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팔던 소년 ‘권력행상’ 했나 안했나
▲ 지난 5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있다. 최 위원장은 그의 양아들로 불릴 정도로 최측근인 정용욱 씨와 관련한 각종 비리 의혹들이 불거지자 불명예 퇴진 위기에 놓였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최 위원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정치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낸 뒤 1994년부터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을 맡으면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1992년 이 대통령의 정치적 자문역을 맡으면서 이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맺기 시작한 최 위원장은 2007년 5월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아 ‘킹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이 대통령의 멘토로 거듭났다.
현 정부 핵심 실세로 자리매김한 최 위원장은 초대 방통위원장을 맡아 굵직굵직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지난해 3월에는 야권과 언론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연임에 성공해 방송통신업계를 호령하는 최고 실세임을 재확인시켰다. 이처럼 이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향유했던 최 위원장은 최근 측근비리가 터지면서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언론단체는 최 위원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하고 있고, 야권 일각에서는 ‘정용욱 게이트’의 몸통으로 최 위원장을 지목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 정권 핵심 실세에서 불명예 퇴진 압박에 직면한 최 위원장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굴곡진 정관계 시절을 되짚어봤다.
최시중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경북 포항 출신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최 위원장이 서울대 정치학과 시절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친분을 쌓으면서 시작됐다. 최 위원장과 이 의원은 서울대 입학(1957년) 동기다. 동향인 두 사람은 친형제처럼 지냈으며 이 대통령과는 1970년대 후반 현대건설 이사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경북 포항 구룡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최 위원장은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부친이 뜻하지 않게 부상을 당하면서 10대 초반부터 소년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최 위원장은 오징어를 어깨에 메고 구룡포 집에서 60리나 떨어진 포항 죽도시장까지 걸어가 오징어를 팔고 쌀을 구하는 등 힘든 생활을 이어갔다. 1남3녀 중 장남이었던 그는 집안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에 묵묵히 어려운 유년시절을 참고 인내했다고 한다.
구룡포 동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구룡포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책이 너무 읽고 싶었지만 책을 살 돈이 없었다고 한다. 책을 읽고 싶었던 중학생 최시중은 어느날 포항 시내에 있는 한 서점을 찾아가 점원으로 일하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월급은 필요 없고 이 서점에 있는 책을 마음껏 읽게 해 달라는 게 조건이었다. 그는 점원으로 일하면서 서점에 있는 책을 몽땅 읽었다고 한다. 최 위원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 중 절반은 그때 습득했다고 회고한다.
가난한 생활은 계속 이어졌고 최 위원장은 중학교 졸업 후 곧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공백기를 거쳐야 했다. 마침내 대구에 있는 대륜고를 수석으로 입학해 장학금을 받고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어렵게 보낸 최 위원장은 기자생활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1964년 동양통신에 입사한 뒤 1965년부터 30년간 동아일보사에 몸을 담았다. 정치부 기자를 시작으로 정치담당 편집위원, 정치부장, 논설위원 등을 거치면서 변화무쌍하고 ‘움직이는 생물’인 정치권의 생리를 직접 체득했다. 정치부 기자 시절인 1972년 1월에는 ‘옥외집회 시위 긴급조처’에 관한 기사를 1면에 보도했다가 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취재원을 대라는 중정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내 입을 열지 않아 호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 이상득 의원(왼쪽)과 최시중 위원장. 둘은 같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만나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
최 위원장은 기자 시절에 쌓은 풍부한 경험과 인적 자산을 바탕으로 제2의 인생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는 1994년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을 맡아 2007년까지 여론조사 전문가로서 명성을 쌓아갔다. 특히 정치 관련 여론조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최 위원장은 1992년부터 이 대통령의 정치적 자문역을 맡으면서 이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그는 대선정국이었던 지난 2007년 5월부터 그해 말까지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아 ‘킹 메이커’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으며 이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정치적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최 위원장은 지난 대선기간 내내 전략, 홍보 등 다방면에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다.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당 안팎에선 이명박 예비후보의 무난한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자신이 돌린 여론조사 결과가 초박빙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이 대통령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알린 후 경선 하루 전까지 이 대통령, 이재오 의원 등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를 돌려 2452표 차의 신승을 이끌어냈다. 또 대선 직전 이 대통령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던 정몽준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과 지지선언을 끌어내기도 했다. 강현욱 전 전북지사의 ‘이명박 지지’ 선언도 최 위원장의 작품이었다.
이처럼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크게 기여하면서 현 정권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한 최 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바탕으로 새 정부 요직 인사 때마다 하마평에 올랐다. 최 위원장은 현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 비서실장, 국정원장 등 요직 하마평에 오르내렸지만 이 대통령은 방송통신 분야의 중요성을 감안해 그를 초대 방통위원장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최 위원장의 관료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가 2008년 3월 방통위원장에 인선되자 야권과 언론단체 등은 측근·보은인사 의혹을 제기하며 극렬히 반대했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최측근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방송계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게 당시 반대론자들의 논리였다. 또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부동산 투기, 아들의 건강보험료 체납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자격 미달 시비가 일기도 했다.
최 위원장은 3년 임기 동안 미디어업계 최대 이슈였던 종합편성·보도채널 선정을 마무리 지었고 제4 이동통신 사업, 무선인터넷 활성화, KBS 수신료 인상, 미디어렙 입법 등 민감하고 비중 있는 정책을 펼쳐 나갔다. 이 과정에서 뒷말이 무성하게 나돌았고, 의혹과 구설도 끊이질 않았다. 지난해 3월에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 지난해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열린 ‘최시중 방통위원장 연임 규탄 기자회견’에서 언론 노조와 시민단체인 미디어행동 및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일요신문DB |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최 후보의 재산 관련 자료를 확인한 결과 아들 가족에게 필요했던 자금출처 불명액은 최소 5억 원 이상이다. 그러나 최 후보는 그동안 아들에게 한 번도 증여한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며 “증여세를 내지 않고 부당 증여했다면 후보자로서 도덕성, 법 준수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 2010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종편 관련 회의 개회를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는 모습. 방통위는 종합편성 방송채널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을 선정했다. 일요신문DB |
이 대통령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BBK 사건에도 최 위원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2007년 11월 김경준 씨가 귀국했을 당시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됐던 이른바 ‘가짜 편지’ 배후자로 최 위원장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짜 편지’ 논란이 확산되면서 현 여권 핵심 인사들과 대통령의 손윗동서 신기옥 씨의 개입 의혹이 불거지고 있고, 최 위원장의 개입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방송통신업계뿐만 아니라 각종 대형 이슈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순탄치 않은 험로를 걷고 있는 최 위원장은 최측근인 정용욱 씨의 비리 파일이 터지면서 최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정 씨는 최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릴 정도로 핵심 측근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어떤 식으로든 최 위원장에게 불똥이 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정용욱 게이트’의 몸통으로 최 위원장을 지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대통령의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현 정부 핵심 실세로 군림해 온 최 위원장이 ‘측근비리’라는 초대형 사태로 좌초하게 될지 아니면 이번에도 난관을 극복하고 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