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수 노란 테마주 ‘개미지옥’ 부른다
▲ 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
증시에 테마는 늘 존재해왔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테마주는 어떤 구체적인 미래효과에 기댄 것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미래 가능성을 이용해 단기 시세차익을 거두려는 작전 성격이 강하다는 게 문제다.
표면적인 이유는 2009~2010년 투자자들의 기대수익률이 높아진 때문이다. 2009~2010년 코스피지수 기준 100% 가까이 주가가 오르며 적어도 몇 십 퍼센트, 많게는 몇 배의 수익을 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차·화·정’이 그 대표주자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재정위기 심화로 조정을 받으면서 시장 전망이 어두워졌다. 2009~2010년을 이끌던 대형주들이 주도력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대형주에서 중소형주로 시장의 관심이 쏠렸고, 미래 스토리에 기댄 중소형주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중소형주 랠리에서는 내재가치보다 저평가된 가치주들이 주목을 받는 게 보통이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2011년 상반기까지 진행된 대형주 랠리가 워낙 강했던 까닭에 대형주와 ‘가치사슬(Value Chain)’이 묶여 있는 중소형주도 꽤 많이 주가가 올랐다. IT 부품주, 자동차 부품주, 중소 화학주 등이다. 이러다 보니 내재가치보다는 미래 성장가능성에 주목했고 자연스레 바이오, 소프트웨어, 엔터테인먼트 등 미래 관련 산업이 주목을 받게 된다. 두 번째 이유와 통하는 대목이다.
두 번째 이유는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 도래에 따른 결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세계경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신흥국의 에너지 수요 증가는 녹색성장이란 화두를 불러왔고, 애플로 대변되는 모바일 혁명은 SNS 혁명, 지식산업 혁명과 소프트웨어 혁명, 아이클라우드(i-Cloud) 혁명으로 이어졌다. 전 세계적 경제수준 향상은 장수 리스크 극복을 위한 바이오 혁명을 요구했다.
엔터테인먼트 업종의 대두도 같은 맥락이다. 정보통신기술과 경제력 향상에 따른 콘텐츠 산업의 발전으로 연예기획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도록 했다. 영화와 드라마에 이어 음악과 예능까지 ‘한류열풍’이 번진 것은 그 반증이다. 2011년 국내 주요 펀드들 간 수익률 격차를 결정한 종목은 걸그룹 소녀시대가 속한 에스엠엔터테인먼트다.
익명의 자산운용사 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저성장이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재정적 출혈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산업으로는 저성장 국면에서의 탈출이 어렵다. 새로운 동력, 새로운 산업이 필요하다. 시장은 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 번째 이유는 정치적 문제다. 정경유착은 옛말이라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경불리(政經不離)’는 필요악이다. 어떤 정권에서건 수혜를 보는 기업들이 반드시 있고, 이는 권력자와의 관계 또는 정책과의 궁합에 따라 달라졌다. 이 때문에 선거전에는 늘 정치인 관련 테마가 형성됐다.
특히 2007년 대선은 경제가 주요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친 대기업 성향의 현 정부에서 대기업의 수혜가 컸다. 물론 기업의 수혜 여부는 정권 탄생과 정책 시행에 따라 현실화되지만, 늘 미래를 꿈꾸는 증시에서는 수혜를 받을 것이란 기대감만으로도 주가상승에 베팅하는 재료가 되기는 충분하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는 “테마주에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안철수 대통령이 나와 안철수연구소 실적이 얼마나 더 좋아지느냐는 관심대상이 아니다. 구체적인 수혜의 크기보다는, 안철수 대통령 탄생 가능성 자체가 더 중요한 투자재료”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올 12월 대선의 전초전이었고, 특히 서울시 권력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이었다. 정책의 변화에 따른 수혜주에 대한 기대에 불을 지피고 있는 셈이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이 높아진 것도 정치와 테마주의 관계를 가깝게 만든 요인이다. 사실 관계를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정치자금 모금이 어려워지자 증시를 통해 정치자금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은 늘 상당한 동의를 받아왔다. 모든 정권에서 권력자 측근이나, 측근을 자처하는 이들이 증시에서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근 씨엔케이인터내셔널 사태가 주목받는 이유도 권력 핵심부와의 연결고리가 의심되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이유의 중심에는 증권맨들이 있다. 보통 증권사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증권맨들의 주요 수익원은 수수료 수입이다. 금융상품을 판매하든가, 주식거래를 위탁받는 수수료가 이들 연봉의 원천이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일반화되면서 증권맨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영업지점에서 흑자를 내는 증권사가 한두 군데뿐이란 사실도 좁아진 입지를 실감케 한다. 이런 점에서 테마주는 증권사 지점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다. 각 증권사 지점 단위의 테마주 관련 투자조언 서비스까지 당국이 주목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한 증권사 직원은 “영업사원 입장에서 가장 쉽게 실적을 올리는 방법은 고객에게 잦은 거래를 유발시키는 것이다. 우량주들은 워낙 분석보고서 등 자료가 많아 증권맨들의 투자조언 역할이 제한적이다. 게다가 큰 종목은 한 번 사면 오래 묵혀두는 경우가 많아 실적에 큰 도움이 안 된다. 반면 테마주는 투자기간이 짧다. 또 일반 투자자는 테마종목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증권맨들의 투자조언이 잘 먹히는 편이다”라고 털어놨다.
한편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 등은 최근 테마주에 대한 단속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칼을 들었지만 그동안 몇 차례 대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이젠 당국의 체면이 걸린 문제가 돼버렸다. 그럼에도 시장 참여자들은 당국의 대책만으로는 테마주를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란 반응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들의 선택을 인위적으로 제한하거나, 시장의 가격결정 기능 자체를 훼손시키는 정도가 아니면 테마주를 근절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 초강수를 자칫 잘못 쓰면 테마주가 아니라 시장 자체의 역동성을 죽일 수 있다. 테마주는 시장 본연의 특성임을 인정하되, 잘못된 테마주 투자는 결국 투자자의 피해로 귀결된다는 투자인식을 확산시키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