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색안경’ 한쪽은 ‘주판알’
▲ 일본 진출설이 돌고 있는 이대호. 하지만 아직 몇몇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일요신문 DB |
올 시즌 타율 3할5푼7리, 27홈런, 113타점을 기록한 이대호는 일본 프로야구계로부터 ‘즉시 전력감’으로 꼽힌다. 특히나 올 시즌 공인구를 교체하며 극심한 ‘투고타저’에 시달렸던 일본 프로야구계는 국제무대에서 한국 대표팀 4번 타자로 맹활약했던 이대호를 한 시즌 20홈런 이상이 가능한 거포로 지목하고 있다.
일본 내 이대호의 관심을 반영하듯 일본 언론들은 연일 ‘오릭스 버펄로스와 지바롯데 마린스,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이대호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보도를 쏟아내는 중이다. 특히나 ‘오릭스가 이대호 영입을 위해 2년간 5억 엔(약 75억 원)을 쏟아 부을 예정’이라며 이대호의 일본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 언론들의 보도는 사실일까.
일본 현지 취재 결과, 반은 맞고 반은 과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오릭스와 지바롯데가 이대호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건 사실이다.
지바롯데는 시즌 전부터 이대호 영입에 공을 들였다. 일본 야구계엔 ‘올 초 비시즌 기간에 지바롯데 니시무라 노리후미 감독이 이대호를 일본으로 초청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마디로 감독부터 나서서 이대호의 환심을 사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김태균이 시즌 중 퇴단하며 중심타선이 와해된 만큼 지바롯데는 이대호 영입에 더 강력하게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롯데와 지바롯데는 자매 구단이라, 이대호가 한국으로 복귀시 롯데로 복귀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김태균의 갑작스러운 퇴단으로 지바롯데는 한국 선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태다. 따지고 보면 지바롯데뿐만이 아니다. 여타 일본 구단도 “한국 선수들이 몸값은 일본 A급 선수들만큼 많이 받으면서 성적은 2군 유망주보다 떨어진다”며 “끈기가 부족하고, 언제 한국으로 떠날지 모르는 한국 선수들에게 거액을 안기는 건 도박”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바롯데가 이대호 영입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의문이다.
오릭스는 지바롯데보다 이대호 영입에 더 적극적이다. 올 시즌 박찬호·이승엽 마케팅으로 거액의 방송 중계권료를 챙긴 오릭스는 이대호를 영입해 다시 한 번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사’를 하려고 한다.
실제로 일본의 모 스카우트는 “올 시즌 오릭스가 한국 방송사로부터 거액의 중계권료를 받아 이를 박찬호·이승엽의 몸값으로 썼다”며 “두 선수에게 몸값으로 지급하고도 만만치 않은 잔액이 남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러니까 오릭스는 설령 이대호 영입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중계권료로 몸값을 보전하면 그만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계권료가 이대호 영입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이유가 있다.
내년 시즌 일본 프로야구 중계를 계획 중인 한국 방송사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올 시즌 오릭스 홈 중계를 담당했던 SBS ESPN 관계자는 “오릭스 시청률이 한국 프로야구 중계방송 시청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며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일본 프로야구 중계를 내년 시즌에도 지속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털어놨다. 덧붙여 “역대 한국 선수 가운데 입단 첫 해 잘했던 선수가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임창용을 제외하곤 없었다”는 말로 내년 시즌 일본 프로야구 중계에 난색을 나타냈다.
만약 한국 방송사가 중계권 계약에 나서지 않는다면 오릭스의 이대호 영입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퍼시픽리그의 대표적인 비인기 팀인 오릭스가 5억 엔을 순수 구단 돈으로 쓰기엔 투자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오릭스의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은 ‘반외국인 성향’으로 유명하다. 과거 한신 타이거스 감독 시절부터 유독 외국인 선수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일본 언론에서 ‘오카다 감독이 내년 시즌 팀의 4번 타자로 이대호를 지목했다’고 전했지만, 일본 프로야구 스카우트들 사이에선 ‘오카다 감독이 과연 이대호의 이름을 알지나 모르겠다’는 말이 돈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반외국인 성향이 뚜렷하고, 자존심이 유별나게 강한 오카다 감독이 팀 내 중심타자들을 제쳐놓고 한국 선수를 4번 타자로 언급할 리 없다는 게 이유였다. 많은 일본 스카우트는 ‘이대호의 오릭스 4번 타자론’을 오릭스의 언론플레이로 규정한다.
일본 언론이 이대호 영입에 뛰어들었다고 보도한 구단 가운데 라쿠텐은 사실상 이대호에게 관심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9월 초 기자가 라쿠텐을 방문했을 때 라쿠텐 고위층 인사들은 이대호를 “매우 좋은 타자”라고 칭찬하면서도 “이대호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한발 나아가 라쿠텐의 요네다 준 대표는 “내년 시즌 우리가 원하는 외국인 타자는 2, 3루타를 확실하게 쳐주는 야수”라며 이대호의 수비와 주루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대호의 일본행은 방송 중계권료와 김태균의 시즌 중 퇴단으로 인한 한국선수 불신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까지 이대호의 일본행은 아직 흐림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