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의 ‘묘수’가 총선의 ‘무리수’로
▲ 지난 2월 27일 한명숙 대표가 광주광역시에서 총선 경선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국민에 심려를 끼쳐서 송구하다”고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하지만 과열이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선거인단 모집에 혈안이 된 일부 후보들이 대리 등록을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가 하면 지역주민들의 신상 정보를 모은다는 이유로 관공서 자료를 무단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선거인단을 모집하던 광주동구의 도서관장이 선관위 조사 도중 투신자살까지 하는 충격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공천 경쟁이 극심한 호남권뿐 아니라 수도권에까지 불법 선거인단 모집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고, 새누리당 역시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을 최종 경선에 포함시킬 계획이어서 덩달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알짜배기 브랜드로 평가받은 국민참여 경선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국민들에게 공천권을 100% 돌려드리겠다.”
지난 1월 15일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때 한명숙 대표가 연설에서 한 말이다. 이날 한 대표는 헌정 사상 최초로 국민참여 경선을 통해 당 대표가 됐다. 당시 80만여 명이 국민경선에 참여했고 이 중 88.4%가 현장투표가 아닌 휴대폰을 이용한 모바일 투표를 선택했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시스템이었다. 민주통합당은 한명숙 체제 이후 당지지율을 새누리당과 10% 가까이 벌리며(1월 중순 <리얼미터> 조사 민주통합당-39.7%, 새누리당-29.1%) 부동의 1위로 올라섰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19대 총선에서도 국민경선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했다. 이번에는 80만여 명을 넘어 103만여 명이 신청했다. 하지만 당 대표 경선 때처럼 이들 모두가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략공천지로 결정된 곳이나 단수후보자로 공천이 확정된 경우 해당 지역 사람은 신청을 했더라도 투표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 참여 수는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용산구의 한 예비후보는 “현재 지역구 150곳 정도가 국민경선을 실시할 것 같다.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 숫자는 당 대표 경선 때보다 적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참여가 저조해도 올바른 민의를 반영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투표에 참여하는 이들 상당수가 자의가 아닌 타의, 혹은 불법적으로 동원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들은 선거인단 모집기간 내내 SNS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투표 참여를 독려했고 일부는 불법을 자행해 선거인단 모집에 나섰다.
광주 지역 한 예비후보의 정책국장은 “선거인단 103만 명을 지역구 255개로 나누면 한 지역구당 선거인단이 평균 4000명 정도 된다. 결국 2001표 이상 얻는 사람은 공천을 받는다는 이야기인데 다들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그는 “어쨌든 선거에서는 이기는 게 중요하다. 모든 예비후보들이 불법적으로라도 선거인단을 모으고 싶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 같은 과욕은 죽음을 불렀다. 지난 2월 26일, 광주 동구 계림1동 주민자치센터 내 꿈나무도서관에서 불법으로 선거인을 모집하던 조 아무개 씨(64)가 광주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를 받던 중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조 씨는 해당 도서관의 관장이자 전 계림1동장으로 지역구 현역인 박주선 의원을 돕기 위해 불법적으로 선거인단을 모집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과정에서 관권이 조직적으로 개입된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확산됐다. 선관위가 이날 압수한 자료에는 주민자치센터 관계자만 열람할 수 있는 ‘2012년 주민등록 세대명부’와 경선선거인모집을 위한 조직표, 모집실적표, 모집 관련 소요비용이 적힌 계획서 등이 포함됐다. 시 선관위는 이 도서관이 박주선 의원의 선거인단 모집 사무실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검찰에 수사의뢰한 상태다.
불법 선거인단 모집은 수도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2월 29일 양주·동두천에서는 한 예비후보가 “경쟁자 후보가 제2의 선거사무실에서 선거인단을 대리접수했다”며 동두천경찰서에 고발장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명갑의 또 다른 예비후보 역시 “현역 의원이 광명시청 공무원 1300여 명에게 ‘선거인단에 가입하고 주변 지인에게 가입을 권유해 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며 민주통합당 내 부정선거감시센터에 고발했다.
