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율 20% 넘지 않으면 개표조차 불가…구속력 없어 비례 의원들 사퇴할지도 불투명
정의당 현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에게 사퇴를 권고할지 여부를 결정할 당원총투표 발의 요구가 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접수됐다. 당원총투표 발의 공동 제안자인 정호진 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8월 7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날 1032명 당원의 이름으로 비례대표 의원 사퇴 권고 당원총투표 발의 서명부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의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원총투표는 당직선거 투표권을 가진 권리당원 5% 이상이 제안에 서명하면 발의할 수 있다. 권리당원은 현재 2만여 명으로, 1032명은 요건을 충족하는 수치다. 당원에 의한 당원총투표 발의는 정의당 창당 이후 처음이다.
서명부에는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 5명에 대해 일괄 사퇴를 권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 전 수석대변인은 당원총투표를 제안하며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는 물론 비호감 정당 1위라는 결과를 받아든 지금, 비례대표는 현 사태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며 “우리가 가진 최대의 자원 (비례대표 국회의원) 5석이 달라지는 정의당을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제21대 국회에서 정의당 지역구 의원은 심상정 의원뿐이다. 류호정 장혜영 강은미 배진교 이은주, 5명은 비례대표로 선출됐다.
현역 비례 의원들이 사퇴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 순번에 따라 후순위자들이 이어받는다. 현재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에 따르면 6번부터 10번은 박창진 배복주 양경규 이자스민 한창민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7번의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이미 비례대표 후보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전해진다. 정의당 관계자는 “비례대표 후보자가 다른 선거에 출마하려면 비례대표 후보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며 “배복주 부대표는 지난 3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비례대표 후보직 사퇴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1번 문정은 전 부대표 역시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했다. 따라서 비례대표직은 12번인 정민희 강남구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이어진다.
이자스민 전 의원의 경우 지난 7월 27일 공식 출범한 국민통합위원회에 합류한 상황이다. 국민통합위는 윤석열 대통령 직속 1호 위원회로, ‘대통령 멘토’ 김한길 전 대표가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국민통합위 내 4개 분과 중 사회·문화 분과의 민간위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국민통합위는 정당이 아니다. 민간위원이기 때문에 정의당 활동에 제약이 없다”며 “이자스민 전 의원도 여전히 정의당 당적을 갖고 있고,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에도 올라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 합류한 상황에서 정의당 의원직을 수행하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이자스민 전 의원이 현 의원들의 사퇴로 의원직을 승계 받으면 지난 2012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이어 정의당에서도 비례대표로 의원에 오르게 된다.
당원총투표 발의 서명부가 제출됐다고, 승계 의원 후보군이 누구냐를 보기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실제 총투표가 실시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정의당 비대위는 제출된 서명부에 대해 심사절차를 진행 중이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당권자 자격을 확인하고, 이의 신청을 받는 작업을 거쳐 5% 기준에 부합하는지 최종 판단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의당은 당 홈페이지에 당원총투표 발의에 참여한 당원들의 이름과 거주지역 등 개인정보가 담긴 첨부파일을 공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저촉 가능성이 나오자 정의당은 즉각 파일을 삭제하고 사과했다.
당원총투표 발의 서명부에 결격사항이 없다면, 정의당은 당원총투표 공고를 내고 10일 이후 30일 이내 안건을 투표에 부쳐야 한다.
당원총투표가 실시돼도 개표를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당원총투표는 투표율 20% 이상, 유효투표수 과반일 경우 가결된다. 반면 투표율이 20%를 넘지 않으면 개표조차 하지 않는다.
정의당 한 전직 의원은 “당원총투표 발의를 위해 권리당원 중 5%의 서명을 받는데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5%를 겨우 넘겼다”며 “실제 당원총투표에 들어간다 해도 투표율 20%를 넘기기는 간단치 않을 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당원들이 총투표 발의 소식을 모를 정도로, 발의 서명 과정을 당이 알리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당과 의원들을 비판했다.
당원총투표가 가결돼도 권고안인 만큼 비례 의원 사퇴에 대한 구속력은 없다. 실제 정의당의 한 비례대표 의원은 사퇴 권고안의 입장에 대해 “당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당원총투표도 그 중 하나라고 본다”면서도 “현 상황에서 내가 입장을 밝히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즉답을 피했다.
정 전 수석대변인 역시 “서명기간 중 사퇴 권고에 대한 비례 의원들의 진솔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어떤 의원도 답이 없었다. 매우 아쉽다”고 지적했다.
앞서 전직 의원은 “정의당은 대선과 지방선거 연이은 패배로 국민들에 신뢰를 잃은 걸 확인했다. 위기감에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 느껴 비대위가 들어선 것”이라며 “당원총투표를 원하는 분들은 더 극단 처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비례 의원들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옳은지는 회의적이다. 지금 정의당의 위기는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다. 비례 의원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또한 비례 의원들이 설령 다 사퇴하고 새로운 의원들이 국회에 들어온다고 국민들이 정의당을 새롭게 보겠느냐”고 전했다.
하지만 현 의원들부터 쇄신의 책임감을 갖지 않으면 당이 더 큰 내홍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다른 정의당 관계자는 “류호정 장혜영 강은미 배진교 이은주 현 비례 의원들은 모두 2년여 동안 비대위원장,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 등 지도부를 맡아왔다. 하지만 이들은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그럼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며 “당원총투표가 가결돼 사퇴 권고가 나왔음에도 비례 의원들이 물러나지 않고 버티면 정의당은 혼돈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