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맛보고 ‘공백’ 견뎌…이제 뿌리 깊은 배우 됐다
▲ 2000년대 들어 정상에서 내려온 한석규는 지난해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흥행성적으로만 본다면 ‘잃어버린 10년’이지만 그동안 한석규는 스타에서 배우로 진화했다. 연합뉴스 |
# 90년대 후반 최고의 배우
한석규는 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였다. 95년작 <닥터봉>을 시작으로 99년작 <텔미썸딩>까지 여덟 편의 영화를 내리 흥행에 성공시켰다. 90년대 충무로에서 한석규는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였다. 그렇다고 그냥 흥행 배우는 아니었다. 강제규 이창동 장윤현 허진호 등 실력파 감독의 입봉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 흥행 신화를 일궈냈으며 심은하 전도연 김혜수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가 앞 다퉈 그의 파트너로 영화에 출연했다. 한석규는 유독 신인 감독의 입봉작을 선호한다. 그 이유에 대해 한석규는 한 인터뷰에서 “배우가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객관적인 눈인데, 신인 감독들이 그런 눈이 돼준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교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키워온 그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연기 수업에 들어갔다. 대학 2학년 때 강변가요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으며 연예계 데뷔 역시 배우가 아닌 KBS 22기 공채 성우 합격을 통해 이뤄냈으니 그는 일치감치 ‘만능 엔터테이너’의 자질을 겸비했던 스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한석규라는 배우의 가장 큰 장점으로 빼어난 연기력과 목소리, 그리고 노래 실력 등이 손꼽힌다.
KBS 공채 성우가 되고 1년 뒤인 91년 MBC 공채 탤런트가 된 한석규는 브라운관에서 고속 성장을 거듭한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해 92년 드라마 <아들과 딸>을 통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대중들에게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드라마 <파일럿>을 통해 93년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받은 한석규는 1년 뒤인 94년엔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제비족’ 홍식을 연기해 MBC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다.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3년여 만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한석규는 충무로로 활동 영역을 옮긴다. 그렇게 만난 첫 작품이 <닥터봉>이다. 이 영화를 통해 흥행 배우의 면모를 다진 한석규는 강제규 감독의 입봉작 <은행나무 침대>를 통해 확실한 티켓파워를 선보인다.
한석규의 전성기는 97년으로 한 해 동안 <초록물고기> <넘버3> <접속>에 연이어 출연해 세 편 모두 흥행에 성공시킨다. 1년 동안 다른 장르의 영화 세 편에서 각기 다른 색깔의 캐릭터를 소화하며 모두 흥행시킨 것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연기력과 흥행력을 고루 갖춘 배우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98년 심은하와 함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출연하며 또 한 번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자 매스컴에선 ‘한석규 신드롬’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80년대 안성기, 90년대 초중반의 박중훈 최민수 문성근에 이어 90년대 중반 이후의 충무로는 한석규 원톱 시대였다. 그리고 그 방점을 찍은 작품은 99년작 <쉬리>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는 당시 기록적인 흥행 기록을 세우며 한국 영화 중흥기를 연다. 그렇지만 한석규는 같은 해 개봉한 영화 <텔미썸딩>을 끝으로 휴식기에 돌입한다.
한석규의 필모그래피는 99년으로 중단됐고 2003년 <이중간첩>으로 재개된다. 그러나 2003년 고소영과 함께 출연한 영화 <이중간첩>은 흥행 참패를 기록한다. 한석규의 흥행 신화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한석규에겐 매우 힘겨운 2000년대 초반이었다. <쉬리>의 흥행 대박 이후 충무로에는 투자의 물꼬가 트였고 이는 이후 1000만 관객 신화 등 한국 영화 중흥기로 이어졌다. 그 주역인 한석규 역시 자신의 매니저로 활동해온 친형 한선규 씨와 함께 힘픽쳐스를 설립한다.
검증된 티켓파워의 한석규가 친형이 대표로 있는 힘픽쳐스에서 제작하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 흥행 대박을 낼 경우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한석규 형제에 대한 충무로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게다가 힘픽쳐스에서 자체 제작하려 했던 프로젝트들이 연거푸 무산됐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로 한석규와 차승원이 주연으로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무산됐다. 이후 한석규와 이은주가 주연을 맡는 <소금인형>이라는 영화 제작에 돌입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이렇게 3년여의 시간이 흘러갔고 연기 공백기를 갖는 동안에도 한석규는 꾸준히 CF에 출연했다. 이로 인해 CF 전문 배우라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감수해야 했다.
