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추위는 박근혜 리모컨인가’
▲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심사위원회가 지난 2월 22일 서울지역 현역 의원을 제외한 공천신청자들의 심사에 들어갔다. 사진은 면접을 앞두고 긴장한 표정의 예비후보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난 2월 22일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심사위원회(공추위)는 서울지역 신청 대상자를 상대로 현장면접을 실시했다. 여기에 참석한 사업가 출신 A 씨는 “공천자가 이미 낙점된 분위기였다. 나머진 ‘들러리’였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이틀 밤을 꼬박 새워 면접을 준비했는데 ‘총선에 출마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라는 질문 하나만 받았다. 그것마저도 답변이 1분을 넘기자 중도에 제지를 당했다. 공천 심사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지역 면접(2월 20일)을 마친 정당인 B 씨 역시 “자리에 앉아서 인사하고 간단한 질문을 받은 게 끝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서류로 거르면 됐지 왜 면접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공천 신청할 때부터 이미 특정 인사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설마 했는데 면접을 하고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공천 신청을 철회할까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공천 면접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새누리당 공추위 측은 “1000명 가까이 되는 신청자들을 심층으로 면접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서류심사, 면접, 여론조사, 경선으로 이어지는 4단계 과정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역대 어느 공천보다 꼼꼼하게 이뤄질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근혜 위원장 역시 지난 2월 23일 비대위 회의에서 “공천과 관련해 어떤 불법도 있어서는 안 되며,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즉각 후보자격을 박탈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그러나 공천 신청자들 상당수는 공추위 ‘역할’에 의문을 표하면서 새누리당이 자랑하는 시스템 공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의 A 씨도 “공추위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신청자들 관상 보는 것도 아니고…. 이미 서류에서 옥석이 다 가려진 상태라면 나머지 단계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공추위 관계자는 “심사 기준과 결과 등을 공개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안팎에선 박 위원장이 공천의 최종 결재권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공추위라는 공식 기구가 있지만 박 위원장이 사실상 전권을 가지고 최종 명단을 확정할 것이란 얘기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박 위원장에게 총선은 대권으로 가는 관문이다. 의석수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공천은 박 위원장이 당 장악을 위해 꺼내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라고 말했다. 12월 치러지는 대선에 대한 기여도, 박 위원장에 대한 ‘로열티’ 여부 등이 공천 심사의 기준이 될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천 신청서 경력 란에 ‘박근혜 특별보좌역’이라고 적었던 한 인사는 면접에서 공추위원들에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무엇보다 박 위원장의 대통령 당선에 온 힘을 다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 것으로도 전해진다. 실제로 해당 인사는 공천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공천 실무는 공추위 소속 권영세 사무총장과 현기환 의원이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 다 친박계로 분류된다. 그러나 막후에서 공천에 관여하고 있는 친박 의원들로는 최경환 유승민 유정복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들을 ‘공천 3인방’이라고도 부른다. 한 친박 의원은 “세 명을 박 위원장의 ‘복심’으로 보는 게 맞다. 이들이 박 위원장으로부터 ‘오더’를 받아 막후에서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라면서 “물론 마지막 사인은 이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박 위원장이 하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전체 지역구 가운데 20%가량을 할당하는 전략공천은 박 위원장의 새로운 핵심 측근으로 떠오른 조동원 비대위 홍보기획본부장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 친박 중진 홍사덕 의원은 공천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당내 반발을 무마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홍 의원이 ‘보복공천’을 우려하고 있는 친이계를 접촉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홍 의원이 얼마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방적인 친이계 배제 움직임이 나타난다면 내가 들고 일어날 것이다. 박근혜 위원장과 함께 당에 가장 필요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이재오 전 장관”이라고 말한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처럼 박 위원장 측근들이 공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공공연하게 퍼지자 공천 신청자들은 이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모든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친박 인사 내정설’ ‘친이계 배제론’ 등과 같은 출처 분명의 ‘카더라 통신’도 난무하고 있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나돌았던 “서울 강남지역의 한 예비후보자가 그의 부인과 박 위원장의 친분 때문에 내정됐다”, “박 위원장을 공개석상에서 비난한 한 여자 의원은 서류심사에서 일찌감치 탈락됐다” 등이 그 예다.
실제로 부산 지역의 한 예비 후보자는 지인들에게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한 친박 의원이 공천을 보장해줬으니 다른 신청자들은 포기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을 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해당 지역구에서 출사표를 던진 한 예비 후보자는 “공추위가 부적절한 발언을 한 그 후보자에게 핸디캡을 줘야 하는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친박계는 공천 과정에서의 구설이 향후 무소속 출마와 공천 불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공천 신청을 받을 때 ‘선출이 되지 않을 경우 같은 선거구에 후보자로 등록하지 않는다’는 자필 서약을 쓰도록 했지만 이는 구속력을 가지진 않는다.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되는 일부 현역 의원들은 “공천 자체가 부정하게 이뤄졌다면 그러한 서약은 효력이 없다”며 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재광 정치 컨설턴트는 “경남 지역에서 공천에 대한 집단 반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면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여권에서 무소속 출마가 줄을 잇는다면 박 위원장으로서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선 뒤숭숭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난 2008년의 ‘공천학살’을 기억하고 있는 박 위원장이 친이계 대부분을 공천에서 배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 때문이다. 이른바 ‘보복 공천’이다.
지난 2월 20일 저녁 이재오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국회 앞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현역 의원실 관계자는 “박 위원장 이름을 팔고 다니며 요즘 ‘친이계 전원 탈락설’을 얘기하고 다니는 친박 인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면서 “제대로 된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특정 계파라고 무조건 공천을 주지 않으면 가만있지 말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귀띔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공천 결과에 따라 친이계가 집단행동을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청와대 출신으로 이번 공천에 신청서를 낸 한 예비 후보자도 “지지율이나 평판 등을 무시하고 단지 ‘MB맨’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공천을 주지 않는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