애당초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모바일 경선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존재했다. 민주통합당원 임 아무개 씨는 “당시 박지원 의원이 우려한 부분이 현실화되고 있지 않느냐. 모바일 경선을 통해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이를 전 지역구로 무리하게 확대시키는 과정에서 면밀한 사전검토가 없었다”고 밝혔다. 임 씨는 “농촌 지역은 노년층이 많아 모바일 투표 자체가 무의미하다. 또 공천이 당선으로 인식되고 있는 호남권의 경우 먼저 1:1 구도를 만든 이후에 시도당 차원에서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어야 했다”고 밝혔다.
광주의 한 현역 의원 보좌관 역시 “모집 과정이 너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금 공천 심사에서 떨어진 일부 후보들이 선거인단을 움직여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공천에서 탈락한 예비후보들이 자신의 선거인단을 움직여 특정 후보에 몰아주는 무기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재선 의원의 보좌관은 “2010년 6·2 지방선거 때 정세균 전 대표가 밀어붙인 ‘시민공천배심원제’도 얼마나 많은 잡음이 있었나. 배심원 한 명이 일찍 귀가하는 바람에 떨어진 사례도 있었다. 결국 어떤 제도도 절대선이나 절대악은 없다”고 전했다.
새누리당 역시 공천 과정에서 여론조사와 함께 국민참여 경선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누리당의 여론조사 방식은 모바일 경선 못지않게 비판의 목소리가 팽배하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RDD방식(피조사자를 무작위로 추출하여 조사하는 방식)은 대권주자 지지율이나 당 지지율처럼 대규모 조사에 적합한 방식이다. 지역구 후보들에 대한 여론조사는 조사 대상자의 거주 지역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그 또한 피조사자의 진실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밝혔다. 그는 “여론조사보다는 휴대폰을 통한 모바일 경선이 훨씬 지역 민심을 잘 담는 방법”이라고 자평했다. 실제로 대구의 한 지역구에서는 청년층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거짓 응답을 요청한 사례도 드러났다.
또 무작위·비공개로 이뤄져야 할 여론조사가 후보들의 블로그와 SNS를 통해 버젓이 공개되기도 한다. “오늘과 내일 여론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집 전화가 오면 꼭 끝까지 들으시고 선택하여 주십시오”, “여론조사가 주말에 연장 실시된다네요. 다들 일찍 귀가해 전화 받아주세요”와 같은 글들이 꾸준히 올라와 여론조사의 취지를 무색케 한다.
새누리당 기획팀 관계자는 “여론조사는 참고 자료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며 “1차 공천이 확정된 이후 당원 20%와 일반 국민 80%가 함께하는 경선을 통해 최종 후보를 낼 방침이다”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호남 물갈이’ 요원한 까닭
‘조직선거’ 장난이 아니네…
지난 1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청(서석동) 입구의 서석문 앞에 농성용 천막이 들어섰다. 천막 앞에는 ‘민주당 국민동원경선 규탄, 야권연대 실현을 위한 천막농성’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광주YMCA, 광주시농민회,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민주화를 위한 교수 협의회 광주전남지회 등 광주 지역 60여 개 시민사회·노동·농민단체 대표로 구성된 ‘광주비상시국회의(시국회의)’가 4·11 국회의원 총선거 민주통합당(민주당) 경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각 당의 공천 과정에서 규탄 기자회견과 농성이 벌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날부터 시작된 시국회의의 농성은 사뭇 달랐다. 농성의 주체가 공천 탈락한 당내 불만 세력도 아니었고, 농성 장소도 민주당 중앙당사나 광주시당이 아닌 동구청 앞이었다. 이번 농성이 최근 광주 동구 계림1동 꿈나무도서관에서 발생한 조 아무개 관장(64·전 계림1동장) 투신자살 사건과 직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남지역의 한 민주당 예비후보는 이번 총선 준비 과정에서 자신이 맞닥뜨렸던 기득권 카르텔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역구가 농촌 지역인지라 순박한 고향 사람들을 만나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내려왔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역 의원에서 시작해 시장·군수, 시·도의원, 구·시·군의원, 동·리장, 통·반장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라인’이 확고하게 짜여 있었다. 피라미드 조직을 방불케 했다. 이들이 그동안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 같은 공직선거뿐 아니라 각종 조합장 선거까지 떡 주무르듯 해왔음을 알게 됐다. 이들을 통하면 안 되는 일이 없고, 통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었다. 이들이 이렇게 잘 짜여져서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단순했다. 돈과 공천권이었다.”
