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은 박근혜 ‘소통’은 한명숙
▲ 박근혜 위원장과 한명숙 대표.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일요신문>은 두 여성 정치인의 ‘경쟁력’을 좀 더 일목요연하게 알아보기 위해 대중성(득표력)과 조직관리 능력, 소통지수 등 총 7개 항목을 선정해 집중 비교해 보았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 이해를 돕기 위해 중립성향의 한 리더십 전문가에게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기는 작업도 병행해 보았다. 그 결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에게 48 대 47의 근소한 차이로 우세를 보였다. 이 점수는 어디까지나 두 대표의 리더십 능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한 참고자료임을 밝혀둔다. 1점 차로 승부가 갈린 박근혜-한명숙의 총선 예선전을 지상중계해 보았다.
정치는 이변의 연속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한명숙 대표가 총선 맞대결을 벌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박 위원장은 서울시장 재보선 참패로 반갑잖은 대선 조기부상의 ‘독배’를 받았다. 총선성적이 대선으로 가는 외통수가 돼버렸다. 한 대표 또한 천형처럼 따라다니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재판으로 정치생명이 끝장날 위기에 몰렸다. 무죄 선고와 함께 대표 경선에서 독주하다시피하며 1위를 차지, 화려하게 정치무대로 복귀했다. 이번 총선은 지난 2010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 이후 그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다. 이번 4·11 총선 대전에서 패한 사람은 정치의 뒷무대로 쓸쓸히 퇴장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 총선이 그녀들에게 정치적 명운을 가를 중요한 전쟁이지만, 동시에 두 대통령의 명예회복도 걸린 중요한 일전이다. 박 위원장이 만약 패배하게 되면 대선에서 ‘박정희 재평가’의 기회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한 대표 또한 정치적 근원인 ‘노무현이즘’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영원히 놓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의 대결은 ‘박정희-노무현’의 대리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녀들이 4·11 총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가장 상징적이고 절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요신문>은 중립 성향의 리더십 전문가인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의 자문을 받아 두 사람의 정치인 역량평가를 시도해 보았다. 평가 기준은 대중성(득표력), 조직관리 능력, 통합조정 능력, 소통지수, 감성감동 지수, 국정운영 능력, 도덕성 지수 등 총 7개 항목으로 나누었다. 여기에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항목을 10점 만점으로 해 점수화를 시도해보았다. 최 소장은 정치권의 대표적인 리더십 연구가이자 중립성향 인사로 활동해왔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한 인사를 배제하고 일단 최 소장의 ‘객관적 기준’을 따르며 비교를 진행해봤다.
먼저 대중성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경쟁력 가운데 하나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는 것은 선거에서 바로 득표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먼저 비교해볼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다. 특히 대중성은 국민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친화력의 척도인 동시에 정책 등을 발표할 때도 대중의 관심을 유도해낼 수 있는 흡인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 기준의 중요한 잣대라고 할 수 있다. 이 대결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7개 항목 중에서 가장 확실한 우세를 보였다. 최 소장은 박 위원장에게 9점을, 한 대표에게는 6점을 주었다.
박 위원장은 전국 어디를 가도 그를 보기 위해 밀려드는 인파로 경호진이 곤욕을 치르곤 하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재보궐 선거 지원유세 때 ‘손이 아파요’를 연발하며 왼손으로 악수를 하는 등 대중적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반면 한 대표는 대선주자가 아니라는 한계 때문에 대중성 면에서 크게 밀렸다. 하지만 정치자금 혐의 재판이 무죄를 받고, 고난 끝에 당 대표직에 올랐던 점이 향후 대중성 제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두 번째는 조직관리 능력(조직 장악력)이다. 최 소장은 박 위원장에게 7점, 한 대표에게는 6점을 줬다. 박 위원장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친박계 공천 학살을 겪었지만 ‘친박연대’ 등의 활약으로 무너진 친박계를 복원, 강고한 계파관리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명박 정권 내내 계파 의원의 이탈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관리 능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좌장격’이었던 김무성 의원과 중진 진영 의원이 이탈한 것이 감점 요인이 됐다.
