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vs 커제, 신진서 vs 미위팅 등 정상급 초반 정면충돌 ‘역대급 32강’ 흥행 예고
올해 삼성화재배는 예선부터 결승까지 논스톱으로 진행된다. 11월 5일까지 토너먼트 단판승부를 통해 결승 진출자를 확정짓게 되며, 11월 7일부터 9일까지 3번기로 챔피언을 탄생시킬 예정이다.
주최국 한국은 이번 대회에 16명의 기사가 출전한다. 전기 우승의 박정환과 준우승의 신진서가 전기 4강 시드를 받았고 강동윤, 변상일, 신민준, 김지석 9단이 국가시드를 받았다. 여기에 국내 선발전을 통과한 이창호, 원성진, 최정, 김명훈, 유오성, 이형진, 한우진, 권효진, 금지우가 본선에 올랐으며 와일드카드를 배정받은 오유진이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죽음의 대진
그런데 지난 20일 열렸던 삼성화재배 대진추첨이 화제였다. 한 바둑 사이트에선 ‘역대급 32강, 죽음의 대진’이란 제목을 뽑았을 정도로 재미있는 대진이 짜여졌다. 32강전 16국 중 절반 가까운 7국이 세계대회 우승 경력자 간의 대결이다.
우선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정상급 기사들이 초반부터 만난 것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우승자 박정환 9단은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을 만났다.
둘은 신진서 출현 이전 천하를 양분했던 사이. 박정환은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 경력이 5회이며 커제는 8회다. 상대전적도 14승 14패. 한치의 틈도 없이 동률을 이루고 있어 누가 먼저 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관계다. 다만 최근 두 기사의 페이스는 예전 같지 않다. 박정환은 최근 4연패에 빠져있고, 자국 내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은 커제도 마찬가지다.
이 대회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쳐 절치부심, 우승컵 사냥에 나선 신진서 9단은 중국의 미위팅 9단과 상대한다. 둘은 지금까지 12번 대결해서 신진서가 8승4패로 앞서 있지만 전문가들은 신진서가 첫 판부터 가장 까다로운 상대를 만났다고 평가한다.
힘이 좋고 난전에 능한 미위팅은 중국기사들 중 그나마 신진서에 가장 잘 버틴다. 신진서의 중국기사 상대 25연승을 저지한 것도 미위팅이었다. 최근 둘 간의 5국도 미위팅 기준 2승 3패여서 단판승부에선 장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 밖에도 중량감 있는 대결은 계속 이어진다. 국내랭킹 2위 변상일은 중국의 강자 당이페이를 상대한다. 둘은 상대전적도 2승 2패 호각이어서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관계다.
또 지난 10월 신진서를 꺾고 명인에 오른 신민준은 중국랭킹 5위 양딩신과 한판 승부를 펼친다. 상대전적에서는 신민준이 1승 5패로 뒤져있지만, 신민준이 최근 명인전에서 신진서를 2-0으로 꺾는 등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이 역시 알 수 없는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전성기 기량을 회복했다고 평가받는 강동윤은 중국랭킹 3위 판팅위와 만났다. 지난 10월 14일 농심배 대결 이후 13일 만의 리턴매치다. 농심배 4연승을 저지당한 판팅위가 설욕을 벼르고 나서겠지만, 상대전적에서 강동윤이 앞서 있고(3승 2패), 강동윤이 올 들어 랭킹을 13위에서 4위로 끌어올릴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 꿀릴 게 없다는 중평이다.
#신예들도 경쟁력 충분
올해 삼성화재배가 역대급 대진이란 것은 정상급 기사들의 초반 정면충돌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 출전하는 신예들도, 그동안 성적이 좋지 않았던 여자 기사들, 그리고 일본·대만 기사들도 충분히 희망을 품어볼 만하기 때문이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신예 한우진과 권효진은 일본 기사들과 16강 진출을 다툰다. 한우진은 대만계 쉬자위안과, 권효진은 와일드카드를 받은 나카무라 스미레와 대결을 벌인다.
홍무진 6단은 “권효진 4단은 가진 실력만 발휘하면 무난하게 승리할 것 같다. 기세만 잘 타면 16강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한우진 5단은 상대 쉬자위안이 강해서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조금 밀리지만 충분히 해볼 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이것은 일본 기사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일본도 충분히 기대를 가져볼 만한 대진이다.
여자랭킹 1위 최정은 일본의 사다 아쓰시 7단과 만난다. 일본에선 국제기전 단골 출전 멤버지만 뚜렷한 성적이 없어 승산은 충분하다. 최근 오청원배와 호반배 패배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최정이 삼성화재배를 통해 반전의 실마리를 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또 와일드카드를 받아 삼성화재배 첫 출전권을 얻은 오유진은 일본의 기성(棋聖) 보유자 이치리키 료와 대결을 펼치며, 대만 4관왕 쉬하오홍은 한국 신예 금지우를 상대로 돌풍을 꿈꾼다.
삼성화재해상보험(주)이 후원하는 202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의 상금은 우승 3억 원, 준우승 1억 원, 4강패자 5000만 원, 8강패자 2500만 원, 16강패자 1250만 원, 32강패자 500만 원이다. 온라인으로 치러지는 대국은 전 대국 정오에 시작되며,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