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인선 뒤에 숨은 인물 논란
▲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 후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정홍원 위원장이 대화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4·11총선을 준비 중인 한 친박계 전직 의원 L 씨는 공추위원 중 한 명으로 물망에 올랐던 K 씨와 최근 모처에서 따로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L 씨와 K 씨 모두 ‘친박계’로 불리는 인사들로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역시 총선이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총선에 패배할 가능성과 대권 가도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던 한 친박 인사는 “당명을 바꿨다고는 하지만 과연 새 간판이 총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솔직히 비관적”이라며 “이번 공추위원 인선 과정을 통해 또 한 번 실망스러움을 느낀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박근혜 위원장 체제의 비대위가 내놓은 가장 큰 ‘작품’인 공추위가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공추위는 총선 공천의 전반적인 과정을 주도하게 될 조직으로 그 권한뿐 아니라 책임도 크다. 그만큼 공추위원 인선은 총선 공천 이상의 엄중한 검증작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임명장도 수여하기 전에 공추위원으로 선정됐던 진영아 패트롤맘 중앙회장이 허위 학력 및 허위 이력 진술 의혹으로 자진 사퇴하면서, 박 위원장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계 의원은 “대체 인사 검증을 어떻게 한 것인지 의문이다. 제대로 스크린만 해봤더라도 검증할 수 있었던 부분 아니었느냐”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 의원은 “진영아 씨의 경우 기본적인 개인 신상 조회만 해보았어도 찾아낼 수 있었던 문제점을 몰랐다는 것이 인사 검증이 매우 허술하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진영아 패트롤맘 중앙회장의 사퇴로 새누리당은 인사 파문을 일단락시키려는 상황이지만, 그 밖의 공추위원에 대한 자질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공추위원으로 선정된 인사는 총 11명. 공추위원장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중심으로 정종섭 서울법대학장이 부위원장을 맡았고,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 박승오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진영아 패트롤맘 중앙회 회장, 박명성 신시뮤지컬컴퍼니 대표, 서병문 중소기업중앙회 수석부회장, 그리고 당내 위원으로 권영세 사무총장과 현기환·이애주 의원 등이다.
이 중 사퇴한 진영아 회장 외에도 몇몇 인사들에 대한 문제점이 거론되고 있어 과연 공추위원 선정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혹이 확산 중이다. 특히 홍사종 서병문 위원의 경우 과거의 정치경력이 논란이 되고 있다. 홍사종 위원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부터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고, 서병문 위원 역시 2004년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공천 신청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지며 부적격 시비가 일고 있다.
서 위원은 또한 지난 2010년부터 한나라당 재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왔던 ‘당내인사’였던 것으로 전해지며 논란은 더 확산되었다. 안상수, 홍준표 대표 시절에 모두 재정위원을 맡았던 데다 지난해부터는 재정위 부위원장으로 일해 왔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진 것. 친박계의 한 재선 의원은 “외부의 참신한 인사를 모셔왔다고 떠들썩하게 홍보해놓고 이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상을 줄 것이 뻔한 인선 아닌가. 당내에서 직함을 맡고 있는 이력조차 확인하지 못할 정도인데 무슨 검증을 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외에도 A 위원의 경우엔 금전문제 및 여자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던 전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애초 물망에 오르지 않았던 정홍원 전 이사장이 공추위원장에 선임된 것도 의외였다는 반응이다. 정홍원 전 이사장 외에도 대다수 공추위원들이 ‘현실 정치’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 때문에 “실제 공천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나 공추위원장의 입김이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역 친박계 L 의원의 경우 벌써부터 공추위원에 포함된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공개적으로 총선 홍보에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진영아 회장의 사퇴 이후에도 계속해서 공추위원들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자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더 이상의 교체가 없을 것’임을 강조하며 수습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일 공개적으로 “(진영아 위원이) 사퇴했는데 자꾸 토를 달고 이런 거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걸로 마무리가 됐다”고 일축하며 공추위원에 대한 문제제기를 차단한 것.
여의도의 한 정치컨설턴트는 “박근혜 위원장은 여전히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방어막을 치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원칙과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는 박 위원장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신념만 앞세우는 외골수 같은 스타일이 인선 작업에서도 부작용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앞서의 친박계 의원이 언급한 대로 박 위원장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서는 친이계는 물론 친박계 내에서조차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친박계의 의견을 전해 듣기 위해 취재 과정에서 전·현직 친박 의원 여럿을 접촉해 보았지만 대부분 ‘말하기 조심스럽다’는 의견이었다. 총선 공천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공천권을 쥐고 있는 박 위원장이나 공추위원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한 친박계 의원은 “우려스러운 점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가타부타 불만을 제기하긴 어려운 분위기다. 무엇보다 박 위원장의 스타일이 원래 그러하니 믿고 존중하려 한다”며 “총선 공천을 앞두고 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전직 친박 의원 L 씨는 “박 위원장이 비대위를 구성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공추위원 구성도 매우 은밀하게 진행됐던 것으로 안다. 인선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검증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았었다. 그 결과가 신뢰를 줄 만한 내용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결국 ‘밀실 공천’과 다름없는 인선 작업이 진행되었기에 이렇게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인사들이 공추위원으로 선정되었던 것 아니겠느냐”며 걱정스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비대위뿐 아니라 공추위원 구성에 박 위원장의 측근들로 구성된 ‘비선조직’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비대위원 인선도 마지막까지 그 과정이 철저히 공개되지 않았다가 ‘깜짝 카드’처럼 공개되었던 바 있다. 당시 비대위원 발표 하루 전날 명단이 유출된 것에 대해 박 위원장이 정보유출 ‘촉새’를 알아내라는 지시를 내렸을 만큼 ‘보안’에 대해 박 위원장의 생각은 철두철미하다.
한 친박계 인사는 “박 위원장의 몇몇 측근들이 인선 작업에 개입돼 박 위원장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대선 때도 뒤에서 캠프를 따로 운영하며 중요 정치 현안마다 ‘결정권’을 쥐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러한 의혹이 단지 의혹 수준에 지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친박계 내에서도 이러한 의혹을 갖고 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은 박 위원장이 주변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에 일정 부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수도권의 한 의원 측근 역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주변 사람들한테 인사를 추천받고 이를 검증할 때 역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몇몇에게 의지해 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검증이 소홀할 수밖에 없고 문제가 생겼을 때 본인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여러 차례 인사로 문제를 일으켰던 것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정두언 의원 역시 트위터에 “공천위 인선파동을 보니 이 정부 초기 인사파동이 연상된다”며 “그냥 가다가는 누구보다 인사권자에게 치명적일 것 같은 느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부랴부랴 공추위원 검증에 대한 논란을 접고 총선 준비체제로 들어서려는 분위기지만, 이번 인선 잡음으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부담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박 위원장 역시 내부적으로 다른 공추위원들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또 다른 추가 사퇴자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총선 공천 전반을 책임지게 될 공추위 활동이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 여부의 관건이 되는 만큼, 공추위원 인선 부작용은 큰 흠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출발선 저 뒤편으로 물러나 달리기를 시작해야 할 상황이 된 셈이다. 이번 공추위원 인선 파문으로 수면 위로 드러난 ‘박근혜 식 철통보안’ 인사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 이상 총선 이후에도 문제점은 계속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