# 흥행배우 아닌 평범한 배우
앞서 밝혔듯이 <이중간첩>은 한석규와 고소영의 3년여 만의 컴백작이라는 기대와 달리 흥행에선 참패했다. 공동 제작으로 참여한 힘픽쳐스의 첫 영화이기도 했던 <이중간첩>의 흥행 실패로 힘픽쳐스의 차기작 제작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결국 2004년 <소금인형> 프로젝트는 ‘제작 중단’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1년여의 공백기를 또 가져야 했던 한석규는 이은주 엄지원 성현아 등과 함께 영화 <주홍글씨>에 출연했지만 이번에도 흥행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한국 영화 중흥기의 문을 연 한석규였지만 정작 한국 영화계 절정의 시기인 2000년대 초중반에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 공백을 송강호 설경구 최민식 등이 대신했다.
영화 <주홍글씨> 제작발표회에서 한석규는 “최고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오히려 편안한 심정”이라며 “전엔 내 얼굴에서 인생의 쓴맛을 느낄 수 없었는데 이젠 조금 쓸 만해졌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힘픽쳐스를 통해 형제가 함께 만드는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은 한석규는 2005년부터 다시 왕성한 연기 활동을 재개한다. 2005년에 영화 <그때 그사람들>과 <미스터 주부퀴즈왕>에 연이어 출연했으며 2006년엔 <음란서생> <구타유발자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등 세 편에 연이어 출연했다. <음란서생>은 흥행에 성공하지만 다른 작품들은 모두 흥행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이었다. 아니 더 이상 한석규는 흥행배우가 아닌 만큼 그의 출연작의 흥행 성적에 매스컴 역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탄탄한 연기력은 이미 검증된 배우인 만큼 그의 연기력과 영화의 작품성이 오히려 주된 관심사였다.
그 이후 한석규의 필모그래피는 2008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009년 <백야행> 2010년 <이층의 악당>으로 이어진다. 1년에 한 편씩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40대 후반의 배우로 자기만의 자리를 충무로에서 만들어간 것. 어찌 보면 80년대와 90년대 초중반에 충무로의 중심에 섰던 안성기, 박중훈과 비슷한 행보다.
▲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 역을 맡은 한석규. ‘뿌요일’ ‘뿌나’ 등의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진제공=SBS |
95년 MBC 드라마 <호텔> 이후 16년 동안 충무로에서 활동한 한석규는 지난해 무려 16년 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했다. 복귀작은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나약한 인간 ‘이도’로 시작해 욕하는 임금 ‘세종’을 거쳐 밀본과 싸우며 한글 반포를 위해 혼신을 다하는 ‘대왕’의 모습까지 그려낸 한석규는 2011년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의 영예를 누린다. MBC 연기대상 신인상으로 시작해 최우수연기상을 거친 한석규는 16년여의 스크린 외도를 마치고 다시 브라운관으로 돌아와 비로소 대상을 거머쥔 것.
최고 시청률 25.4%로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비록 4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국민 드라마의 반열에 오르진 못했지만 ‘뿌요일’ ‘뿌나’ 등의 신조어까지 만들며 시청자들의 고른 사랑을 받았다. 이를 통해 한석규는 다시 한 번 최고의 자리에 섰다.
한석규는 2012년 다시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영화판에선 다소 주춤해진 그의 흥행력 역시 2012년엔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크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를린>에 출연하는 한석규는 류승범 하정우 전지현 등과 호흡을 맞춘다. 최고의 감독과 배우들이 의기투합한 이 영화를 통해 한석규는 <뿌리 깊은 나무>의 여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그렇게 관객들 역시 10여 년 만에 최고의 배우를 되찾게 됐다.
한편 성우 시절 만난 부인 임명주 씨와 10년의 열애 끝에 결혼한 한석규는 아들 둘, 딸 둘 네 남매를 두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한석규의 절친 동료들
<넘버3>에 최민식 송강호 ‘콕’
한석규는 원만하고 여유로운 성격과 겸손을 잃지 않는 매너로 연예계에서 두루 좋은 평을 받고 있다. 그가 안성기의 뒤를 이을 영화계의 신사로 손꼽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만큼 각별한 인연을 자랑하는 동료 연예인도 많다.
