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흥행 쪽박 ‘돈맥경화’ 주의보
▲ 영화 <마이웨이> 라트비아 현지로케에서 강제규 감독과 장동건이 촬영한 신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제공=영화인 |
실제로 2007년 개봉된 한국영화 가운데 수익을 낸 작품은 10편 중 1편꼴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07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07년에는 총 112편의 한국영화가 개봉돼 13편(11.6%)만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심형래가 제작한 <디워>는 국내에서만 800만 관객을 모았다. 상영관 몫과 프린트 비용을 제한다고 해도 120억 원가량은 남겼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디워>의 제작비는 약 750억 원이었다. 물론 심형래는 몇몇 방송에 출연해 미국 개봉 수익 및 2차 판권 수익을 포함해 약 1억 달러(1000억 원, 개봉 당시 환율 기준)를 벌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영화 <라스트 갓 파더>로 또 다시 손해를 본 심형래는 결국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실제로 벌어들인 수입도 엄청나지만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지출이 있었다는 의미다.
심형래는 상징적 존재처럼 뭇매를 맞고 있지만 영화 산업 전체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국내 1, 2위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역시 지난해 비싼 한국영화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CJ엔터테인먼트가 메인 투자한 <7광구>는 220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약 15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음을 감안하면 5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었다. 쇼박스미디어플렉스가 투자한 <고지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여름 시장 가장 강력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손꼽혔지만 300만 고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CJ엔터테인먼트는 여름에 이어 연말에도 가슴앓이 중이다. 배우 장동건 오다기리 조 등이 주연을 맡은 영화 <마이웨이> 때문이다. 강제규 감독이 7년 만에 내놓는 신작으로 28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홍보 및 마케팅 비용을 포함하면 총 제작비는 3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아직 개봉 중이지만 손익분기점인 1000만 관객을 기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암울한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실패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심형래와 같이 ‘스타 감독’이라 불리는 이들이 감독하거나 제작한 영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7광구>와 <퀵>은 모두 윤제문 감독이 제작한 영화이고 <마이웨이>는 강제규 감독이 연출 및 일부 제작 참여한 작품이다. <고지전> 역시 요즘 한창 급부상 중인 장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오르면 투자가 원활해진다. 원활한 투자는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블록버스터를 연출할 수 있는 계기로 이어진다. ‘감독’의 이름을 보고 투자가 몰리는 만큼 스타 감독들은 아예 회사를 만들어 직접 제작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강우석, 강제규, 윤제문, 박찬욱 등의 스타 감독들이 모두 전·현직 영화사 대표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2011년 영화계에서 이런 스타 감독들이 연거푸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대작이 잇따라 실패하며 투자자들도 움츠러들고 있다. 반면 <써니> <도가니> <완득이>와 같이 볼거리보다 이야기와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성공을 거뒀다. 향후 ‘고비용 고효율’보다 ‘저비용 중효율’ 영화에 더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자사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덩치가 큰 영화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고 안전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올해 초 제대 후 아직까지 행동을 재개하지 못한 배우 조인성이 그 피해자다.
조인성은 당초 복귀작으로 영화 <권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제작비가 마련되지 않아 차일피일 크랭크인을 미루다 결국 조인성이 하차했다. <권법>의 메인 투자자로 참여할 예정이었던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 재검토를 결정했기 때문. 투자 여부를 9월 초에 최종 결정하기로 했으나 결국은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약 180억 원이 투입되는 <권법>은 충무로의 미아가 돼 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소 영화 제작사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권법> 외에도 몇몇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에 제동이 걸렸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이미 적잖은 비용을 썼기 때문에 되돌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영화 제작은 시간이 곧 돈이다. 제작이 지연될수록 제작비는 상승한다. 유지비 때문이다. 완성본을 내면 흥행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지만 투자를 못 받는 지금은 앉아서 굶어죽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충무로의 큰손들이 발을 빼면서 ‘위험한 돈’의 유혹도 생기고 있다. 건전한 영화 펀드가 아니라 사채 시장에서도 영화계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것. 물론 ‘투자’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손해를 봤을 경우 어떤 피해를 감수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다. 심형래가 투자사들과의 송사에 휘말려 결국 파산에 이른 것처럼 또 다른 스타 감독이 비슷한 처지에 내몰릴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사채까지 쓴 경우라면 그 파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 관계자는 “우선은 영화를 만드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에 제작자들이 어떤 조건으로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받을지는 알 수 없다. 반드시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아니더라도 충무로의 돈줄이 마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심형래 감독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그의 몰락을 지켜보며 동병상련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이유다”고 덧붙였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