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직선이 이루어낸 문명이다. 도시는 이를 잘 구현해낸 결과물이다. 도시에 직선의 성격을 입힌 것은 유리, 시멘트, 철이었다. 이것이 상자처럼 규격화되고 몰개성적이라고 비판 받는 빌딩이다. 현대문명을 집약한 공간이 바로 직선의 결정체인 고층빌딩인 셈이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태어난 도시 공간인 빌딩은 아이러니하게도 비인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직선의 속성인 기계적 구조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직선의 거의 모든 기능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빌딩은 비인간적인 공간이라는 낙인이 찍혔어도 20세기 100년 동안 꿋꿋하게 성장하면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금세기 들어서도 빌딩의 발전은 멈출 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신도시가 들어서고, 세계 곳곳에서는 직선의 힘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고층 건물 높이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뻔하다. 사람들이 직선에 익숙해졌고, 그것의 결정체인 빌딩 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직선은 인간이 만든 조형 단위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런 합리성이 반영된 도시 공간은 정돈된 미감을 보여준다. 수직 수평이 엇갈리고 만나면서 빚어내는 구조는 합리적 사고를 반영한 20세기 미학의 결정판인 셈이다.
류승선이 보여주는 회화는 이러한 합리적 미학을 바탕으로 한다. 직선이 익숙한 세대의 당연한 선택인 듯하다. 그가 주요 소재로 삼는 풍경은 부산 해운대 신도시의 고층 빌딩들이다.
구상적 소재임에도 추상 회화 느낌이 든다. 기하학적 구성을 했기 때문이다. 직선의 성격을 부각하려는 방법이다. 똑같은 크기와 모양을 가진 창문으로 빼곡한 대형 건물을 화면에 가득 채운다. 반복되는 수직 수평선의 연결로 화면은 숨 쉴 틈이 없다.
류승선의 화면은 이렇듯 추상화 느낌을 보여주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이미지가 중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추상적 구성 속에 구상적 요소를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감수성을 단련해준 도시의 기하학적 구조에다 서정성을 덧입혀 따스한 직선을 보여준다. 물감을 반복적으로 칠해 유채의 깊이감을 살려내는 방법으로 직선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를 통해 도시적 서정을 보여주려고 한다.
류승선의 풍경은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유지한다. 도시적 서정의 ‘쿨’한 정서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굳이 참견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겠다는 도시인의 생태가 만들어낸 서정성이다. 작가는 조금은 멀리 떨어진 각도에서 바라보는 풍경으로 이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