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발생한 사소한 다툼이 중앙 정치권의 관심을 모으는 것은 사건에 등장하는 당사자와 그들이 주고받았다는 대화, 그리고 이후의 해명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의 장본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지역 검찰을 대표하는 김재기 부산지검장. 여기에 지난 5월24일 박 회장과 사돈을 맺은 김정복 부산지방국세청장이 ‘조연’격으로 등장한다.
박 회장은 최근 노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소유했던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의 국립공원 내 부동산 11필지를 매입한 장본인으로 밝혀져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
또한 그의 셋째딸이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근무하는 것으로 확인돼 노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관계자에 따르면 박 회장이 다소 취한 상태에서 자신이 아는 검찰간부들을 거명하며 얘기를 하자 김 지검장이 “초면에 너무하는 것이 아니냐”며 대응하는 과정에서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이후 박 회장은 지인들에게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강조하며 김 지검장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과의 ‘말다툼’에 관한 소문이 확산되자 김 지검장은 지난 5월 말 H음식점 사건에 대해 해명을 했다. 물론 소문과 사실은 다르다는 내용이다.
우선 사건의 배경이 된 모임의 시기도 5월 초순이 아닌 4월 하순께로, 3함대 사령관 이임을 기념하기 위해 국정원 부산지부장, 부산지방국세청장 등과 함께 해운대의 한 중국집에서 가진 기관장 월례회의 때라는 것.
또한 김 지검장은 박 회장과의 ‘트러블’에 대해서도 ‘소문’이 과대포장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정복 청장이 ‘사돈 될 분’이라며 박 회장을 소개했고, 2차 노래방(주점)으로 옮긴 자리에 박 회장이 뒤따라와 합석하기에 이를 지적한 것이 소문으로 비화됐다는 것.
김 지검장이 기관장들이 모이는 자리에 박 회장이 참석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나가줄 것을 요청하자 박 회장이 잔을 자리에 ‘탁’하고 놓으며 나간 게 전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 지검장의 해명은 몇 가지 점에서 ‘사실’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 먼저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해운대의 중국집이 아니라 H음식점으로 확인됐다. H음식점의 한 관계자는 “박연차 회장이 단골”이라며 “5월 초에 들렀다가 누군가와의 언쟁으로 소란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4월 말 3함대 사령관 이임을 기념하는 기관장 모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자리에서 김 지검장과 박 회장이 ‘신경전’을 벌인 사실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 지검장은 지난 6월13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회장과의 트러블에 대해 묻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박연차 회장과 만난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겠다”고 답했다.
기자가 5월 말 해명한 것과 취재 내용에 차이가 있다고 하자 김 지검장은 헛웃음으로 난감함을 드러낸 뒤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노코멘트하겠다”며 ‘소문’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박연차 회장은 태광실업이 생산하는 나이키 신발의 본사 회의차 미국을 방문중이고 비서실 관계자들은 관련 사건에 대해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5월 초 H음식점에서 박 회장과 김 지검장 간에 고성이 오간 것은 사실로 보인다. 따라서 김 지검장의 해명은 H음식점 사건에 대한 소문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해 월례 기관장회의와 연결시킨 ‘희석용’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 사건이 소문으로 확대되면서 대통령 후원자의 ‘호가호위’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 최근 정가에서는 박 회장과 김 지검장의 ‘갈등’이 지속중이고 박 회장과 관련한 ‘폭발성’ 뉴스가 뜰 것이란 소문이 등장해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는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