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아 석민아 퍼뜩 빅리그서 만나자~
▲ 추신수가 12월 16일 부산 육군 53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면서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군대의 추억
서른 살의 나이에 처음 입어본 군복. 야구가 단체 운동이라고 해도 내무반 생활을 포함한 훈련병 생활은 추신수 뿐만 아니라 다른 훈련병들도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추신수는 얼굴이 알려져 있다 보니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처음엔 훈련병 동기들과도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모두 똑같은 입장에서 똑같은 훈련을 받으며 몸으로 부대끼다보니 조금씩 친밀감이 형성되더라. 그들 사이에서 난 나이가 가장 많은 훈련병이었다. 솔선수범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내 성격도 완벽주의자라 게으름을 피우거나 대충하는 건 용납되지 않았다. 4주간의 시간은 너무 짧았지만, 훈련 강도는 정말 빡셌다(웃음).”
추신수는 가장 기억나는 훈련으로 화생방 훈련과 야간행군을 꼽는다. 특히 20㎞의 야간행군은 야구선수로 살아온 선수 추신수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했던 시간들이었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던 순간부터 부산고 시절 미국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입단했던 상황, 무빈이 낳고 병원비가 없어 검사를 받지 못해 가슴 아팠던 일들,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과정들, 주전선수로 꼽히며 펄펄 날았던 시간들, 397만 5000달러의 연봉을 받았던 지난 시즌, 그리고 내 인생 최대 오점으로 남을 만한 사건…. 내가 야구선수로 살아온 지난 삶들을 되새김질하면서 야간행군을 했다. 한마디로 희로애락으로 정리되는 나의 야구인생이더라.”
야구 좋아하는 부산 출신들이 모인 훈련소이다 보니 추신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고 한다. 틈날 때마다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들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53사단 내에서 사인회를 열었을 정도라고.
“중대장님과 대대장님께서 사인회를 제안하시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4주만 훈련받고 먼저 떠나는 게 너무 죄송했고, 부대 밖에선 흔한 것들도 부대 내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라 사인회가 아주 성황리에 열렸다(웃음). 모두들 2012년 시즌을 맞는 나를 걱정해주셨고, 53사단의 센 기를 받아서 미국으로 돌아가 더 열심히 해줄 것을 부탁하셨다. 4주동안 10㎏이나 빠졌다. 겨울에 이런 몸 상태가 된 게 정말 오랜만이다. 좋은 동기들과도 인연을 맺었고, 그들뿐만 아니라 부대 내의 모든 관계자들이 나를 응원하겠다고 하니, 새해는 뭔가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추신수는 퇴소하는 날, 훈련 동기들과 가족들을 모두 초대해 부산 시내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들과 어울리는 동안 추신수의 존재는 메이저리그 선수가 아닌 ‘형’이었다.
“언제 또 다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겠나. 야구선수들이 아닌 대한민국 청년들과 동고동락하며 나라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슴 속에 태극마크를 달고 혼자 국가대표가 돼 뛰는 심정이었다면 훈련소 안에서는 모든 훈련병들이 국가대표가 돼 나라를 위해 뛰고 달렸다. 군인들의 삶, 그들의 진정성과 수고들을 진하게 깨달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거기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그립고 보고 싶을 것 같다.”
▲ 추신수가 기초군사훈련 퇴소식에서 부인을 만나는 모습. |
추신수도 분명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봤다. 마이너리그에서 몸 담고 뛰었던 5년 6개월 동안 많은 위기를 극복해가며 메이저리그 주전으로 성장했다. 그는 가끔 2007년 시즌 끝나고 9월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잠시 한국 복귀를 생각했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곤 한다.
