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송환 전 정부 관계자와 말 맞췄다”
▲ 2007년 11월 16일 국내로 송환된 김경준 씨의 표정은 의아할 정도로 득의만만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었을까.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김 씨가 송환되기도 전에 당시 여권 측이 김 씨를 만나 ‘밀담’을 나눴다는 황 소장의 폭로는 2007년 대선정국 당시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이른바 ‘노무현-이명박 빅딜설’ 의혹을 재점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BBK사건에 대한 의혹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을 강타할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노명박 빅딜설’의 실체를 추적해봤다.
황소장이 우리나라 정부 관계자와 김경준 씨의 접견사실을 인지한 것은 2007년 10월 중순경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황 소장은 “그해 10월 15일경으로 기억한다. 서울 신라호텔에서 미 정부 소속 인사 A 씨를 만났다. 2006년 ‘미국 스파이 사건’ 장본인이었던 나는 그 일을 계기로 미 측 인사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는데 A 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A 씨는 대선을 앞둔 한국 상황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나는 A 씨로부터 실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한국정부 관계자가 LA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김경준을 찾아와 장시간 진술을 받아 갔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정황을 놓고 봤을 때 A 씨가 말한 ‘정부관계자’는 검찰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이어 “내게 위와 같은 사실을 귀띔해준 A 씨는 미국 정부 소속으로 한국 관련 부서의 고위담당자다.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얘기다. 또 그날 나 외에도 이 얘기를 들은 또 다른 동석자도 있다. 이것은 추후 검찰에서도 증명할 수 있는 팩트”라며 자신 주장이 신빙성에도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당시는 BBK사건의 주역인 김 씨가 국내로 송환될지 여부도 불확실했던 때로, 정치권은 대선의 뇌관이 될 김 씨를 놓고 극도로 예민해져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복수의 정보통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김 씨가 한국으로 송환된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심지어 미 고위 정부관계자들 사이에서 ‘김경준의 입에 한국 대통령이 결정된다’ ‘한국이 요청하면 김경준을 보내야 하는데 그가 어떤 진술을 할지 궁금하다. 정권 교체가 걸려있는 만큼 추후 한-미 관계에 괜한 불똥이 튀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등의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로 김 씨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황 소장이 A 씨 등 미 정보관계자들을 통해 전해들었다는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효순·미선이 사건이 한국 대선에 미친 엄청난 파장을 익히 경험했던 미국은 김경준이 송환된 후 어떤 진술을 할지, 또 그의 진술이 대선에 미칠 파급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한국이 김 씨 송환을 요청하면 응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추후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또 정권교체가 된다면 한-미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까지 계산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한국 정부에서 송환 전에 김경준에게 사람을 보내 ‘어떤 진술’을 받아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미 정부는 추후 벌어질 일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황 소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 볼 때 당시 정부 관계자가 미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 씨를 일부러 찾아왔고 장시간 접견을 하고 돌아갔다는 것은 정치적 의혹을 양산하기에 충분했다. 의혹의 핵심은 당시 여권 측에서 김 씨를 찾아간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다. 주목할 점은 김 씨가 당시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2007년 대선을 코앞에 두고 정치권에서 거세게 불거졌던 일명 ‘노무현-이명박 빅딜설’의 진짜 배경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노무현-이명박 빅딜설은 양 측의 아킬레스건인 BBK사건과 비자금 의혹 수사와 관련해 서로 ‘편의’를 봐주기로 했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BBK 수사결과에 정치생명을 걸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고, 청와대는 ‘삼성 비자금 특검’에 노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이 포함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명한 상태로 압박수사가 진행될 시 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유·무죄를 떠나 상당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제기된 양측의 밀약설은 어찌보면 물증 없는 위험한 추측에 불과했지만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다”라는 것이 당시 많은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대선을 앞둔 긴박한 상황에서 양측의 밀약기류가 형성됐음을 감지한 여야 일부 의원들은 이러한 빅딜설을 직접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친이계 측에서는 “BBK사건으로 골머리를 앓자 내부 캠프회의에서 ‘노 대통령 측과 만나서 딜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는데, 이에 대해 그런 것은 이미 하고 있다는 답변이 있었다”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검찰은 BBK 주가조작 관련 이명박 후보에겐 혐의가 없다고 발표했다. 세간에선 검찰이 ‘면죄부’를 준 배경에 ‘노무현-이명박 빅딜’이 있을 거라고 수군거렸다. 사진은 당시 권영길 후보 측이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 항의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
그런데 얼마 후 이 후보에게 면죄부를 안겨준 검찰수사 배후로 지목된 것은 놀랍게도 청와대(노무현)였다. 그 배경에는 ‘노무현-이명박 빅딜설’이 자리잡고 있었다. 실제로 BBK 수사결과와 관련 당시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이 당선이 유력한 후보인 이명박에게 미리 알아서 긴 것이라고 보기엔 석연찮은 게 많다. 검찰이 청와대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 와중에 12월 2일 고려대 선후배 관계로 얽혀있는 노 대통령 측과 이 후보 측 인사가 비밀리에 회동을 갖고 BBK사건에 대해 조율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빅딜설은 정가를 들끓게 했다. 이회창 캠프의 강삼재 전략기획팀장은 BBK 수사결과와 관련 ‘노명박의 작품’이라고 명명하며 노 대통령과 이 후보가 삼성 특검과 BBK 수사를 ‘빅딜’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검찰의 BBK 수사결과는 노 대통령과 이 후보 간 ‘빅딜’을 감안한 짜맞추기식 수사였다는 것이다.
당시 대선정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과 BBK 수사결과를 토대로 추론해볼 때 정부관계자가 김경준 씨를 장시간 접견하고 진술을 받아갔다는 황 소장의 폭로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당시 BBK가 이 후보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며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김 씨의 입에 이 후보의 당락과 정치생명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일까. BBK사건의 키맨으로 대선정국을 뒤흔들 핵폭탄을 안고 2007년 11월 중순 국내로 송환된 김 씨는 연신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으며 표정은 의아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귀국 후 김 씨의 입장은 달라졌다. 그는 옥중에서 가족들과의 면회 등을 통해 ‘완전히 속았다’ ‘당했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김 씨가 ‘속았다’며 펄펄 뛰며 분개한 것은 그가 사전에 누군가와 어떤 밀약을 했을 가능성, 또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방증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씨와 밀약을 했던 상대는 국내 송환 전 LA교도소로 찾아갔던 당시 정부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주목할 점은 당시 정부 관계자와 김 씨가 LA교도소에서 접촉했다는 사실을 미 정부에서 알고 있었으며 양측 간에 오간 ‘밀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측이 김 씨가 한국으로 송환된 후 한국 정치판에 어떤 소용돌이가 일어날지를 두고 가슴졸이며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정부 관계자가 김 씨를 만나기 위해 다급히 LA교도소까지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 장시간 접견에서 양측 간에는 어떤 밀담이 오갔던 것일까.
나아가 2007년 11월 16일 법무부 호송팀에 의해 수갑이 채워진 채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던 김 씨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린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것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BBK사건과 관련해 추후 검찰이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로 남게 됐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