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억대 시한폭탄 대기중”
▲ SK 비자금 수사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온 해외 비자금 의혹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사진은 8일 압수수색당한 SK 본사. 이종현 기자 |
하지만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최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몇 해 전부터 줄기차게 제기돼왔고, 일각에서는 해외비자금 의혹까지 거론되고 있는 만큼 이번 수사가 단순히 총수 일가의 ‘횡령’ 사건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미국 한인사회 주변에서는 최 회장 일가가 해외비자금 5억달러를 조성해 운용해 왔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최 회장의 1000억대 선물투자 손실 건을 기폭제로 전 방위 수사에 돌입한 검찰의 수사칼날이 국내를 넘어 해외비자금 판도라상자까지 겨냥할 수 있을까.
SK그룹 총수 일가를 겨냥한 검찰 수사의 초점은 최태원 회장의 선물투자 의혹과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의 계열사 투자금 횡령 의혹에 맞춰져 있다.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와 SK해양 고문 출신의 역술인 김원홍 씨(중국체류)가 두 사건의 열쇠를 쥔 키맨으로 지목받고 있다. 특히 증권맨 출신인 김 씨는 최 회장의 돈을 맡아 선물에 투자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검찰은 수개월간의 자금 추적을 통해 SK그룹 계열사가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2800억 원 가운데 1000억 원 안팎의 자금이 김 대표의 차명계좌를 통해 김원홍 씨의 계좌로 들어간 단서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돈이 최 회장의 투자금 중 일부로 밝혀질 경우 동생이 빼돌린 계열사 투자금으로 형이 거액의 선물투자에 나섰다가 막대한 손실을 봤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검찰은 김 대표를 통해 김원홍 씨에게 건너간 SK그룹 계열사 투자금을 500억~1000억대, 최 회장이 선물에 투자한 금액의 규모는 5000억~1조 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2003년 SK그룹 비자금 사건에 이어 또다시 대형 비자금 사건이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특히 유명 재미 블로거 안치용 씨는 수개월 전부터 자신의 블로그인 ‘시크릿오브코리아’를 통해 미국 내 SK와 관련된 서류들을 줄기차게 공개한 바 있다. 안 씨가 공개한 미국 내 SK 관련 서류에는 ‘SK비자금 내역서’와 ‘SK비자금 이동현황’을 비롯해 SK 해외비자금 5억 달러를 관리한 인물로 지목받고 있는 다니엘 윤 사장과 관련된 소장 등 그야말로 방대하다.
▲ 재미 블로거 안치용 씨가 공개한 SK 해외비자금 관련 문건들. |
공개된 문서 중에는 2005년 2월 다니엘 윤 이머전트캐피탈 사장(현 벨스타그룹 회장)과 이머전트캐피탈, SK글로벌 등을 상대로 윤 사장의 직원이었던 권병용 씨가 미국 연방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제출된 증거자료도 포함돼 있다. 당시 SK 측은 SK글로벌이 이미 미국 내에 존재하지 않으며 직접적으로 권 씨를 고용한 사실이 없다며 피고배제신청을 제기했었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소송에선 자유로워졌지만 SK비자금 관련 서류가 증거로 제출되는 것은 차단하지 못했다.
특히 실질적인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다니엘 윤은 이 소송 과정에서 제출된 증거가 사실임을 일부 인정하기도 했다. 안 씨는 관련 자료를 공개하면서 “지난 2003년 1조 6000억 원의 분식회계로 최태원 회장의 구속사태를 맞기도 한 SK그룹이 2000년께부터 브리티시 버진아일랜드 등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 미국 등에서 최소 5억 달러(한화 6000억 원) 규모의 해외비자금을 운용했던 것으로 미 연방법원 재판과정에서 제출된 증거와 홍콩 및 케이만정부 조회를 통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안 씨는 이어 “SK는 일부 언론을 통해 연방법원 소송서류를 통해 밝혀진 5억 달러의 미국 비자금은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사건 때 밝혀진 사실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검찰수사 발표와 채권단 실사결과 발표, 최 회장 재판 1, 2, 3심 판결문 등을 살펴보면 SK가 다니엘 윤이 운영하는 이머전트를 통해 관리한 비자금 5억 달러 중 당시 검찰수사에서 밝혀진 부분은 5000만 달러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안 씨는 “SK의 미국 비자금 5억 달러 중 검찰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추가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SK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안 씨는 이명박 대통령도 SK비자금 관리인에 농락을 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수사 확대시 적잖은 정치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안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해외비자금 5억 달러를 관리했던 다니엘 윤은 SK비자금 관리 사실을 숨기고 지난 2008년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까지 농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글을 올렸다. 안 씨에 따르면 다니엘 윤은 2008년 4월 이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 때 뉴욕에서 차세대동포 10인 중 1명으로 선정돼 이 대통령을 만났다. 다니엘 윤은 당시 한국 국민연금 등 국가연금의 미국투자를 권유했고, 이 대통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한국에서 대규모 투자를 투치했다는 것이다.
안 씨는 “1조 6000억 원 분식회계로 사실상 부도상태를 맞기도 했던 SK글로벌의 해외비자금 관리인이 이 같은 과거를 완벽하게 숨긴 채 대통령을 직접 만나 투자를 권유한 것은 범죄혐의자가 일국의 대통령, 나아가 한국을 농락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현 정부 또한 기본적인 스크린조차 못함으로써 대통령에게 SK비자금 관리인이었던 사람을 만나게 하고 그가 한국에서 투자금을 유치하도록 날개를 달아주는 ‘슬픈 코미디’의 악역을 맡도록 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해외비자금 논란과 관련해 SK그룹 측의 한 관계자는 11월 1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래된 일들이고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며 “SK그룹이 해외에 그 정도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었다면 이런(1000억대 선물투자 손실) 사태는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SK 해외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다니엘 윤 사장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전혀 모른다. 우리와는 관계없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다. ‘블로그를 통해 방대한 양의 SK 관련 문건을 공개하면서 SK그룹의 해외비자금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는 안치용 씨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과거 일이고 실정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자꾸 의혹만 제기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법적으로 대응할 생각은 아직 없다”고 답했다.
과연 최 회장의 선물투자 손실로 불거진 이번 사태가 SK그룹 비자금 사건을 넘어 총수 일가의 해외비자금 사건으로 확전될지 검찰 수사 추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