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집 잡고 딴지 걸고 ‘트러블메이커’들
▲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패션그룹형지’(형지)에 대한 적잖은 일반인들의 반응이다. ‘여성크로커다일·올리비아 하슬러·샤트렌·아놀드 바시니’ 등 국내 유명 패션브랜드를 다수 운영하고 있는데 비해 형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패션그룹형지는 패션업계 ‘빅4’라 불리는 ‘제일모직·이랜드·LG패션·코오롱인더스트리’를 바짝 추격하며 연매출 7300억 원대를 올리고 있는 중견기업이다. 그러나 ‘빅4’를 쫓기에 너무 급급했던 탓인지 최근 승승장구하던 패션그룹형지를 둘러싸고 여러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국내 패션업계는 ‘빅4’와 이를 쫓는 후발그룹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후발그룹 중에서도 패션그룹형지와 신원그룹, 세정그룹이 선두주자로 꼽힌다. 한때는 ‘누가 매출 1조 원을 먼저 달성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벌였는데 세정그룹이 지난해 매출 1조 50억 원을 기록하며 치고 나갔다.
하지만 여성복(어덜트 레이디) 부문에서만큼은 형지가 독보적이다. 지난 1996년 론칭한 ‘여성크로커다일’을 시작으로 ‘샤트렌’, ‘올리비아 하슬러’까지 30~50대 인기 여성복 전문 브랜드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이후 세정과 신원도 잇달아 여성복 브랜드를 론칭하며 시장 쟁탈전이 벌어졌다.
최근 형지와 세정 사이에 불거진 ‘올리비아’ 논쟁도 처음이 아니다. 세정은 지난 2005년 ‘올리비아 로렌’을 론칭하며 여성복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7년 형지도 크로커다일에 이어 ‘올리비아 하슬러’를 시장에 내놨다. 당연히 브랜드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올리비아’가 문제가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올리비아 로렌’과 ‘올리비아 하슬러’를 혼동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 것.
이에 출시는 늦었지만 상표를 먼저 등록해 놓았던 형지(하슬러)가 2008년 세정(로렌)을 상대로 ‘상표권 무효심판’ 소송을 제기하면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법원은 브랜드명은 비슷하나 글자 수 차이 등 실질적인 상표가 다르다고 해석해 결과적으론 세정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형지와 세정이 더 이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형지의 ‘올리비아 하슬러’가 가두매장 리뉴얼을 진행하면서 두 회사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형지가 간판 색상을 ‘올리비아 로렌’을 상징하는 퍼플(보라) 색상과 유사한 것으로 바꾸면서 분쟁이 다시 발생한 것.
이번에는 세정이 먼저 나섰다. 형지를 상대로 부정경쟁방지 및 상표권 무효소송을 제기한 것. 여기 최근 세정은 ‘올리비아 하슬러는 올리비아 로렌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라는 문구와 경고표식이 그려진 포스터를 제작해 전국 매장에 배포했다. 더욱이 ‘올리비아 로렌은 2011년 매출 2000억 달성. 여성복 가두점 브랜드 중 선호도 1위의 비교할 수 없는 브랜드입니다’라는 문구도 삽입해 형지를 자극했다.
세정 관계자는 “지난 일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다. 상표권뿐 아니라 쇼핑백 디자인, 글씨체, 대표색상 등 유사한 것이 많다”면서 “무리한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혼란을 초래하는 만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밝혔다.
하지만 형지는 “피청구인과 청구인이 바뀐 것일 뿐 이미 해결된 상황을 왜 또 되풀이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형지 관계자는 “2008년에도 2심까지 가려 했지만 같은 업계라 원만히 해결을 보고 매듭지었다”면서 “세정이 ‘올리비아 로렌’ 론칭 당시 우리 회사의 디자인 디렉터까지 스카우트해 조직구성을 했으면서 누가 누굴 따라한 건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그는 “간판 색깔도 우리가 따라했다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매년 진행하는 트렌드 조사에서 ‘퍼플’이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상으로 선정돼 변경한 것일 뿐이며 더욱이 세정은 색깔에 대한 아무런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아직 특허청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특허청에 상표출원도 해놓은 상태라 문제될 것이 없다. 1심 재판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 이상이 남았지만 세정 측의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형지는 지난해 ‘라코스테’와도 상표권 문제로 법적다툼을 벌였다. 형지가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크로커다일은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악어 그림 옆에 영문으로 ‘Crocodile’이 결합된 상표를 쓴다. 라코스테는 입이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처럼 자세히 보면 상표가 다르지만 소비자는 두 기업 모두 ‘악어’를 쓴다는 이유로 브랜드를 혼동하는 일이 발생했다.
때문에 두 회사는 전 세계에서 ‘악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 전쟁을 피해가지 못했다. 라코스테 프랑스 본사가 2008년 한국 변호인단을 선임해 국내에서 크로커다일의 상표등록을 취소하는 내용의 소송을 진행한 것.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는 크로커다일이 승소했기에 라코스테에게 불리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덕분에 라코스테는 한국 시장에서만큼은 ‘진정한 악어의 주인’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크로커다일이 당장 악어로고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브랜드 론칭을 하면 수십 개의 상표를 등록한다. 고유의 브랜드 상표를 만들려는 의도도 있지만 경쟁사에서 비슷한 상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크로커다일도 모든 상표권이 취소된 것은 아니고 라코스테가 혼동의 가능성이 크다며 제기한 3개의 상표권만 취소된 것이기 때문에 그 외는 지금과 같이 사용할 수 있다. 형지 관계자는 “크로커다일 자체는 60년이 넘은 역사 있는 브랜드다. 어쨌든 법원의 판결에 따라 문제된 3개의 상표를 제외하고 다른 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연말에는 박흥식 형지 사장의 취임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박 사장은 형지의 또 다른 라이벌인 신원 출신으로 지난해 두 회사의 자존심 싸움은 극에 달했다. 신원이 형지의 대표 브랜드인 ‘크로커다일’을 잡기 위해 여성복 ‘이사베이’를 전략적으로 론칭한 것. 기존에도 두 회사 여성복 시장에서 툭하면 부딪혔는데 이 일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격이 됐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형지의 박흥식 사장 스카우트는 ‘복수’로 해석했다. 형지 관계자는 “신원의 ‘이사베이’는 우리와 타깃이 다르다. 패션업계에서 스카우트는 빈번한 일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 패션 전문가는 “어덜트 레이디 시장은 패션업계 중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부문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 구매력까지 갖추면서 시장의 크기도 커지고 있다. 그만큼 주목받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논란도 많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패션업계 2위그룹의 물고 물리는 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