또 다른 전남지역 예비후보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시와 달리 농촌으로 갈수록 ‘돈 선거’, ‘조직 선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농협 조합장 선거,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 등에서부터 뭉칫돈이 뿌려지다 보니 이에 기승하는 조직이 생겨나고, 이 조직들이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나름대로 중앙 정치무대에서 잘나갔다고 할 수 있는 나조차도 돈이 없다 보니 이런 조직 앞에선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소규모 부락들을 한 바퀴 도는 데에만 3개월이 걸리니 이름 석 자 알리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선을 통해 현역의원을 꺾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증언을 공천 경쟁에서 열세에 놓인 군소 후보들의 하소연 정도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광주 동구 투신자살 사건을 통해 이들이 지적한 기득권 카르텔의 일단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지검 공안부는 지난 2월 29일 사조직에 가담해 선거운동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계림1동 통장 백 아무개 씨(57)를 구속했다. 백 씨는 조 관장이 투신할 당시 꿈나무도서관에 같이 있었던 인물이다. 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통장 신분인 데도 선거인단 모집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광주 동부경찰서도 지난 2월 29일 관권 선거 의혹을 받고 있는 유태명 광주 동구청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경찰은 지난 1월 전남 화순의 한 식당에서 광주 동구에 출마한 박주선 의원과 유 청장, 현직 동장 13명이 모여 식사를 했고 이 자리에서 모종의 ‘박 의원 지원 결의’가 이뤄진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도 광주 동구에서 박주선 의원을 돕기 위한 조직적인 선거인단 모집이 이뤄졌고, 숨진 조 관장도 1000명이 넘는 선거인단을 모집했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직 검찰,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등장 인물과 여러 정황들이 앞서 전남지역 예비후보들이 언급한 ‘기득권 카르텔’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박주선 의원 측에서 “광주 동구와 관련하여 각종 추측성 보도와 오보가 난무하고 있다”며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은 오히려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 의원 측은 조 관장이 1인당 1만 원씩 주고 선거인단 1200명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에 대해 “1만 원 입금 통장 내역은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뒤집어 보면 ‘이번엔 돈이 오가지 않았지만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 때엔 매표 행위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모든 비난의 초점이 민주당과 호남에 집중되는 것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국민참여경선을 한다면 새누리당과 영남도 다를 게 없을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영남 역시 새누리당 일당 패권주의 하에 있다는 점에서 일리 있는 지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민주당 경선 선거인단 부정 모집 의혹들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 결과가 이번 총선은 물론 향후 호남지역 정치구조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박공헌 언론인
‘자살 충격’ 광주 동구 가보니
박주선, 무소속 저울질
<일요신문>은 지난 1031호를 통해 광주의 민심을 전한 바 있다. 당시 기자가 만난 광주 시민들은 대부분 신선한 인물을 통해 지역을 바꿔줬으면 하는 속내를 지니고 있었다. 3주 후 다시 찾은 광주 동구는 투신자살 사건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건 현장인 계림1동 주민자치센터 꿈나무도서관은 운영 중이었지만 자원봉사자 한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 씨가 뛰어내린 5층 계단 창문은 단단히 막혀 있었다. 이 계단 창문은 크기가 작고 여닫이로 되어있어 뜯어내야만 뛰어내릴 수 있는 구조였다. 도주를 우려해 화장실까지 동행했다는 선관위 단속반이 왜 조 씨의 자살을 저지하지 못했을까 의아한 부분이었다.
