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식한 사람” 시작은 낮은 포복
▲ 이계철 내정자는 고려대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 ‘고소영 인사’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연합뉴스 |
이 대통령의 퇴임을 불과 1년 정도를 남겨둔 현 상항에서 국가 방송통신정책을 총괄하는 방통위원장의 책임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최 전 위원장이 비리에 연루, 불미스러운 사퇴를 함에 따라 이 내정자에게 쏠리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야권의 반발이 거세 결코 녹록지 않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고 민감하고 첨예한 방송통신 정책을 총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이 내정자의 30년 관료생활 및 인생역정을 되짚어봤다.
경기도 평택 출신인 이 내정자는 서울사대부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5회 출신으로 공직에 첫 발을 들인 그는 체신부 전파관리국장과 기획실장 등을 거쳤다. 그리고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정보통신부 차관 등 29년간 공직생활을 한 정통관료 출신이다.
체신부 재직 당시에 이 내정자는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개편하는 정부조직 개편을 주도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이 내정자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한국통신(KT) 사장,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이사장 등을 지냈다. 통신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 내정자는 KT 사장 시절 KT의 초고속인터넷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등 민영화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그는 민영화의 일환으로 KT의 해외주식매각 절차에 돌입하는가 하면 사업비전이 불투명한 ISDN을 과감히 포기하고 ADSL로 전환, 초고속인터넷 사업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이 내정자는 30년 가까운 공직 생활 동안 이렇다 할 잡음 없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내정자와 공직 생활을 해온 측근들은 그의 가장 큰 장점으로 청렴결백을 꼽고 있다. 그는 생활습관 및 성격으로 인해 ‘독일병정’ ‘시대의 청백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의 내정사실이 알려진 후 방통위 내부 분위기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내정자의 측근으로 알려진 한 인사는 “이 내정자는 조금만 잘못해도 구설에 오르는 까다로운 공직 생활을 무난히 해온 인물이다. 무려 30여 년 동안 별다른 흠 없이 업무를 수행해 온 것만 봐도 그의 능력과 됨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통신업계도 이 내정자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간 방통위 상임위원은 방송 및 언론 출신들이 장악했는데 처음으로 통신업계 출신 인사가 위원장에 내정됐기 때문이다.
이 내정자의 생활 신조는 세상 모든 일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일체유심조’와 굳은 절개로 나쁜 마음을 버리고 올바른 마음을 가진다는 뜻의 ‘청유세심’이라고 한다.
이 내정자의 청렴결백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정통부 차관 재직시절 이 내정자는 PCS 사업자 선정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어떤 혐의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캐도 사소한 흠 하나 나오지 않자 오죽하면 담당검사가 “당신은 이 시대를 대표할 청백리거나 바보”라고 했을 정도였다. ‘고위공무원은 흠 잡힐 일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이 내정자의 신조와 그에 따른 결벽주의 행동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내정자는 구설을 피하기 위해 외부인은 반드시 사무실에서 비서를 동석시킨 자리에서 만나고 부모 상과 자녀결혼 때 경조금조차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들어오는 명절 선물을 받지 않기 위해 아예 우체국에 배달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강직한 성격의 이 내정자는 전형적인 정통 관리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모든 일을 빈틈없이 계획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만큼 부하직원도 원칙적으로 다룬다는 얘기도 있다. 체신부와 정보통신부 등 오랫동안 관료 생활을 해오면서 자연스레 몸에 밴 업무 스타일 때문이라는 평이다. 이러한 이 내정자의 성격과 업무스타일이 5인의 상임위원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위원회 수장 역할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시각도 없지 않다.
이 내정자를 둘러싼 우려의 시각은 또 있다. 가장 큰 논란은 이 내정자가 방송 분야에 문외한이라는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 정통부 차관을 역임한 이가 정보통신 정책을 전문적으로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특히 공직생활을 떠난 지 20년 만의 복귀인 만큼 그가 급변한 환경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우려를 의식했는지 2월 15일 이 내정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무식한 사람이니까 방통위 직원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공부하겠다”는 낮은 자세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 내정자의 이력으로 짐작해볼 때 통신재벌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내정자가 거대 통신기업인 KT 사장을 지낸 데다가 그의 아들도 KT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등 KT와 특수한 관계에 있음을 문제 삼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 내정자는 KT 퇴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KT사우회 회장직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언론노조는 “국민의 재산인 주파수를 놓고 지상파 방송 진영과 통신재벌들이 논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통신관료이자 통신사 사장 출신 방통위원장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불문가지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 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고대 동문이라는 점은 임기 말 또다시 ‘고소영 인사’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 내정자가 무사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 해도 그의 앞길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방통위 출범 4년이 지나도록 해결하지 못한 첨예한 현안들이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국가 IT산업 총괄지휘자로서 이 내정자는 지상파와 케이블 TV 간 재송신 대가 문제와 와이브로 활성화 여부, 제4이동통신 출범, 통신료 인하, 망 중립성 문제 등 산적한 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에 직면해 있다. 또 방통위원장으로서 코앞에 닥친 총선과 연말 대선정국에서 공정한 방송을 구현하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막중한 사명도 있다. 여기에 중요한 사안을 다룰 때마다 정치색에 휘둘리지 않고 정치권의 다양한 압박도 극복해야 한다.
과연 이 내정자는 최 전 위원장 및 갖가지 비리 의혹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방통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녹록지 않은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이 내정자가 정치적이고 독단적인 운영으로 수년째 파행을 빚어온 방통위 수장으로 연착륙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