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 원 달하는 우량주 매매 부담 줄어…미국보다 고가 종목 적고 실시간 거래 불가 단점도
한국예탁결제원 지난 26일부터 신탁제도를 활용해 투자자가 국내 상장주식을 소수 단위로 거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내 주식 소수 단위 거래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서비스 시작 당일 NH투자증권, KB증권,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한화투자증권, 5곳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오는 10월 4일에는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가 서비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대신증권, 상상인증권, 유안타증권, IBK투자증권, 다올투자증권 등도 연내 서비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국내 주식 소수 단위 거래 서비스는 신탁제도(수익증권발행신탁)를 활용한다. 주식 1주를 여러 좌의 ‘수익증권’으로 분할 발행하는 방식이다. 투자자가 소수점 단위로 주식을 매입하면 증권사가 투자자의 소수 단위 매수주문을 취합해 부족분을 자기 재산으로 채워 온주(1주)를 만들어 자신의 명의로 한국거래소에 호가를 제출한다. 예탁결제원은 증권사에서 온주 단위 주식을 신탁 받아 수익증권을 발행하고, 투자자는 주문 수량에 따라 수익증권으로 소수 단위 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
해당 서비스 시작으로 투자자들이 수십만 원에 달하는 우량주를 100~1000원 단위로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국내 주식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됐다. 게다가 매수한 종목이 배당주라면 소수점 단위로 계산해 배당금도 받을 수 있다. 투자자는 수익증권 보유자로서 주식의 배당금 등 경제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 또 주 단위가 아닌 ‘금액 단위’로 투자할 수 있어 적금과 같이 매월 일정 금액을 주식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
과세 방식에 대해서도 해결책이 어느 정도 제시됐다. 당초 국내 주식은 상법상 하나의 주식을 더 잘게 나눌 수 없다는 ‘주식 불가분의 원칙’에 따라 소수점 주식은 수익증권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럴 경우 모든 소수점 주식에 15.4%에 달하는 배당소득세가 부과된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국내 소수 단위 주식 투자자가 취득한 수익증권을 매도해 발생하는 소득은 소득세법 제94조에 따른 양도소득이나 동법 제17조에 따른 배당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기재부는 “해당 수익증권을 활용해 대주주가 양도소득세 과세를 회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온주가 됐을 때 주식 전환을 의무화하는 등 보완 장치를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통해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주식 3.5주에 해당하는 수익증권 35좌를 매수한 경우 30좌를 온주 3주로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소수점 주식도 일반 주식과 같은 과세 방식이 적용된다. 현행법상으로는 주식 거래시 발생하는 증권거래세(0.23%), 특정 종목을 지분율 1% 이상 보유하거나(코스닥의 경우 2%) 보유액이 10억 원 이상인 대주주에게만 부과되는 양도소득세, 그리고 배당금으로 2000만 원 이하를 받는 투자자에게 15.4%가 부과되는 배당소득세가 있다. 단 배당금을 2000만 원을 넘게 받는 투자자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야 한다.
국내 주식 소수점 거래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일단 소수 단위 거래 서비스는 실시간 거래가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투자자들이 매수한 소수 단위 주식을 한데 모아 온주로 만들어 다시 수익증권으로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투자자의 주문을 10분마다 한국거래소에 전송해 그 격차를 줄이려 하지만 실시간 거래 불가로 시장 상황에 즉각 대처하기 어렵다는 단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시장은 미국 시장보다 변동성이 높기 때문에 이 같은 단점은 소수 단위 거래에 대한 흥미를 낮출 수 있다.
또 공정거래법상 출자제한(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규정에 따라 일부 증권사가 계열사 종목의 소수점 거래 서비스를 할 수 없다. 가령 삼성증권에서는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한국투자증권에서는 한국금융지주, 한화투자증권에서는 한화솔루션과 한화생명, 현대차증권에서는 현대차·기아·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제철, 카카오페이증권에서는 카카오와 카카오페이의 소수점 거래가 불가능하다. 자신의 기호에 따라 증권사를 선택할 수 없는 셈이다.
거래 종목도 제한적이다. 거래 종목이 가장 많은 NH투자증권도 760개로 제한돼 있다. 이어 한화투자증권 720개, 키움증권·미래에셋증권·KB증권 350개 순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는 미국 주식처럼 고가 주식이 많은 편이 아니다. 코스피에서 지난 28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200위 내 종목 중 주가가 50만 원을 넘어서는 종목으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SDI, LG화학, 고려아연, LG생활건강, 영풍 정도다.
의결권도 제한적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소수지분의 의결권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예탁결제원이 자본시장법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한다. 다만 개별 증권사와 투자자의 약관에 따라 소수 단위 주주의 의결권을 취합해 간접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지원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업계에서는 소수 단위 거래 서비스가 침체한 주식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51조 4712억 원으로 집계됐다. 투자자 예탁금은 언제든 주식을 살 수 있는 대기성 자금이어서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 열기를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한다.
코로나19 이후 주식 투자 열풍으로 투자자 예탁금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2020년 말에는 65조 5227억 원, 지난해 5월 SK아이이테크놀로지 청약 당시 77조 9018억 원, 올해 초 LG에너지솔루션 상장 당시 75조 1073억 원 등을 기록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과 치솟는 환율, 물가 상승 등 악재로 인해 7월 말 54조 2590억 원, 8월 말 53조 633억 원을 기록하며 우하향하고 있다. 50조 원 붕괴도 목전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은 “국내 주식 소수 단위 거래 서비스 개시를 통해 투자자의 주식시장에 대한 접근성 확대, 증권사의 혁신적인 금융서비스 제공 및 증권시장의 활성화 등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이를 통해 투자자 저변 확대, 자금 유입 증가 등으로 증권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