보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김어준은 ‘배고픈 사람들이 골방에서 시시덕거리며 떠드는 식의 콘셉트를 포기하지 말자’며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많게는 월 300만 원에 달하는 ‘나꼼수’의 제작 비용(출연료는 없다. 주로 팟캐스트 호스팅비용이다)도 김어준 총수 개인이 부담하고 있다. 고단한 시대를 살며 정치적 혁명을 꿈꾸는, 이웃을 위한 뒷담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나꼼수의 본령(本令)을 설정했고, 이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장면 둘. “한 번은 하도 ‘돼지, 돼지’ 하기에 ‘내가 이래봬도 박사 과정이다’라고 하니까 ‘그런 거 하지 말고 성대모사 연습이나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성대모사 연습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짤린 교수이기도 한 김용민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이처럼 김어준에게는 상대를 압도하는 뭔가가 있다. 예컨대 처음에는 1회 단발 출연 차 온 주진우 기자를 눌러 앉힌 것도 김어준의 능력이었다. “선배, 나 이제 그만 나올래요”라고 말할 것 같은 주진우 기자의 전화를 아예 씹어버렸다. 보통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설득할 텐데 무시하는 것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런 카리스마를 좋아한다. 김용민 평론가는 자신이 쓴 <나는 꼼수다 뒷담화>에서 “어렸을 때에 동네 형이 ‘삶은 돼지’라고 놀렸을 때에는 그렇게 화가 났는데, 김어준 총수가 지어준 이 별명(목사아들 돼지)은 왜 이렇게 마음과 귀에 착착 와 닿는지요. 존재감을 세워주기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닥치고 무시, 철저한 자기관리
“기발한 해석, 참신한 논리. 하여간 김어준은 모방할 수 없는 그 자체로서의 브랜드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 김어준 총수의 자기관리를 본받고 싶다.”
김용민 평론가의 말이다. 돌싱(돌아온 싱글)인 김어준은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유명인이라고 해서 조금도 티를 내지 않는다. 방송에서 밝혔듯이 신호위반을 하면 두말없이 면허증을 제시한다. ‘나꼼수’가 인기를 끌면서 혹시라도 각하의 팔들이 보복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김어준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인해 틈을 보이지 말자. 돈이야 X도 없으니 상관없고 문제는 여자인데, 다들 조심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어준에게 돋보이는 애티튜드(태도) 중 하나는 바로 ‘무시’다. ‘나꼼수’가 곽노현 사건과 관련해 ‘사퇴불가’를 주창하면서 시사평론가 진중권과 마찰이 빚어졌다. 진중권은 ‘나꼼수’를 ‘닭장 속의 부흥회’로 까기도 했다. 심지어 김어준이 과거 황우석 사태 및 심형래 논쟁 때 엉뚱한 소리를 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어준은 이와 관련해 일체 대응하지 않았다. 본인뿐 아니라 주위에도 “누가 뭐라 하든 그 의견에 대꾸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는 일단 싸워주지를 않는다. 방송에서 화를 내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철저하게 콘셉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의 근본 이유는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 골초에 지각쟁이
원래는 이 기사에서 김어준 총수를 꼼짝 못하게 하는 유일한 사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소개하려고 했다. 스스로 밝힌 것이 아니라 주변을 통해 취재한 내용이다. 바로 연인인 동갑내기 인기 시나리오 작가 인정옥 씨 얘기다. 하지만 지난 10월 28일 일부 언론보도를 통해 크게 알려진 까닭에 ‘남이 하는 거 하지 않는다’는 김어준 총수의 방침에 따라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그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꼼짝 못하는 인물에게도 당당한 김어준 총수다. 가카를 만나도 지금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김어준 총수를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라는 멘트가 뜻하는 사람이 바로 인정옥 씨인 것은 분명하다.
이밖에 김어준은 골초다. 평상 시 담배를 물고 산다. 여기에 연예인처럼 일정이 바쁘다 보니 ‘나꼼수’ 녹음 때 가장 늦게 나타나는 ‘지각쟁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특출한 헤어스타일 유지를 위해 생각보다 관리에 공을 들인다는 후문이다.
홍지은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