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이 끝나는 곳 황홀한 해거름이…
▲ 꽃지 근처에 안면도자연휴양림이 있다. 굵고 큰 솔숲이 인상적인 곳인데 여행객들이 정취를 만끽하며 걷고 있다. |
가볍게 배낭을 꾸리고 충남 태안 백사장항으로 향한다. 노을길이 시작되는 포구다. 배낭 속에는 차가운 바닷바람에 손실될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초콜릿과 바나나 따위의 간단한 요깃거리와 방한용 목폴라, 물 등을 챙겨 넣는다. 땀이 흐르면 갈아입을 적당한 두께의 재킷도 잊지 않는다.
안면도로 들어서는 다리를 지나면 백사장항은 금방이다. 안면도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포구다. 노을길은 백사장항에서부터 꽃지해변까지 이어지는데, 그 길이가 약 12㎞쯤 된다. 사실 태안에는 걷기 좋은 길이 이 코스 말고도 또 있다. 태안군에서 조성한 솔향기길이 그것이다. 바다와 솔숲을 거닐 수 있도록 길을 닦았다. 태안군 최북단 이원면 만대항에서 원북면 갈두천으로 이어지는 총 42.5㎞의 길이다. 모두 4개의 구간으로 나뉘는데, 각 구간이 짧게는 9.5㎞에서 길게는 12.9㎞로 엇비슷하다.
반면, 백사장항을 기점으로 삼는 노을길은 태안해안국립공원에서 조성한 해변길 중 한 구간이다. 해변길은 원북면 학암포에서부터 안면도 최남단 영목항까지 연결되는 전체 120㎞의 자연탐방로다. 모두 5개의 구간으로 짜여 있다. 1구간이 바라길, 2구간이 유람길, 3구간이 솔모랫길, 4구간이 노을길, 5구간이 샛별바람길이다. 이 중 현재 개통된 구간은 두 개. 솔모랫길과 노을길이다. 나머지는 올해와 내년 계속해서 열린다.
몽산포항에서 출발해 13㎞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내려가면 드르니항에 닿고 솔모랫길이 끝난다. 드르니항은 안면대교를 사이에 두고 노을길의 백사장항과 마주보고 있다. 솔모랫길이 아니라 노을길을 목적으로 삼은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어느 길을 걸어도 태안 해안이 주는 감동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쭙잖은 이유 하나를 들자면 ‘노을’이라는 단어에 이끌렸다. 그 길을 걸으면 낭만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망상 또는 희망.
북서풍이 부는 겨울의 서해는 여름과 달리 매우 사납다. 바람도 차거니와 파도도 그 바람에 등 떠밀려 성을 낸다. 수산물시장이 있는 백사장항은 여행객들이 제법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대하 집산지인데, 요새는 조개류가 제철이다. 특히 새조개가 오동통하니 살이 올랐다. 그 맛의 유혹을 견뎌내고 길에 오른다. 출발은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다. 12㎞의 노을길 전체를 걸으려면 넉넉잡고 3시간30분 정도가 필요하다. 길이 끝나는 꽃지에서 노을을 감상하려면 적어도 14시 이전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
길은 백사장항에서 삼봉해변으로 이어진다. 세 개의 봉우리가 인상적인 곳이다. 이곳에는 아주 일품이 곰솔숲이 있다. 오른쪽으로 해변이 이어지고, 왼쪽으로는 곰솔숲이 기지포해변 너머로 펼쳐져 있다. 어느 길을 택하든 그것은 마음에 달렸다. 해변의 모래는 쌀가루처럼 곱고 곰솔숲은 이우는 태양 아래서 황금으로 빛난다. 바닷길은 바람이 시비를 걸지만 갈매기가 벗을 하고, 곰솔숲길은 심심한 대신 향기가 청량하다.
▲ 기지포해수욕장 해변길. |
기지포에서 조금 걸어가면 창정교를 지나서 길은 두여해변으로 향한다. 창정교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해역이다. 두여해변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해변에서 남쪽 봉우리로 약 500m쯤 걸어가면 전망대다. 밀물일 경우 곧바로 올라가는 길은 폐쇄된다. 대신 왼쪽으로 약 1㎞ 정도를 돌아가야 한다. 두여해안습곡과 말발굽처럼 굽은 밧개해변이 이곳 전망대에서 모두 잡힌다.