# 심은하
한석규와 심은하는 모두 90년대 후반 영화계 최고의 남녀 배우였다. 멜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스릴러 영화 <텔미썸딩>에서 호흡을 맞춘 두 배우는 전혀 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완전히 다른 캐릭터와 호흡을 선보였다. 이후 2001년 은퇴한 심은하는 자신의 결혼식에 안성기 한석규 이미연 등 단 세 명의 배우만 초대했을 정도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 김혜수
김혜수 역시 한석규와 두 편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한석규가 영화 데뷔작 <닥터봉>에서 김혜수와 호흡을 맞출 당시만 해도 두 배우는 배우보다는 스타의 색채가 강했다. 그만큼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렇지만 2010년작 <이층의 악당>을 통해 15년 만에 다시 만난 한석규와 김혜수는 스타에서 배우로 거듭나 있었다. 영화의 흥행 성적은 다소 떨어졌지만 작품성이나 두 배우의 연기력에선 더 좋은 평을 받았다.
# 최민식
2000년대 들어 한석규가 주춤하는 사이 한국 영화 중흥기를 주도한 배우들로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등이 손꼽힌다. 이 가운데 최민식과 송강호는 한석규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한석규는 대학 1년 선배인 최민식과 각별한 사이를 유지해 왔다. 그에게 최우수연기상의 영예를 안긴 드라마 <서울의 달>에 함께 출연한 두 사람은 이후 영화 <넘버3>에서도 호흡을 맞춘다. 특히 <넘버3>는 충무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최민식을 충무로의 중심에 서게 한 작품이다. 5년가량 영화계를 떠나 있던 최민식을 추천해 <넘버3>에 출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가 바로 한석규였던 것.
# 송강호
송강호 역시 한석규의 추천으로 영화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송강호를 처음 만난 한석규는 그의 연기에 매료돼 <넘버3>에 송강호를 추천했다. 이 작품에서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조폭 연기를 선보인 송강호는 단박에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 <쉬리>에도 송강호와 함께 출연하는데 이 작품 이후 주연급으로 거듭난 송강호는 포스트 한석규 시대를 이끌었다. [섭]
<넘버3>에 최민식 송강호 ‘콕’
# 심은하
한석규와 심은하는 모두 90년대 후반 영화계 최고의 남녀 배우였다. 멜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스릴러 영화 <텔미썸딩>에서 호흡을 맞춘 두 배우는 전혀 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완전히 다른 캐릭터와 호흡을 선보였다. 이후 2001년 은퇴한 심은하는 자신의 결혼식에 안성기 한석규 이미연 등 단 세 명의 배우만 초대했을 정도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 김혜수
김혜수 역시 한석규와 두 편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한석규가 영화 데뷔작 <닥터봉>에서 김혜수와 호흡을 맞출 당시만 해도 두 배우는 배우보다는 스타의 색채가 강했다. 그만큼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렇지만 2010년작 <이층의 악당>을 통해 15년 만에 다시 만난 한석규와 김혜수는 스타에서 배우로 거듭나 있었다. 영화의 흥행 성적은 다소 떨어졌지만 작품성이나 두 배우의 연기력에선 더 좋은 평을 받았다.
# 최민식
2000년대 들어 한석규가 주춤하는 사이 한국 영화 중흥기를 주도한 배우들로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등이 손꼽힌다. 이 가운데 최민식과 송강호는 한석규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한석규는 대학 1년 선배인 최민식과 각별한 사이를 유지해 왔다. 그에게 최우수연기상의 영예를 안긴 드라마 <서울의 달>에 함께 출연한 두 사람은 이후 영화 <넘버3>에서도 호흡을 맞춘다. 특히 <넘버3>는 충무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최민식을 충무로의 중심에 서게 한 작품이다. 5년가량 영화계를 떠나 있던 최민식을 추천해 <넘버3>에 출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가 바로 한석규였던 것.
# 송강호
송강호 역시 한석규의 추천으로 영화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송강호를 처음 만난 한석규는 그의 연기에 매료돼 <넘버3>에 송강호를 추천했다. 이 작품에서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조폭 연기를 선보인 송강호는 단박에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 <쉬리>에도 송강호와 함께 출연하는데 이 작품 이후 주연급으로 거듭난 송강호는 포스트 한석규 시대를 이끌었다. [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