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선거 패배, 당원 줄탈당에 당직자 임금 부족…당사 이전 계획도 녹록잖아, 후원금 독려 움직임
“정의당이 어렵다. 지난 4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정의당은 다시 비상 상황에 처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결코 멈추지 않고 새로운 도전과 도약의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7월 23일 고 노회찬 전 의원 4주기 추모제에서 전한 말이다. 당 안팎에서는 당이 진보정당다운 노선을 잃었다는 냉혹한 평가가 잇따르며 당원들의 이탈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면서 당은 재정 문제에 직면했다. 원내 3당인 정의당이 수십억 원대의 부채를 안고 매달 ‘돌려막기’로 연명하고 있는 신세가 됐다.
정의당은 매달 20일 당직자 임금 지급 등을 통해 경비를 지출한다. 하지만 당장 당직자들에게 줄 임금 부족에 처했다. 정의당의 당비 수입 결산은 월말에 이뤄지기 때문에 약 열흘간은 임금을 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 이에 따라 의원들까지 발 벗고 나섰다. 7월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의당은 7월분 당직자 임금이 부족해 의원단에 1억 원대 차입을 요청했다.
실제 소속 의원들이 개인대출까지 감수하면서 내놓은 금액은 총 1억 2000만 원 규모로 알려졌다. 이는 과거 정의당이 재정 유동성에 문제가 있을 때 여러 차례 썼던 방식이다. 일부 당직자들이 임금 부족분에 대한 지급 유예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월세 등 당직자들의 일상이 걸린 문제인 만큼 최대한 해결하자는 입장에 힘이 실렸다.
그럼에도 정의당의 재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3분기 선관위 보조금이 들어오는 8월 중순까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받는 선거보조금과 당원들이 내는 당비로 재정을 충당한다. 6·1 지방선거 보조금으로 정의당은 7월 초 31억 7311만 원을 지급 받았다. 지방선거에서 얻은 선거 득표수 비율, 국회 의석수 비율 등이 반영됐다. 거대양당(국민의힘 210억 3273만 원, 더불어민주당 237억 5772만 원)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정의당의 재정난은 2020년 4월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조국사태’ 이후 집당 탈당 사태를 겪은 정의당은 20대 총선에서 후보들의 지역구 출마를 독려했고, 해당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권에서 43억 원을 대출 받았다. 2019년까지 11억 원대였던 당 재정이 거덜난 직접적인 계기로 꼽힌다.
이후 당은 21대 총선의 253개 지역구 중 73곳에 후보를 내면서 각각 4000만 원을 지원, 후보들을 위해 약 28억 원을 제공했다. 하지만 총선 결과는 지역구 1석과 비례대표 5석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로 돌아왔다. 정의당 지역구 후보 대다수는 득표율 10%를 넘지 못했고, 선거비 절반도 보전 받지 못했다.
이후로도 정의당의 하락세는 계속됐다. 20대 대선에서 정의당 후보로 나선 심상정 의원은 2.37%를 득표했다. 2017년 19대 대선 당시 심 의원의 득표율 6.17% 대비 한참 못 미치는 결과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도 당은 참패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9%에 육박했던 정당 득표율은 4년 만에 4.14%로 반토막이 났고, 총 191명의 후보자 중 9명만 살아 남았다. 이는 2012년 정의당 창당 이래 최악의 성적표다. 예윤해 정의당 부대변인은 “지방선거에서 청년 30% 공천이라는 기준에 맞춰 후보들을 내세우고, 재정 사정이 빈약한 청년 후보들을 지원하다 보니 당의 부채가 불어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당원들의 ‘줄 탈당’ 역시 당 재정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선거권을 갖는 당비 6개월 납부 기준 정의당 당원은 2019년 3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1만 명대 후반까지 떨어지는 등 당원들의 이탈이 심각하다. 정의당이 진보 아젠다를 선점하지 못했고, 민심을 잃은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정의당 내부에서는 당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해법을 찾지 못한 상태다.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민주당 2중대’라는 오명을 얻게 됐고, 이후로도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조성주 정치발전소 이사는 “진보 정치는 새로운 아젠다에 대해 끊임없이 입장을 정리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당이 이를 게을리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서 어떤 정치적 포지셔닝에만 집중하면서 흔들렸다. 점점 사람들이 정의당을 기회주의 정당이라 평가했다. ‘정의당이 어떤 정당인지 잘 모르겠어’ ‘누구를 대표하는 정당인가’에 대한 답이 희미해졌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당사를 영등포나 구로 등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현재 당사는 임대료로만 연간 2억 4000만 원가량을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사 이전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곧 이사할 곳이 확정될 것”이라며 “휠체어가 들어갈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야 하는데, 20년이 넘은 건물은 그런 시설이 없다. 이외에도 당직자들 출퇴근, 교통편도 고려해 협의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실상 당으로서는 후원 등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당내에서는 후원 독려 움직임도 감지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당원은 아니더라도 진보정당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믿는 분들도 후원 좀 해달라. 당이 어려우니 그동안 당비를 안 냈던 당원들은 다만 5000원이라도 당비를 내고 당비를 내는 당원 중 형편이 허락하는 분은 당비를 자발적으로 두 배를 내는 게 어떻겠는가”라고 제시했다.
당내에서는 대안정당다운 모습으로 민심을 다시 얻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선 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은 2~3% 안팎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끌어올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당의 다른 관계자는 “당은 원래부터 (재정이) 힘들었다. 그것보다는 ‘민주당 2중대’ 이미지를 벗는 게 중요하다. 조국사태 이후에 공수처 설치 등 정의당의 궤도와 다른 정책들로 민주당에 힘을 실어줬던 게 치명적이었다. 이제는 친노동 등 정의당의 노선을 걸어가야 할 때”라고 전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