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규제완화, 감세, 고환율 등 친재벌 정책을 폈다. 이러한 정책은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에 날개를 달아 주어 경제양극화를 심화시켰다. 30대 재벌의 계열사가 2006년 731개에서 매년 84개씩 늘어 지난해 말 1150개에 이르렀다.
이런 상태에서 최근 정치권이 내놓고 있는 재벌개혁 조치들은 문제투성이다. 우선, 주요 재벌기업들이 이미 계열사 출자비율을 20% 이내로 낮춘 상태다. 과거에 적용했던 총자산의 40% 이내 총액출자제한제도를 부활해도 거의 실효성이 없다. 또한 계열사지분에 대한 배당금과세, 대출금에 대한 이자비용공제 제외 등을 통해 재벌세를 도입하겠다는 방안은 금액자체가 소액일 뿐 아니라 과세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이를 빌미로 재벌들이 투자를 줄일 경우 경제침체와 실업자 증가의 피해만 유발한다.
한편,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와 골목상권 침범은 은밀하게 이루어져 감시와 통제가 극히 어렵다. 최근 재벌계열사들은 대통령의 지적에 따라 빵집을 곧바로 정리했다. 이렇게 되자 재벌들은 거꾸로 문어발 확장에 면죄부를 받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실로 큰 문제는 선거 후 재벌개혁이 재벌보호로 둔갑하는 것이다. 새 정부가 경제의 회생을 위해 재벌에 저자세를 취하고 갖가지 유화조치를 취할 경우 재벌개혁공약은 물거품이 되고 재벌들은 다시 경제력집중의 강도를 높인다.
인기영합주의에 입각한 재벌개혁은 정치와 경제를 함께 망치는 속임수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재벌개혁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우선 정치권과 재벌기업의 유착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다음 단순한 돌 던지기 대신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장막을 뚫고 일어서는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헌법정신에 따라 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체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하여 법에 의한 개혁으로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재벌계열사들의 거래를 투명하게 밝혀 국민이 감시할 수 있는 공시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등 감독기관의 위상과 권한은 물론 전문성과 중립성을 강화하여 경제검찰로서 주어진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하게 해야 한다.
다음, 중소기업들의 창업과 발전을 대대적으로 촉진하는 산업정책을 펴는 것이 수순이다. 한마디로 올해 양대 선거를 맞아 정치권이 풀어야 할 과제는 재벌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돌을 던질 필요가 없는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고려대 교수·전 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