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라고요? 도전을 즐길 뿐”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김규리와의 인터뷰를 위해 MBC 주말 사극드라마 <무신>의 촬영지인 용인 드라미아를 찾은 날은 2월치곤 찬바람이 무척 매서운 날이었다. 전날 아침 6시에 촬영을 시작해 꼬박 24시간 촬영을 하고 아침 6시부터 7시까지 한 시간가량 인근 숙소에서 쉰 뒤 다시 시작된 촬영은 이날 오후 4시 즈음에 마무리됐다. ‘멘붕’ 상태란 ‘멘탈이 붕괴’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요즘 <무신>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이 자주 쓰는 단어란다. 그렇지만 김규리는 지친 기색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활기차 있었고 다른 배우들도 비슷했다. 그만큼 <무신> 촬영 현장 분위기는 좋았다.
-바람을 피해가며 촬영을 구경했는데도 상당히 춥네요. (김)규리 씨도 그렇고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정말 대단하세요. 감기는 안 걸렸나요?
▲2월 초엔 코감기로 고생했어요. 이상하게 감독님의 ‘액션’ 사인만 나면 곧장 콧물이 주르륵 흐르는 거예요. 그래서 아예 팔소매에 두루마리 휴지를 넣고 다닐 정도였죠.
―정말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왔어요.
▲6년 만에 출연하는 드라마인데다 사극은 처음이에요. 또 여성스러움이 부각된 캐릭터도 처음인 것 같고. 영화 <미인도>에 출연했지만 이번 드라마는 정통 사극이라 기본적으로 성량이 있어야 하고 복식호흡도 필요해요. 초심으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는 중이죠. 악역도 8년 만이에요. 20대의 나와 30대의 내가 악역을 얼마나 다르게 해석하고 표현할 지, 저도 궁금해요.
▲ <무신> 특별시사회에 참석한 김규리가 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종현 jhlee@ilyo.co.kr |
▲송이는 상당히 페미니즘적인 성향을 가진 여성으로 사극에선 익숙지 않은 캐릭터예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으로 알려진 실존 인물이에요. 기백과 기상, 그리고 배포 있는 여성으로 상당히 똑똑하고 대차요. 이환경 (작가) 선생님은 아예 송이를 남자라고 생각하며 대본을 쓰신다고 할 정도예요. 악역이긴 하지만 너무 나쁜 애는 아니고, 말투나 겉모습은 부드럽지만 속은 무서운 악역이에요.
―그런데 4회까진 ‘송이’ 출연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요.
▲아무래도 초반부의 주인공은 ‘김준’(김주혁 분)과 ‘월아’(홍아름 분)예요. 송이 캐릭터가 부각되는 것은 10회 이후죠. 지금은 조금 힘든 게 사실이에요. 가벼운 장면에서 조금씩 몸을 풀어 중요한 장면에 집중해야 하는데 초반부 송이는 몸 푸는 장면 없이 중요한 장면에만 한두 번씩 등장하거든요. 몇 마디 대사와 표정으로 송이라는 캐릭터의 상황과 설정을 표현하는 게 힘들어요.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송이라는 캐릭터가 분명한 만큼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그래도 주인공인데 초반부 출연 분량이 적어서 서운하진 않나요?
▲우리 드라마는 출연 배우 하나하나가 모두 주인공이에요. 출연을 결정했을 당시엔 제가 주연인 줄도 몰랐어요. 5회 대본까지 보고 결정했는데 초반부 대본만 보면 여주인공은 송이가 아닌 월아였거든요. 첫 대본 리딩에서 감독님이 남녀 주인공인 김준과 송이 일어나서 인사하라고 하셔서 그제야 제가 주연임을 알았어요. 저도 한땐 가장 주목받길 원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렇지만 한 작품의 구성원으로서 모든 역할과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길 바라요. 그게 곧 시청자를 위한 길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가족이 생겨 너무 행복해요. 많은 출연진과 스태프가 모두 하나의 가족처럼 어우러져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단합한 요즘 현장 분위기가 정말 따뜻하거든요.
―정통 사극답게 베테랑 연기파 배우들이 많이 출연해요. 극중 송이의 가족들은 하나같이 최고의 배우들이고요. 다들 잘 해주시나요?
▲처음 촬영 현장에 와서는 많이 불안해 허둥지둥거렸어요. 그럴 때 정보석 선배님이 옆에 계셔서 정말 안심이 됐어요. 지금은 ‘아빠’라고 부를 정도예요. ‘할아버지’(최충헌 역의 주현)하곤 처음에 눈도 못 마주쳤어요. 그런데 그냥 용기내서 뵐 때마다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다가서니 지금은 너무 예뻐해 주세요. 최고의 현장 분위기 메이커는 ‘작은아버지’(최향 역의 정성모)세요. 강한 캐릭터를 많이 맡아 엄숙한 이미지였는데 현장에선 전혀 달라요. 장난도 잘 치시고 잘 챙겨주시기도 하고요. 좋은 선배님들하고 함께하니 강한 보호감이 느껴져서 너무 좋아요.
―그럼 언제쯤 송이가 여주인공의 강렬한 포스를 드러내나요?
▲벌써 대본이 15회까지 나왔는데 너무 재밌어요. 아마 송이는 13회 정도부터 부각될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연기를 하게 될지, 저도 궁금해요. 좋은 배우와 대본, 그리고 든든한 스태프들과 함께하기에 조금은 피곤하지만 기분은 좋아요.
―데뷔 과정도 궁금해요. 프로필엔 잡지 모델 출신이던데.
