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당 주체로 나서라”
▲ 한나라당 텃밭에서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김두관 경남지사. 내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서 묻자 “도정이 우선”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지난 2일 경남 창원의 경남도청 집무실에서 김두관 경남지사를 만나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지난 2007년 대선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인연’으로 이번 인터뷰는 네 번째였지만, 대면인터뷰는 무려 3년여 만이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박원순 시장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는 김 지사는 박원순 시장의 당선을 보며 “내 일처럼 기뻤다”는 감회를 전하기도 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김두관 지사는 2002년, 2006년에 이어 세 번째 도전 만에 경남지사에 당선되었다. 당시 김 지사가 “기쁜 순간은 잠시였고 선거 때 약속드린 공약을 앞으로 잘 이행해 나가야겠다는 책임감과 중압감이 바로 뒤따라왔다”는 당선 소감을 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여. 김 지사가 지사직에 오른 뒤 추진해온 공약과 사업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무엇보다 ‘무소속’ 야권 주자로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의 지자체장직을 수행하며 느끼는 소회가 궁금했다.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냈을 텐데, 1년여의 시간 동안 도정을 펼치며 느껴왔던 소회는.
▲경남은 50년 만의 정권교체였다(김 지사의 당선은 1995년 지방선거가 실시된 이래 처음으로 영남지역에서 ‘비 한나라당’ 후보로 광역단체장에 당선된 기록이었다). 변화를 선택한 경남도민이 ‘김두관 도정’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복지와 경제발전이 선순환할 수 있는 민주진보 가치를 실현하는 실증모델을 경남에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경남지역은 한나라당의 주요 텃밭인 동시에 친노계의 지지세도 혼재하고 있는 곳이다. 이장에서 시작해 남해군수를 거쳐 경남지사로 일해 오면서 지역감정에 대해 느낀 바가 남다를 것 같은데.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내가 무소속 단일후보로 당선되고 도의회에서도 쉰아홉 분 중 스물두 분이 비한나라당 후보로 당선이 되었다. 그러면서 6·2 지방선거가 지역주의 극복의 본격적인 단초가 된 것 같다. 앞으로 이 분들이 역할을 잘해주어서 지역주의에 근거한 정당보다는 정책 중심의 정당과 인물이 선택받는 데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내년 총선 경남지역에서 어느 정도의 의석을 예상하나. 이해찬 전 총리는 부산·울산·경남권에서 민주진보진영이 41석 중 15~20석이 가능하다고 전망한 바 있는데.
▲(이 전 총리의 전망은) 민주진보진영의 희망사항이기도 하고 실제 그렇게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웃음). 하지만 실제 우리의 힘이 그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돌아보고 짚어볼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후보를 낸다면 41개 의석수 중 두 자리 수 이상의 유의미한 의석수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지난 10월 28일 퇴임식을 가진 강병기 전 경남 정무부지사가 “경남도가 다양한 대북교류 사업을 계획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막혀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실제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가.
▲통일딸기사업을 비롯해 볍씨 종자보내기 사업, 밀가루와 쌀 보내기 사업 등 경남이 그동안 대북관계 협력 사업을 많이 해왔는데 통일부에서 모두 제동을 걸고 있다. 남북협력사업 전반에 대해 거의 다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최근에 ‘비핵개방 3000’을 주도했던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이 물러나고 류우익 신임 장관이 오고 차관도 여러 가지 남북 비공식 접촉을 담당했던 김천식 차관이 맡았다고 해서 좀 더 유연하게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두관 지사는 전임 김혁규 김태호 지사가 추진했던 대형 사업들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이를 수습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김혁규 전 지사의 거가대교 건설사업과 김태호 전 지사의 이순신 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 이 두 사업은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로부터 집중적인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설거지 지사’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들었다”고 물어보자 김 지사는 “전임 지사들의 승계문화도 중요하다고 본다. 수정 보완해서 마무리할 수 있는 사업은 그렇게 해야 한다. 전임이 잘했던 것도 있지만 전임이 잘하지 못한 것은 아주 곤혹스럽다”며 웃음을 보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다는 김두관 지사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지켜보는 감회가 깊은 듯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장 선거전에 뛰어들었던 지난 9월 24일 고향인 경남 창녕을 방문한 길에 경남도청을 찾아 김 지사와 만났다. 당시 박 시장은 “야권 전체의 정책이나 협력 면에서 좋은 모델이 경남도라 생각한다. 김두관 지사로부터 협력을 얻고 배움을 얻어야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박원순 시장과 친분이 있나.
▲안 지 오래되었다. 2002년에 내가 경남도지사 선거에 나갈 때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그때 직접 내려와서 축사도 해주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군수 마치고 아무런 지명도도 없을 때였는데…(웃음).
―박 시장의 당선을 어느 정도 예측했었나.
▲이번 서울시장 보궐 선거는 이명박 정부 4년의 국정운영, 또 이명박-오세훈 시장으로 이어지는 서울 시정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했는데 이에 대해 서울시민들이 매우 부정적으로 느꼈던 것으로 본다. 내가 정치 전문가는 아니지만 서울시민들의 수준을 보았을 때 박원순 후보가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 되면 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재보궐 이후 야권 통합 방안을 두고 이견이 분출되고 있다. ‘혁신과 통합’이 중심이 될 것인가, 민주당이 중심이 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제1 야당인 민주당 손학규 대표 입장에서는 당연히 민주당 중심의 통합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훨씬 더 큰 기득권을 내놓아야 하는데 통합이 될 수 있을 것일지 의문이다. 혁신과 통합에서도 지분을 요구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었는데 나는 혁신과 통합에 그렇게 비양심적인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람이 있다면 안철수 교수를 포함해서 야권이 크게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민주당으로부터 여러 차례 입당 제의를 받아왔던 것으로 안다.
