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시도 자체가 주주 간 분쟁서 ‘유리한 카드’ 될 수도…전문가 “긴 소송, 기업 가치 창출에 도움 안돼”
한국거래소는 지난 8일 교보생명의 코스피 상장을 미승인했다. 1, 2대주주 간 경영 분쟁이 심화해 경영 안정화 전까지는 상장 심사를 승인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교보생명은 현재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너티와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분쟁을 진행 중이다.
앞서 2012년 9월 어피너티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 5000원에 인수했다. 교보생명이 2015년까지 IPO를 하지 않을 시 신창재 회장이 해당 지분을 되사가야 한다는 풋옵션이 달렸다. 신창재 회장은 당시 이 계약 조건에 동의했다. 신창재 회장은 2015년 이후 교보생명의 상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계약 기한 3년을 넘겼고, 어피너티 측이 추가로 제시한 3년의 기간 동안에도 교보생명은 IPO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결국 투자금 회수가 시급해진 어피너티는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분쟁은 행사 가격에서 시작됐다. 어피너티가 주당 24만 5000원에 인수한 교보생명 주식을 40만 9912원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는 총 2조 122억 원 규모다. 교보생명 주식을 24만 5000원에 인수했을 당시 어피너티가 지불한 총 금액은 1조 2054억 원. 어피너티의 풋옵션 행사 가격은 매입 당시 가격의 약 67%인 8068억 원을 더한 가격이었다.
신창재 회장은 생명보험사의 시장가치가 떨어져 20만 원대에 불과하다며 반발했다. 이후 어피너티는 2019년 3월 신창재 회장을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제소했다. ICC는 지난해 9월 신창재 회장이 어피너티가 요구한 풋옵션 행사 가격에 주식을 매입할 의무가 없다는 1차 중재 판결을 내렸다. 어피너티는 지난 3월 신창재 회장을 상대로 ICC에 2차 중재를 신청했다.
사측도 풋옵션 행사 가격을 두고 법적 다툼을 진행 중이다. 교보생명은 2020년 어피너티에 풋옵션 가치를 평가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딜로이트) 회계사 3명과 어피너티 측 임원 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풋옵션 행사 가격인 공정시장가치(FMV)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평가 기준을 지키지 않고 과도하게 높은 금액을 책정했다고 본 것이다.
교보생명에 따르면 딜로이트는 풋옵션 행사 시점이 2018년 10월 23일임에도 FMV 산출 기준 시점을 같은 해 6월 30일로 잡아 그 직전 1년간 교보생명과 유사한 피어그룹(비교기업) 주가를 FMV 산출에 반영했다. 해당 기간에는 삼성생명, 오렌지라이프 등 주요 피어그룹의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시기다.
현재 교보생명과 딜로이트 소송은 2심이 진행 중이다. 결국 수년간 분쟁과 소송이 이어지면서 교보생명은 IPO 도전에 세 번째 고배를 마셨다. 교보생명은 상장 미승인 결과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 원인을 어피너티에 돌렸다. 미승인 결과 후 교보생명은 보도자료를 통해 “교보생명 주주의 약 3분의 2가 IPO에 찬성했음에도 어피너티의 일방적인 반대로 무산된 이번 결정이 더욱 안타깝다”며 “어피너티는 무용한 법적 분쟁으로 IPO를 방해하지 말고 2대주주로서 회사 가치 제고를 위해 적극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어피너티 측은 “교보생명이 상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대주주 개인의 분쟁에서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무리하게 IPO를 추진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교보생명이 성공 유무에 상관없이 IPO에 시도했다는 자체만으로 유리한 입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교보생명이 어피너티와 분쟁 중인 상황에서 상장예비심사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이유도 ‘IPO를 시도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행위라는 평가도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이미 어피너티와 분쟁 전부터 상장 준비를 해왔다”며 “이 과정에서 (어피너티가) 풋옵션을 행사했다. 오히려 풋옵션을 행사하며 상장을 막은 건 어피너티”라고 반박했다.
신창재 회장이 2대주주인 어피너티와 분쟁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도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래의 더 많은 기업가치를 발굴하는 데 발목을 잡는 장애는 적극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며 “현 상황에서 어피너티 요구에 따르기는 어렵겠지만 풋옵션 문제로 긴 분쟁과 소송을 이어간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업의 청사진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며 기업의 가치 창출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소송전을 끝내기 위해선 신창재 회장이 풋옵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풋옵션이 행사될 경우 신창재 회장에게 필요한 자금은 2조 원 내외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신창재 회장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매각이 불가피해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창재 회장은 교보생명 지분 33.7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는 포브스가 발표한 ‘2022년 한국의 50대 부자’에서 순자산 10억 달러(약 1조 3075억 원)를 기록하며 45위에 올랐다. 자금 확보를 위해 보유 지분을 매각할 수 있지만 어피너티가 요구하는 2조 원대 자금 동원은 현재로선 쉽지 않은 상황.
결과에 따라 신창재 회장의 경영권 안정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ICC가 신창재 회장의 손을 들어준다면 경영권 안정화를 다질 가능성이 생기지만, 어피너티 편에 선다면 신창재 회장이 보유한 자산을 압류해 처분할 권리를 가질 수도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강제 절차에 돌입하면 (신창재 회장은) 지금보다 더 불리한 조건에서 지분을 처분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창재 회장이 경영권 안정화를 위한다면 어피너티와 협상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홍기용 교수는 “상장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2대주주와 관계가 너무 틀어져선 안 된다”며 “풋옵션 행사로 발목 잡힐 바엔 (신 회장) 스스로 계약서상 풋옵션 조건에 동의했으므로 교보생명 청사진을 위해선 양보할 건 양보하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