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앞산충혼탑서 ‘제22회 호국영령추모제’ 거행
-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대구시지부 주최
[일요신문] "호국영령이 되신 아버지, 당신들이 떠나셨던 그 해에도 이렇게 온갖 만물들이 춤의 향연을 벌렸을까요? 산천 초목들은 수십번 변하였건만, 변하지 않은 것은 6·25유자녀들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입니다."
6월 1일 푸른 하늘 위에 펼쳐진 구름 아래 충혼탑에서 아버지를 그려워하는 6·25유자녀들은 울먹였다. 그 아들과 딸들은 어느 덧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됐다. 그들의 손주도 중년이 다 됐다.
"아버지. 당신들이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목숨 바쳐 지키신 이 나라 대한민국은 70년이 지났건만, 저들 다수는 외면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압니다. 그 누구도 원망할 마 조금도 없지만, 넋두리라도 하면 텅빈 마음 한구석이나마 채워질 것 같아 사소연 이라도 한번 해 봅니다."
딸의 넋두리는 유가족들의 마음과 다를게 없었다.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 편지에는 한자 한자 정성이 들어갔다. 일부는 연필로 고치면서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담았다.
"아버지, 저희들은 힘이 없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나이며, 한걸음 한걸음 아버지 곁으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훗날 만났을때 행여 아버지께서 아들, 딸들을 알아보시기나 하실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딸의 편지글이 낭독될 수록 유가족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그들은 제대로 '아버지'라고 소리내어 불러본 기억조차 없다. 불어터진 살을 어루만지며 가슴에 꼭 안기고 아버지 얼굴이라도 만져보며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이들은 이제 노년이다.
위패 앞엔 떡과 과일, 생선, 대추 등을 잔뜩 차려졌다. 노년이 된 아들과 딸들은 위패 앞에서 절을 하고 향을 피웠다. 그들의 그리움이 담긴 마음이 향연이 되어 올라갔다.
아버지 위패를 찾지 못한 딸도 있었다. 충혼탑에는 지역 호국영령 5391위의 위패가 있다. 위패는 탑을 중심으로 'ㄱㄴㄷ'순으로 두 편으로 갈라져 모셔져있다. 나라를 위해 온몸을 다 바치고 산화한 아버지의 이름은 '노종학'이라고 밝힌 그녀는 이제 노년이 되어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추모제가 끝난 후 6·25유자녀들은 충혼탑 인근 공원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넋두리를 쏟아냈다. 이들의 재잘거리는 모습은 노년이 아닌 아들과 딸 같은 모습이다. 충혼탑 주변에는 호국사진도 전시됐다. 전쟁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사진과 그림이다.
한편 이날 거행된 '제22회 호국영령추모제'는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대구시지부(박영한) 주최로 진행됐으며 200여명의 아들·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고 경건히 거행됐다. 오는 6일 오전 9시 50분 충혼탑에서 국가유공자와 유족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67회 현충일 추념식'이 거행된다.
'충혼탑(忠魂塔)'은 충의를 위해 죽은 사람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으로 한국 전쟁 당시 조국 수호를 위해 산화한 대구 출신 호국영령의 영현을 모신 공간이다. 탑신은 옛날 우리나라 장수들이 전투에서 쓴 투구 모양을 본뜬 것이며, 원형 연못은 그 당시 최후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전선을 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충혼탑은 원래 1958년 5월 대구 수성구 두산동 수성못 옆에 위치했지만 규모가 작아 1971년 4월 대덕산 기슭에 탑신 30m, 둘레 9m인 충혼탑을 재건립했다. 2017년 6월 리모델링 공사로 기존 충혼탑 내 낡고 좁은 위패 봉안실을 충혼탑의 좌우에 석재로 신축해 장중한 추모공간으로 완성됐다.
남경원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