▲ 고 3때까진 연예계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미용실에서 잡지 모델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아 <휘가로> 10월호(97년) 표지 모델이 됐고 12월엔 <쎄씨> 모델을 했죠. 곧 CF 제안을 받아 클린 앤 클리어 모델이 됐어요. 99년에 드라마 <맛을 보여 드립니다>를 시작으로 드라마 <학교1>과 영화 <여고괴담2>에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연예인이 된다는 게 무서웠어요. 그렇지만 조금씩 연기의 맛을 알아가며 배우의 매력에 빠져든 거예요.
▲ 영화 <미인도>에서 김규리는 파격노출을 선보여 화제를 불렀다. |
▲저는 제가 뭘 잘하는지, 뭘 해낼 수 있는지, 또 나에게 어떤 모습이 잘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도전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단 한 가지라도 배울 수 있다면 어디든 가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어요. 때론 가지고 있는 아홉 가지를 버려야 그 한 가지를 배울 수 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에도 까짓거 버리자, 원래 가졌던 것이니 그냥 버려버리자고 생각해요. 나중에 다시 주울 수 있다는 믿음도 있고요. 행여 다시 주울 수 없는 것이라면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겠죠.
―그런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버렸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힘든 시간도 많았을 것 같고요.
▲큰 흐름으로는 어머니 얘기도 빠질 수 없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지금까지의 제 인생에선 가장 큰 터닝 포인트였으니까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배우고 일하는 게 좋아서 막 걸어 다니던 아이였는데 깊은 수렁에 빠졌다가 5년 만에 다시 올라온 이후에는 시각이 많이 변했어요. 다시 올라오기도 힘들었고. 그 과정에서 두 가지를 얻었어요. 우선 역시 가족이 최고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모든 게 감사한 일이라는 거예요. 조금 짜증나고 귀찮은 일도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모두 고마운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뭔가 배울게 있다면 어디든 간다고 했는데 이번 드라마 <무신>에선 어떤 걸 배울 수 있어 좋았나요?
▲우선 오랜만에 출연하는 드라마라는 점, 그것도 선이 굵은 정통 사극이라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고려 시대를 살아간 너무나 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여성 캐릭터라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이 모든 매력들의 밑바탕에는 즐거움이 깔려 있어요. 제가 정말 즐기며 일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고 실제 촬영현장에서 즐기고 있어요.
▲ 김규리는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해 숨은 끼를 드러냈다. 사진제공=MBC |
▲술을 못 마시는 편이라 클럽에 가볼 기회가 적었어요. 당연히 춤을 춰 보지 못했죠. 그냥 리듬감은 조금 있는 편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이 얘기에 소속사 TN엔터테인먼트의 배성미 상무는 “평소 웨이브를 한번 해도 너무 근사했다. 춤출 때 너무 예쁠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한번 해보자고 설득했다”고 거들었다) 촬영하는 내내 정말 힘들었어요. 노래가 생방송 3일 전에 나와 연습 시간이 2~3일에 불과했거든요. 그렇지만 그 프로그램을 통해 춤을 배울 수 있어 좋았어요. 프로그램 끝나고도 종종 가서 춤을 배우는데 요즘엔 아버지가 거기서 춤을 배우세요. 왈츠를 배우시는데 너무 멋져요. 아버지와의 함께 왈츠를 출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행복해요?
용인=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규리와 팬클럽 끈끈한 우정
번개에 정기봉사활동까지
기자가 김규리와의 인터뷰를 위해 <무신> 야외 촬영장소인 용인 드라미아를 찾은 날 현장에는 또 다른 반가운 손님이 도착해 있었다. 모든 출연 배우와 촬영 스태프의 맛있는 점심 식사를 위해 김규리 팬클럽에서 밥차를 준비한 것. 이로 인해 김규리는 동료들에게 거듭해서 밥 잘 먹었다는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점심은 간단하게 때우는 경우가 많아요. 어제 점심도 촬영 중간에 김밥과 어묵으로 먹은 게 다였어요. 그런데 너무 고맙게도 우리 팬클럽에서 밥차를 마련해주셔서 추운데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어요.”
김규리는 팬클럽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것은 기본, 스케줄에 여유가 있을 땐 등산 번개 모임도 자주 갖는다. 이날 밥차와 함께 촬영 현장을 찾은 한 팬클럽 회원은 김규리와 함께 등산 번개 모임을 가졌을 당시 찍은 단체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은 팬과 스타로 만나고 있지만 길게 보면 다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함께하려 해요. 기적의 책꽂이 행사부터 김장 담그기 봉사 등 함께해서 기분 좋았던 순간들이 너무 많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섭]
번개에 정기봉사활동까지
기자가 김규리와의 인터뷰를 위해 <무신> 야외 촬영장소인 용인 드라미아를 찾은 날 현장에는 또 다른 반가운 손님이 도착해 있었다. 모든 출연 배우와 촬영 스태프의 맛있는 점심 식사를 위해 김규리 팬클럽에서 밥차를 준비한 것. 이로 인해 김규리는 동료들에게 거듭해서 밥 잘 먹었다는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점심은 간단하게 때우는 경우가 많아요. 어제 점심도 촬영 중간에 김밥과 어묵으로 먹은 게 다였어요. 그런데 너무 고맙게도 우리 팬클럽에서 밥차를 마련해주셔서 추운데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어요.”
김규리는 팬클럽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것은 기본, 스케줄에 여유가 있을 땐 등산 번개 모임도 자주 갖는다. 이날 밥차와 함께 촬영 현장을 찾은 한 팬클럽 회원은 김규리와 함께 등산 번개 모임을 가졌을 당시 찍은 단체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은 팬과 스타로 만나고 있지만 길게 보면 다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함께하려 해요. 기적의 책꽂이 행사부터 김장 담그기 봉사 등 함께해서 기분 좋았던 순간들이 너무 많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