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선 ‘호랑이 쌤’ 밖에선 ‘카운슬러’ 바쁘다 바빠
▲ 여자 프로농구팀 감독들은 남자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선수들을 지도하기 위해 남모를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
우리은행 사태는 남자 감독과 여자 선수들의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과 다르다. 민감하고 감성적이다. 때로는 잘 토라지기도 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조심할 수밖에 없다. 성적을 내기 위해선 채찍도 필요하지만 날이 선 채찍만으론 여자 팀을 이끌기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여자 선수들을 지도하는 남자 감독들의 눈물겨운 애환이다.
“다른 것 없는데? 다 똑같지 뭐.” 감독들은 입을 모은다. 코트 위에서 여자선수들을 대할 때다. ‘남자나 여자나 농구는 농구’라는 의미다. 경기장과 훈련장에 있을 때, 그 순간만큼은 여자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들도 여러 유형이 있다.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성격 좋은 동네 아저씨 타입도 있다. 대표적인 스파르타식 감독은 안산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과 청주 KB스타즈 정덕화 감독이다.
5년 연속 신한은행의 통합우승을 이끈 임달식 감독은 “여자 선수들이 감성적이기 때문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작은 것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하지만, 스파르타식 훈련을 포기하지 못한다. 임 감독은 “기본적인 인격을 존중하면서 약간의 스파르타 훈련이 있어야 한다. 좋은 것만 가져가면 선수들이 따라오질 않는다. 강하게 할 땐 강하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자농구 경험이 풍부한 정덕화 감독도 마찬가지. 정 감독은 항상 선수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난 여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프로선수를 가르친다. 내 앞에서 여자이길 바라지 마라.” 코트 위에선 양보와 타협이 없다는 말이다. 정 감독은 “시대가 변하면서 선수들이 더 민감하고 예민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 신경 쓰면 팀을 이끌 수가 없다. 집중력을 갖기 위해 코트 위에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감독들이 강한 채찍을 드는 이유가 있다. 여자 프로농구는 고교 직행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아직 프로 마인드도 없고, 기량 자체도 떨어지는 어리기만 한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전 구리 금호생명(현 KDB생명) 이상윤 감독은 “고교에서 직행한 선수들은 프로 경험이 없어서 기량을 익히고 환경에 적응하는데 5년 정도 걸린다. 이론과 실기를 세심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부천 신세계 정인교 감독도 생각은 같다. 정 감독은 “선수마다 창의력이나 스스로 푸는 능력이 떨어져 남자선수와 달리 눈높이를 잘 맞춰야 한다”고 토로했다.
코트 위에선 확실히 여자는 없었다. 선수만 있을 뿐이다.
코트 위에선 호랑이인 감독들도 코트 밖에선 돌변한다. 감독들이 오히려 선수들의 눈치를 보는 격이다. 농을 주고받으며 선수들의 기분을 맞춰주기 바쁘다.
용인 삼성생명 이호근 감독은 이 분야 전문가다. 코트 위에서도 다른 감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머니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코트 밖에선 허물없이 어울린다. 선수들도 “감독님, 감독님”이라고 부르며 장난치고 달려든다.
임달식 감독의 노하우는 간단하다. 열심히 뛰지 않으면 훈련량을 늘리는 것. 경기와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을 자유롭게 풀어준다. 선수들도 친한 사이끼리 삼삼오오 모여 맛집 순방이나 영화관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정덕화 감독도 연습장을 제외하고 “너희가 알아서 해라”며 노터치 주의다. 정 감독은 “외출, 외박도 많이 주고 감옥처럼 선수들을 가둬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자선수들은 사고 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상윤 전 감독은 “여자선수들은 술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적다. 밥 먹고 영화 보는 일이 대부분이다. 다만 너무 착해서 나쁜 남자들을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농구라는 특성상 감독이 선수들과 신체 접촉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고충이 있다. 그래서 센터 훈련을 할 때 특별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 남자 지도자가 선수의 신체에 손이나 몸을 비비지 못하게 몸과 몸 사이에 스펀지를 대놓고 가르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꼭 선수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감독도 민망하다. 정인교 감독은 “처음엔 내가 오히려 민망했다. 그런데 선수들이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더라. 고의로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선수들도 훈련 중에 일어나는 신체 접촉은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감독들이 가장 힘든 것은 여자선수들의 예민한 기분을 종잡을 수 없을 때다. 대부분 감독들이 훈련으로 힘든 것과 훈련 외적으로 힘든 것의 비중을 50%로 뒀다. 남자농구의 경우 훈련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여자농구는 신경 쓸 일이 두 배로 많은 것. 13~15명의 선수들이 일주일마다 1~2명씩 돌아가며 감정적 문제를 나타내면 감독들도 카운슬러로 변신할 수밖에 없다. 정인교 감독은 “남자문제부터 집안문제까지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문제가 있으면 꼭 면담을 통해 풀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장에서 바로 나타난다”고 털어놨다.
선수들 사이에서 질투도 심하다. 또 선후배 관계도 엄하다. 감독들이 조심해야 할 또 다른 영역이다. 특정 선수를 편애할 경우 숙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감독들은 여자선수들의 숙소와 아예 층을 달리 쓰면서 선수들 숙소에 절대 근접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한 번 찍힌 선수가 있으면 한 달 동안 말도 못 걸게 하고 인사도 받지 않는 선배의 군기잡기도 성행했다고 한다. 코트 밖에서도 쉴 시간이 없는 것이 여자 프로농구 감독들의 애환이다.
서민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