“결혼만 안 했더라면 한국 복귀는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려 했는데 아내의 만류로 주저앉았던 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마음을 다잡고 미친 듯이 재활에 몰두하면서 내 인생을 펼쳐갈 수 있었으니까. 가끔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후배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빅리그로 올라가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실력을 준비해놓는 게 중요하다. 고등학교에서 야구할 때까지만 해도 MVP를 받는 등 나름 최고의 실력을 갖췄다고 자부했었다. 그 자부심은 미국에서 유니폼 입고 훈련받은 첫 날 산산조각이 났다. 나보다 잘하는 선수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른 빅리그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마이너리그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추신수는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동안 클리블랜드의 동료 선수들 소식이 제일 궁금했다고 한다. 시즌을 마친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선수들이 팀에 합류하는 일이 잦아 클리블랜드의 선수 구성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제일 궁금했던 선수가 사이즈모어였다. 그런데 알아보니까 사이즈모어가 클리블랜드랑 1년 재계약을 했더라. 얼마나 기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더욱이 나랑 같이 뛰었던 미치 탈봇이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굉장히 성실하고 착한 선수다.”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야구대표팀의 류현진, 윤석민, 봉중근, 추신수가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
추신수는 퇴소 후 자신을 놀라게 한 소식 중 한 가지가 정대현의 볼티모어행 포기 선언이었다고 한다.
“훈련소 입소한 다음 날인 11월 22일, 부대 고위 관계자를 통해 정대현 선배의 볼티모어행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미 대현 형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팀으로 가게 될지 많이 궁금했는데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속해 있는 볼티모어와 계약이 임박했다고 해서 가슴이 설렐 정도였다. 시즌 중에 대현 형과 맞대결을 펼칠 수 있는 장면들이 상상의 나래를 더했다. 그런데 퇴소해서 나와 보니까 대현 형이 볼티모어가 아닌 롯데와 계약을 맺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두 차례의 WBC 대회를 통해 대표팀에서 인연을 맺은 사이라 대현 형이 공 던지는 스타일과 장점 등을 두루 꿰고 있는 터라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맞대결이 무산돼서 많이 아쉬웠다(웃음). 나름 그 ‘지저분하다’라고 소문 난 공을 미국 타자들에게 꼭 선보이길 바랐는데….”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돼버렸지만 추신수는 볼티모어나 또는 클리블랜드 홈구장에서 한국 선수들끼리 투타 대결을 펼치는 그림이 정녕 ‘그림’으로만 끝나버린 게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다.
추신수는 친구 이대호가 일본 오릭스로 진출하게 된 데 대해선 진심으로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워낙 실력도 인성도 좋은 선수라 어느 나라, 어느 리그든 이대호라면 분명히 성공가도를 달릴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도 한마디 덧붙인다면 일본이든, 미국이든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면 야구 잘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최고라고 인정받았던 선수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함정들이 외국 무대에는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새로운 무대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한국의 이대호는 잊고 일본 선수들을 상대로 쉽게 물러서지 않는 자신감, 자존감을 보여주길 바란다. 나 또한 새해에는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야구를 대할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을 잊고 미국 야구에 첫 발을 내딛는 심정이 돼 도전정신과 용기를 갖고 시작할 것이다. 대호는 일본에서, 난 미국에서 서로의 이름을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추신수는 한국에 있는 동안 류현진과 윤석민을 개별적으로 만나 식사를 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두 선수 모두 메이저리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 추신수도 후배들이 물어보는 메이저리그의 세계에 대해 성심성의껏 대답해줬다는 후문이다.
“두 선수 모두 몸 관리 잘해서 미국 무대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워낙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라 개인적인 기대감도 크다. 현진이는 밝고 개구쟁이 같은 스타일이고 석민이는 조용한 성격이 특징인데 둘 다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이라 지금처럼만 해나간다면 메이저리그 안착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 혼자 남아 있는 데 대해 외로움보다는 책임감이 더 강해졌다고 말한다. “명맥이 끊기면 안 되지 않나. 후배들이 빨리 올라왔으면 좋겠다”면서 “개인적인 목표는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은퇴하는 한국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부산=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