한 대표는 조직관리 능력에서도 박 위원장에게 미세하게 뒤지는 6점을 받는 데 그쳤다. 사실 한 대표는 올해 초 당 수장에 오르면서 상당히 빠르게 민주통합당 조직을 장악해 나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종석 전 의원을 사무총장에 전격 발탁하고 지명직 최고위원도 측근인 남윤인순 씨를 뽑는 등 나름대로 빠른 시일 내에 조직을 안정시키는 관리능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동교동계의 견제를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했고, 문성근 최고위원이 공심위원 선임을 두고 한 대표에게 반발하는 등 후유증을 겪으면서 관리능력에 회의를 나타내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대표 체제 출범 초기에 계파들이 일종의 ‘허니문’ 기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향후 한 대표의 조직관리 능력은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통합조정 능력은 지도자의 또 다른 중요한 덕목이다. 이 부문에서는 한 대표가 7점을, 박 위원장은 6점을 받았다. 한 대표가 총리에 재직할 때 그를 모셨던 한 공무원은 “남의 말을 듣거나 조정하는 역할은 한명숙 대표가 역대 베스트 3에 들 정도로 높다고 본다. 그리고 한 대표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요직을 맡았는데 동교동계와 친노그룹 양쪽 모두에게 비교적 고른 지지를 받았다. 이는 성공적인 통합조정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 위원장은 통합조정 능력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앞서의 최 소장은 “아마 박 위원장이 가장 부족한 덕목이 통합조정 능력이 아닌가 한다. 비대위 활동만 보더라도 김종인 위원과 잦은 마찰을 노정시켜 주변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포용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골치 아픈 사안이 있으면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듣고 조정하기보다 자신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세종시 수정안 정국과 미디어법 처리 등을 거치면서 박 위원장이 통합조정 능력이 부족한, 완고한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덧칠됐다고도 볼 수 있다.
(국민이나 참모와의) 소통지수도 박 위원장이 6점을, 한 대표는 8점을 받았다. 웬만한 사안에 대해 박 위원장은 친박계 의원들과 교감이 거의 없어 그들이 ‘수장’의 의중을 읽느라 애를 먹는 일이 빈번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박 위원장(37.7%)의 국민 소통지수는 안철수 원장(54.8%)에 비해 상당히 낮게 나왔다. 국민들 눈에 박 위원장은 여전히 소통이 부족한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한 대표는 야권 내에서 ‘소통의 달인’으로도 불릴 정도로 소통을 중요시 여긴다. 한명숙 대표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항상 끈질기게 대화하는 사람’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그를 두고 “한 대표가 국무총리로 있던 시절,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가장 민감한 이슈였다. ‘제2의 광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한 대표가 직접 나서 대추리 주민들과 끈질긴 대화를 한 끝에 이주 합의를 끌어냈다”고 회고했다. 소통은 한 대표의 리더십 키워드로 통한다. 한 언론사가 한국공공리더십지수(KPLI)로 평가한 것을 보면 그는 소통을 잘 하는 대화형 리더에 속한다고 돼 있다.
이밖에 감성감동 지수는 소프트 리더십의 요체로 통하는데 두 사람 모두 7점을 받아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남다른 유머 감각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능력도 이에 포함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감동감성 지수가 가장 높다는 게 최 소장의 평가. 특히 최 소장은 “두 사람 모두 여성으로서 남성 정치인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만 ‘까칠한’ 면도 없지 않아 7점에 그쳤다”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의 경우 역시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있듯이 차가운 인상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점이 감점 요인이 됐고, 정책갈등이 있을 때도 타협보다 외골수적인 면을 보여 국민 감동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한 대표도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앞서의 공공리더십지수 평가 때 “연설 전에 농담으로 시작하는 편인가” 등의 문항에 부정적으로 답해 유머 감각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정운영 능력도 두 사람 모두 7점 동점을 기록했다. 박 위원장은 5년 동안의 청와대 퍼스트레이디와 2년 동안의 한나라당 당 대표 경험 등의 경력이 있고, 한 대표도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여성부-환경부 장관을 거쳐 2007년 국무총리직까지 7년간의 공직생활을 해 국정운영 경험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경우 퍼스트레이디 시절 평가에 한계가 있는 반면 한 대표의 경우 장관-총리직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마지막으로 도덕성 지수는 가장 평가하기 어려운 항목이었다. 양쪽 모두 6점을 받는 데 그쳤다. 박 위원장의 경우 정수재단 문제 등이 계속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한 대표도 1년 6개월 동안의 재판을 거치면서 9억 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도덕성에 생채기가 난 게 사실이다. 앞으로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있기 전까지 한 대표의 도덕성도 여전히 시험무대에 올라있다고 할 수 있다.
총 7개 항목을 통해 박근혜-한명숙의 정치인 역량평가를 해본 결과 박 위원장이 48점을 얻어 47점을 기록한 한 대표를 1점 차로 눌렀다. 사실 대권주자로서 대중성 등에서 박 위원장이 앞서 있긴 하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양측의 역량평가 결과는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과연 박근혜 위원장은 ‘4·11 대전’에서도 한명숙 대표에게 1점차의 신승을 거둘 수 있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