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끈질긴 구애작전 결국 스트라이크!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정대현의 미국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선우, 이상훈의 보스턴 레드삭스 입단을 주선했던 레이 포이테빈을 에이전트로 선임했고, 포이테빈은 과거 보스턴에서 호흡을 맞췄던 댄 듀켓 볼티모어 부사장을 찾아갔다.
곧바로 볼티모어는 불펜 강화차원에서 정대현 영입에 나섰다. 정대현이 요구했던 최소 2년 계약,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보장금액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볼티모어는 내부 회의를 거쳐 정대현에게 “320만 달러에 2년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다. 정대현은 바로 ‘OK’ 사인을 보냈다. 이제 남은 건 계약서에 사인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정대현의 볼티모어 입단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항간엔 “정대현이 스플릿 계약을 제안받았다”는 말이 돌았다.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정대현은 볼티모어로부터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안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볼티모어와 함께 정대현 영입에 나섰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한 스카우트는 “볼티모어는 계약논의 단계서부터 면담 때까지 정대현 측에 줄곧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시했다”며 “볼티모어가 스플릿 계약을 요구했다면 정대현이 우리와 계약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볼티모어와 정대현은 계약을 맺지 않은 것일까. 이 스카우트는 “정대현은 시즌 출발부터 25인 로스터에 포함되길 원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25인 로스터에 포함되는 계약을 맺을 시, 구단은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상 해당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낼 수 없다. 다시 말해 정대현이 컨디션과 성적이 나빠도 계속 메이저리그에 머무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볼티모어는 “스프링캠프를 통해 기량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단 40인 로스터에서 출발하자”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대현은 이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했다.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어 몸값을 보장받는다손 쳐도 25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못하면 언제든 마이너리그로 떨어질 수 있는 문제였다. 이때 정대현에게 또 하나의 문제가 돌출된다. 바로 건강이었다.
볼티모어와 정대현은 세부적인 계약사항에 이견을 보였지만, ‘계약’이라는 대전제엔 동의한 상태였다. 그래서 정대현은 계약준비의 마지막 단계인 메디컬 테스트를 받았다. 몸에 큰 이상은 없었다. 다만, 메디컬 테스트 결과 간 수치가 높게 나왔다.
정대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도 그럴 게 정대현의 간 수치는 평소에도 다소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운동엔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다. 볼티모어도 간 수치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아시아 선수들에겐 흔한 만성 질병 정도로 인식했다.
그러나 정대현은 12월 7일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란 명목으로 한국으로 돌아왔고, 13일 ‘메이저리그 진출 시도를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하고서 2시간 뒤 롯데와의 계약을 전격 발표했다.
정대현을 놓친 볼티모어는 엉뚱하게 책임을 정대현의 아내에게 돌렸다. 듀켓 부사장은 “정대현의 아내가 한국생활을 더 편하게 느낀 것 같다”며 “이 때문에 정대현이 볼티모어 입단을 주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대현도 “막상 미국에 건너가 보니 아이 교육 환경과 생활 환경 등 현실적으로 느낀 벽이 높았다”며 “아내는 내가 한국에서 뛰길 바랐다”고 털어놨다.
여기서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다. 실제로 정대현의 마음을 돌린 이는 그의 아내가 아니라 롯데였다. 애초 롯데는 정대현을 영입하고 싶었다. 그 같은 의사를 정대현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정대현이 미국행을 선언했음에도 롯데는 관심을 끊지 않았다. 특히나 롯데 이문한 운영부장은 정대현의 미국 내 일거수일투족을 계속 관찰했다.
이 부장은 삼성의 미국주재 스카우트로 오랫동안 활약하며 미 메이저리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기다 지난해는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의 운영부부장으로 일하며 세계야구의 흐름 역시 빠르게 간파하고 있었다. 이 부장은 정대현이 간 수치가 높다는 사실을 접하고 바로 정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말한다.
“간 수치가 높으면 쉽게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는 원정경기의 이동거리가 짧아 경기력에 거의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이동거리가 엄청나게 긴데다 경기일정이 빡빡해 간 수치가 더 올라갈 게 자명하다. 덧붙여 자녀교육과 생활 환경도 생각했던 것보다 가혹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정대현도 미국에 있으면서 직접 피부로 느꼈는지 볼티모어와의 계약에 조금씩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13일 정대현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 부장은 다시 전화를 들었다. “‘일단 만나자’고 했다. 미국에 남든 롯데와 계약하든 얼굴이나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알았다’고 하기에 그 길로 바로 인천으로 올라갔다.”
정대현의 귀국소식을 들은 건 SK, KIA도 마찬가지였다. 두 팀은 정대현과 계약하려고 발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 부장은 정대현과 만나 롯데의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정대현에게 처음부터 4년 36억 원을 제시했다. 볼티모어와의 계약문제를 둘러싸고 심신이 피곤했던 정대현은 롯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부장은 “계약합의 이후 메디컬 테스트를 했지만, 특별한 부상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정대현의 영입으로 롯데 불펜진이 한층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롯데는 내년 시즌 정대현을 김사율과 함께 마무리로 활용할 계획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