▲작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민주당에 입당해 민주당 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여러 번 받았었다. 민주당이 나의 친정이고 민주당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 당시 경남도민의 정서상 민주당보다는 야권단일후보로 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또 2008년부터 당적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민주당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당적 문제는 중요한 시기가 되면 고민을 하겠지만 당적을 가질 때엔 그만 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부산 동구청장 선거에서 문재인 이사장이 지원한 민주당 이해성 후보가 패한 것에 대해 문 이사장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도 있는데.
▲문재인 이사장은 후원회장 정도의 역할을 해주신 것이고, 그 결과가 문 이사장에게 타격을 주었다는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친노 진영에서는 문재인 이사장이 내년 총선에 직접 출마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부산·경남·울산에 있는 총선을 준비하는 야권 후보들 입장에서는 (문 이사장이) 직접 참여해서 이끌어주기를 굉장히 고대하고 있다. 나 역시 쉽지는 않겠지만 문재인 이사장께서 부산에서 출마해 총선을 진두지휘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웃음).
“문재인 이사장에 대해 권력의지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가까이서 느끼는 문 이 사장은 어떠한가”라고 덧붙여 물어 보았다. 이에 대해 김 지사는 “‘권력의지’의 해석에 따라 다른데, 현재 지금의 상태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 권력주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 하에 본인의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은 확고하신 것 같다. 자서전 <운명>에서도 ‘당신은 운명에서 해방되었지만 나는 꼼짝 못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상황에 따라서 나설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문 이사장의 직접 출마 가능성을 열어 둔 답변을 내놓았다.
―‘안철수 열풍’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중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나.
▲안철수 교수 개인이 살아온 삶 자체에 대한 감동도 있지만, 국민들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정치세력을 요구하는 것과도 맞아 떨어졌다. 안철수 교수로 상징되는 이러한 흐름은 내년 총선, 대선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안철수 신당’의 출현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하는지.
▲안 교수를 ‘떠받들기’ 위한 정당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안철수 교수 본인이 결단하고 신당을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안 교수가 정치를 할 거면 신당을 창당해서 책임 있게 총선에 임해서 원내교섭단체가 되고 그것을 힘으로 대선에까지 이르는 것이 정치적인 순서가 아닌가 한다.
김두관 지사는 창원에서 열렸던 안철수 교수의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안철수 교수와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을 보며 느낀 바도 컸다고. 김 지사는 “안철수 교수도 대단하지만 박경철 원장도 만만찮은 내공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그때 저런 분들을 정치권에 영입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몇 달 뒤에 이 ‘사고’(안철수 열풍)가 터졌다”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김 지사는 지난 7월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해찬 전 총리가 2017년 대선에 나가면 열심히 도와주겠다고 했다”는 발언으로 내년 대선에 대해 ‘불출마’ 의사를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는지” 물었더니 예상대로 “김두관 도정은 무언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욕심이다. 도정에 전념해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는 원론적 답변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 담긴 ‘뉘앙스’에는 내년 총선을 기점으로 깊은 고민을 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최근 한 강연회에서 “내년 대선이 박근혜 전 대표와 김두관 경남지사 간 양자대결구도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대선까지는 바라볼 것도 없이 앞으로 5개월 후에 있을 총선이 더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김두관 지사. 하지만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지금은 안철수라는 큰 야권의 태양, 여권에는 박근혜라는 큰 태양이 있지 않나. 오세훈 태양이나 김문수 태양은 안 보이는 것 아닌가(웃음)”라며 농을 던졌다.
‘김두관 태양’이 떠오를 ‘때’를 기다리는 듯했다.
경남 창원=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 지난해 경남도 민주도정협의회 출범식. 연합뉴스 |
김두관 경남지사는 지난해 당선 이후 ‘민주도정협의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민주도정협의회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공동지방정부의 개념이다. 최근 퇴임한 강병기 정무부지사 역시 민주노동당 후보로 지난 해 경남지사 선거에서 경쟁했다가 김 지사로 후보단일화가 이뤄진 뒤 김 지사 당선 이후 정무부지사 직에 임명되어 민주도정협의회를 함께 이끌어온 바 있다.
김 지사는 강 전 정무부지사 후임으로 허성무 민주당 창원을 지역위원장을 내정하며 야당 인사들을 번갈아 기용하고 있다. 민주도정협의회에 대해선 정치권에서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연대 방안 논의의 하나의 기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많은 분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는 김 지사는 “그동안 한나라당 위주로 일방적인 도정 운영이 되어왔기 때문에 시민사회나 야4당이 도정에 참여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내가 도정을 맡으면서 민주도정협의회를 통해 이들의 도정 참여 길을 열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여러 가지 모니터링과 자문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 직후 만들겠다고 밝힌 자문기구 ‘희망서울 정책자문단’(가칭) 역시 민주도정협의회를 본 딴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김 지사는 “박 시장의 자문기구가 민주도정협의회와 유사하다면서 김두관 모델, 경남 모델이라는 평가도 있는 것 같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이후에 인천하고 강원 일부에서 공동지방정부를 구성한다고 했는데 경남같이 구체적으로 한 데가 없다. 그나마 경남도가 공동지방정부의 작은 모델이 되었다고 해서 인정을 해주시는 것 같다”며 웃음을 보였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