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이 지배하는 시대다. 자본주의로 세계 최강대국이 된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의 정치 기술인 포퓰리즘이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을 가졌다. 물질문명도 그렇다. 인류 생활을 안락하고 풍요롭게 가꾸어 놓았지만 그만큼의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굳이 환경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물질문명을 비판한다. 특히 지식층이라는 이들에게는 필수 항목처럼 되어버렸다. 물질문명 덕에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
물질문명을 자양분 삼아 금세기 막강한 세력을 갖게 된 팝아트는 이런 모순을 아주 또렷하게 보여준다. 팝아트는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로 물질문명의 혜택을 톡톡히 받았다. 그런데 팝아트로 성공한 작가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그리고 이것의 성공 모델인 미국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으로 부와 명예를 얻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1960년대 반전, 환경, 여성, 반체제 운동의 기수였던 미국의 영화인들은 10년 후엔 이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어 세계적 감독 반열에 오른 이들이 꽤 된다. 이런 영화를 ‘재난 영화’라고 한다. 1960년대 미국 내에 번졌던 반(反)미국 정서를 재난으로 본 것이다.
1970년대 들어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온 이 계열의 영화에서 재난을 해결하는 인물은 제복 입은 사람들이다. 제복은 체제를 의미한다. 결국 미국을 지켜내는 것은 체제 저항 지식인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미국의 기존 체제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후 재난 영화는 영화사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아 현재까지도 제작되고 있다. 흥행이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은 우리 미술계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념과 현실적 삶에서 모순을 보여주는 이들의 위선적 행태가 그렇다. 팝아트 계열에 속하는 권지현은 역설이 지배하는 이런 현실을 반어법적 회화로 담아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언어는 블랙 유머로 보인다.
그는 ‘레고 작가’로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대부분 한 번쯤 즐겼던 장난감인 레고의 이미지와 조립 방식을 자신의 조형언어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레고는 정형화된 몇 가지의 부품을 매뉴얼에 맞춰 조립해 사람, 식물, 동물, 건축물, 기계 등을 만든다. 그리고 이를 다시 연결해 하나의 장면으로 확대하는 장난감이다. 이런 방식을 회화적 구성으로 소화한 것이 권지현의 조형언어다. 그의 작품에는 레고 인물이나 동물, 식물 또는 구조물 등이 나온다. 그리고 이들을 연결해 하나의 교훈적 메시지를 구성한다. 메시지는 글자로 등장하면서 구체적 의미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밝고 재미있으며 세련미까지 갖춰 젊은 감각에 꼭 맞는다. 그런데 이런 밝은 이미지가 말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시대 어둠에 대한 메시지다. 마치 고전동화가 품고 있는 블랙 유머 같은 유쾌한 경고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