두여해변은 노을길의 중간지점이다. 여기에서 길은 밧개, 방포, 꽃지로 계속된다. 밧개 해안에는 전통적인 어로방식인 독살이 잘 보존돼 있다. 독살은 돌로 만든 천연 그물이라 할 수 있다. 돌을 약 50㎝ 높이로 엎어놓은 사발처럼 쌓는다. 그러면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빠져 나가지 못하고 갇히게 된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거리와 시간까지 계산된 걸음인데도 마음이 바빠져서인지 길을 서둘게 된다. 방포항에 군락을 이룬 천연기념물 제138호의 모감주나무숲도 본 척 만 척 하고 꽃지로 내닫는다. 꽃지는 서해 3대 낙조장소로 꼽히는 해변이다. 꽃지에는 국가지정 명승 제69호로 지정된 할미·할아비바위가 서 있다. 할미바위는 매일 같이 출정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늙어 죽은 아내의 넋이 서린 것이고, 할아비바위는 폭풍우 몰아치던 어느 날 할미바위 옆에 솟아올라 여태껏 아내를 위로하고 있다. 이들 바위는 해거름의 배경이 되어 놀랍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완성시킨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해 택한 노을길이다. 12㎞를 걸어오느라 지친 몸이 순간 거짓말처럼 가뿐해진다.
▲ 노을길이 끝나는 꽃지해수욕장. 안면도 최고의 해거름을 보여주는 곳이다. |
안면도 자연휴양림 북쪽에는 안면암이 있다. 안면읍 정당리에 자리한 안면암은 4층 규모의 조계종 사찰이다. 정당리소나무 군락지를 오른쪽에 끼고 계속 들어가면 안면암이 나온다. 이곳은 당진의 왜목마을처럼 서해안임에도 불구하고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안면암이 유명해진 다른 이유는 안면암에서부터 그 앞의 섬까지 이어진 부교 때문이다. 안면암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바다로 내려가면 부교가 놓여 있다. 물이 빠지면 뻘 위에 내려앉고 물이 들면 바다 위에 떠서 여우섬과 조그널이라 불리는 쌍둥이 섬에 다리가 연결된다.
김동옥 여행작가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홍성IC→서산 방면 29번국도→안면도 방면 40번국도→77번국도→안면도 백사장항 노을길.
▲먹을거리: 요즘 새조개철이다. 조개 속살이 새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 같은 이름이 붙었는데, 맛이 아주 그만이다. 크기는 백합조개 이상이다. 샤브샤브를 주로 해먹는다. 오래 익히면 질기다. 살짝 익혀서 먹으면 아주 부드럽다. 백사장항 주변에 자연산수산물어시장(041-673-1008) 등 새조개집들이 많다.
▲잠자리: 꽃지와 방포해변 주변에 오션비치(041-673-7751), 해조음펜션(010-2402-2518), 방포바다펜션(017-707-1441) 등 해거름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 좋은 펜션들이 많다. 보다 자세한 숙박업소 검색은 안면도닷컴(http://www.anmyondo.com)을 이용하면 좋다.
▲문의: 태안해안국립공원(http://taean.knps.or.kr) 041-672-9737~8, 기지포해변길 탐방지원센터 041-673-1066.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홍성IC→서산 방면 29번국도→안면도 방면 40번국도→77번국도→안면도 백사장항 노을길.
▲먹을거리: 요즘 새조개철이다. 조개 속살이 새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 같은 이름이 붙었는데, 맛이 아주 그만이다. 크기는 백합조개 이상이다. 샤브샤브를 주로 해먹는다. 오래 익히면 질기다. 살짝 익혀서 먹으면 아주 부드럽다. 백사장항 주변에 자연산수산물어시장(041-673-1008) 등 새조개집들이 많다.
▲잠자리: 꽃지와 방포해변 주변에 오션비치(041-673-7751), 해조음펜션(010-2402-2518), 방포바다펜션(017-707-1441) 등 해거름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 좋은 펜션들이 많다. 보다 자세한 숙박업소 검색은 안면도닷컴(http://www.anmyondo.com)을 이용하면 좋다.
▲문의: 태안해안국립공원(http://taean.knps.or.kr) 041-672-9737~8, 기지포해변길 탐방지원센터 041-673-1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