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겹치는데 대여가격은 수백만 원 차이…“사전 고지 혹은 상품 정보 공개해야”
지난 4월 18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시행됐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약 2년 1개월 만에 해제됐다.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일부 업체들은 수요가 급증하는 등 호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중 한 곳이 웨딩업계다. 한 웨딩업체 매칭 플랫폼 관계자는 “웨딩홀의 경우 문의 건수만 전년 대비 15% 이상 늘었고 내년 5~6월까지 원하는 날짜에 예약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업체들도 예약이 꽉 찬 상황”이라고 전했다.
결혼 수요 증가로 웨딩업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웨딩홀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보수적으로 잡아둔 보증 인원과 식대를 최근 대폭 늘리고 있다.
소비자들은 업체들의 가격 인상과 그 요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웨딩업계는 정보 비대칭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요즘 예비부부들은 보통 웨딩 플래너와 함께 결혼을 준비한다. 웨딩 플래너는 예비부부들이 책정한 금액 내에서 스드메 업체를 추천한다. 하지만 웨딩 플래너가 모든 업체와 협력할 수는 없다 보니 예비부부들은 웨딩 플래너가 제공하는 제한적인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직장인 A 씨는 “소셜 미디어, 웨딩 박람회,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이용해 마음에 드는 업체들을 최대한 알아가도 웨딩 플래너가 해당 업체들과 일을 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사전 조사를 해도 예비부부는 웨딩 플래너가 제시한 선택지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웨딩 플래너도 예비부부가 자신과 협력하는 업체들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예비부부들은 웨딩 플래너가 제시한 가격이 합리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을 구하기 어려운 환경 탓에 어쩔 수 없이 웨딩 플래너의 제안을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A 씨는 이어 “선택지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해당 업체들이 제공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합리적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다른 업체들을 고집하려면 아예 플래너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예비부부들이 알고 있던 ‘비쌀수록 좋은 업체’라는 공식도 무너지는 모양새다. 업체들이 같은 드레스를 취급하면서도 대여 가격은 천차만별인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일부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례에 따르면 업체들의 드레스 대여 가격이 4벌 대여 기준 최소 180만 원에서 최대 550만 원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550만 원을 지불한 예비신부가 고른 드레스와 180만 원을 지불한 예비신부의 드레스가 겹칠 수 있는 셈이다. 해당 글쓴이는 “원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브랜드와 웨딩 플래너만 믿고 업체를 골라 수백만 원을 지출하는 건데, 웨딩업계는 예비부부들을 일회성 손님이라고 판단하는 건지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기분이 너무 나쁘다”고 했다.
또 다른 글에서도 비슷한 사연이 게시됐다. 해당 글쓴이는 “서울 청담동에 있는 한 업체에서 웨딩 촬영에 입을 드레스를 선택했다. 그런데 제가 사는 지역의 한 업체에서 청담동의 업체에서 보유한 드레스를 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퀄리티를 고려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청담동에서 결혼 준비를 하려 한 건데 마음이 아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같은 이유로 업체들을 향한 불신과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예비부부들이 이 같은 정보를 직접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한 드레스 업체 관계자는 “드레스 업체들이 워낙 많다 보니 그들이 소유한 드레스의 정보를 일일이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에 드레스 피팅 시 다른 업체 드레스와 겹친다고 안내하지 못한다”며 “예비부부들이 이를 알고 오지 않는 한 같은 드레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예비신부 B 씨는 “비싼 업체일수록 더 많고 다양한 드레스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내가 고른 드레스 대여 가격이 다른 곳에서는 더 저렴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불편할 것 같다”며 “이 드레스는 다른 업체에서도 취급하는지, 해당 업체만의 독점적인 드레스인지 사전에 알려주는 등 소비자들이 알 수 있게 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재화나 서비스를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시장에서는 공급자가 소비자를 농락할 수 없지만 웨딩업계는 소비자들이 많은 경험을 쌓기 어려운 곳으로서 속기 쉬운 환경”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단속과 규제도 필요하고 업체들이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상세정보를 소비자가 알기 쉽게 공개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