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접대라니요~ 우린 학술회의 중
최근 경희의료원에서 벌어진 몇몇 교수들 간의 ‘주먹다짐’ 폭행 사건이 수억 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나누는 과정에서 일어난 다툼 때문이라는 속사정이 알려지면서 리베이트에 대한 엄중한 단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9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순환기내과 김 아무개 교수는 “같은 병원 순환기내과 K 과장에게 맞았다”며 12월 7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단순 폭행 건이 아니라 제약회사에서 받은 리베이트 분배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다툼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현재 검찰에서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다. 리베이트란 특정 약품을 구입한 대가로 제약회사가 병원·의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행 의료법상 리베이트는 불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의료계 관계자 다수는 “의료계 리베이트는 오래된 관행으로 쉽사리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일요신문>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료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왔던 리베이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현직 전문의들을 만나 리베이트 유형을 파헤쳐봤다.
리베이트는 무엇보다 병원이나 재단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소위 ‘랜딩비’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미 업계 내에서 잘 알려진 방식의 고가 리베이트다. 고가로 책정된 이유는 랜딩비의 경우 병원 및 재단을 상대하기 때문에 금품의 규모가 가장 큰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병원에 최초로 의약품이 납품될 때 제공되는 사례형 금품인 셈이다.
개원 병원의 경우 개원 초기 약품 도매상이나 제약회사로부터 몇 억 원씩 미리 랜딩비를 받아 개원비용 중 일부를 충당하는 일이 왕왕 있다는 것은 이미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의사는 랜딩비를 받은 대신 개업 후 모든 약품을 그 도매상이나 제약회사를 통해서만 제공받는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써준다.
문제는 일부 도매상이나 제약사 측도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 병원 측을 상대로 ‘한 달 약품 매출이 어느 정도 되게 하겠다’는 계약서를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전문의는 “랜딩비를 받은 병원 중 개업 후 환자 수가 예상보다 적은 병원의 경우 약품 매출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처방을 하기도 하고 때때로 도매상이나 제약회사로부터 압박을 받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호텔 쿠폰 등으로 리베이트를 교묘히 대체하는 사례도 있다. 과거 일부 제약회사가 해외 학회에 참여하는 의사들을 상대로 비행기 표, 호텔, 식사비용 등을 제공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현재는 이러한 형태의 리베이트는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대신에 제약회사 및 도매상들이 지방에 호텔을 잡아 심포지엄을 개최함으로써 의사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보다 ‘안전한(?)’ 리베이트가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어떤 질병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의사들을 초청, 몇 시간 동안 강의를 하게 한 후 호텔 숙박권 및 식사 쿠폰을 지급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강의를 조금만 해주면 호텔에 머물면서 주변 관광도 즐길 수 있다. 비슷한 예로 약품 설명회라는 형식으로 식당에 모여 직원의 약품 설명을 잠시 들은 후 식사를 하기도 한다. 어차피 의사들이 다 아는 약품이고 그저 고가의 식사 대접을 받는 것이다. 또는 식당에 미리 제약회사 직원이 가서 얼마 정도 결제를 해놓으면 의사들이 가서 식사를 하는 형태도 있다고 한다.
시판 후 임상조사(PMS)라는 형식으로 의사에게 특정 제품을 사용한 후 환자의 반응이나 상태에 대한 설문지를 작성하게 하는 ‘신종 리베이트’도 생겼다. 의사에게 자문료 형식으로 설문지 한 장당 약 5만~10만 원 상당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전문의는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자문료 지급 형식 같으나 결국은 특정 제품을 많이 사용하도록 유인하는 신종 리베이트로 생각돼서 설문을 거부해왔다”며 “의사들에게 이런 형식으로 새로운 제품을 경험하게 하고 또 PMS가 끝난 후에도 그 제품이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자문료) 받은 게 있으니 계속 해당 제품을 쓸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의도에서 이런 리베이트가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경찰 수사에 따르면 의사가 설문지 작성을 귀찮아 하면 제약회사 직원이 옆에서 작성하는 것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어 이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약품뿐 아니라 수술 시 쓰는 기계, 기구에도 리베이트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에는 기계와 관련한 리베이트 액수가 상당한 고가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기계 값들이 워낙 낮아져서 이러한 리베이트도 많이 사라진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조 원가가 낮은 국내회사 제품 등에서는 수술 시 회사 기계를 쓰면 하나당 얼마를 주는 형식의 리베이트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리베이트 관행은 비단 제약회사 측의 일방적인 금품 지급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취재 결과 일부 의사들의 경우 제약회사의 영업사원들이 명절에 선물을 가져오지 않으면 직접 전화해서 ‘선물을 가져오라’고 닦달하는 일도 꽤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나마 지금은 ‘쌍벌제’ 등 감시가 엄중해져 명절 선물을 가져오는 제약회사들은 거의 사라진 상태라고 한다.
리베이트의 근원적인 문제점은 이러한 대가가 의사로 하여금 약품이나 기계 선택 시 환자에게 어떤 것이 가장 좋을지가 아니라 좀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리베이트가 있는 제품을 선택하게 한다는 데 있다. 공무원이나 건설 회사가 뒷돈을 챙기기 위해 부실업체 제품을 사용해서 부실 공사가 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낳을 수 있어 앞으로 더욱 각 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의는 “리베이트가 비단 의료계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인간의 건강을 대상으로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보다 철저한 감시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