현장에서 조사를 지켜봤던 박주선 의원 측 보좌관은 “선관위에게 사법권이라도 있느냐”며 “어떠한 경우라도 조사 과정에서 모멸감을 주거나 인신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조사 당시 밖에는 언론사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제보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비후보 측 사람들이 캠코더로 찍는 등 혼자서는 감당하기 벅찬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에 광주선관위 홍보국은 “통상적인 조사 과정에서 빚어진 불미스러운 일이다. 박주선 의원 측이 잘못을 선관위로 돌리려는 행동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모든 혐의는 검찰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선관위가 압수한 문건에는 ‘(유태명) 청장 지시에 의한 지원’, ‘(박주선) 의원님 참여 격려’ 등 현역 의원과 구청장과의 연결 고리를 암시하는 증거물도 발견됐다. 하지만 박주선 의원 측은 그저 황당하고 무고한 죽음에 황망하다는 입장이다. 박 의원은 사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투신한 조 씨와는 개인적인 만남이 없었고 어떠한 부탁이나 요청을 한 사실이 없다.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실체적 진실이 있다면 정치적·법적 책임을 기꺼이 지겠다”고 말했다.
현재 광주 동구 지역은 사고가 난 뒤 곧바로 선거인단 모집 활동이 정지됐고 지난 2일, 무공천 지역으로 최종 결정됐다. 동구의 한 예비후보 측은 “무공천으로 지정될 경우 후폭풍이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또 이번 사건에 연루된 박 의원이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진단했다.
박주선 의원의 비서관 박 아무개 씨는 “희생자가 나온 마당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어 답답할 뿐이다”는 입장이었다. ‘어쨌든 숨진 조 씨가 박 의원을 도와주려다 죽었으니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박 씨는 “박주선 의원 역시 피해자인데 여기서 불출마를 선언하면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명예 회복을 해야 한다”고 말해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광주=김임수 기자
‘조직선거’ 장난이 아니네…
지난 1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청(서석동) 입구의 서석문 앞에 농성용 천막이 들어섰다. 천막 앞에는 ‘민주당 국민동원경선 규탄, 야권연대 실현을 위한 천막농성’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광주YMCA, 광주시농민회,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민주화를 위한 교수 협의회 광주전남지회 등 광주 지역 60여 개 시민사회·노동·농민단체 대표로 구성된 ‘광주비상시국회의(시국회의)’가 4·11 국회의원 총선거 민주통합당(민주당) 경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각 당의 공천 과정에서 규탄 기자회견과 농성이 벌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날부터 시작된 시국회의의 농성은 사뭇 달랐다. 농성의 주체가 공천 탈락한 당내 불만 세력도 아니었고, 농성 장소도 민주당 중앙당사나 광주시당이 아닌 동구청 앞이었다. 이번 농성이 최근 광주 동구 계림1동 꿈나무도서관에서 발생한 조 아무개 관장(64·전 계림1동장) 투신자살 사건과 직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남지역의 한 민주당 예비후보는 이번 총선 준비 과정에서 자신이 맞닥뜨렸던 기득권 카르텔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역구가 농촌 지역인지라 순박한 고향 사람들을 만나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내려왔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역 의원에서 시작해 시장·군수, 시·도의원, 구·시·군의원, 동·리장, 통·반장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라인’이 확고하게 짜여 있었다. 피라미드 조직을 방불케 했다. 이들이 그동안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 같은 공직선거뿐 아니라 각종 조합장 선거까지 떡 주무르듯 해왔음을 알게 됐다. 이들을 통하면 안 되는 일이 없고, 통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었다. 이들이 이렇게 잘 짜여져서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단순했다. 돈과 공천권이었다.”
또 다른 전남지역 예비후보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시와 달리 농촌으로 갈수록 ‘돈 선거’, ‘조직 선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농협 조합장 선거,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 등에서부터 뭉칫돈이 뿌려지다 보니 이에 기승하는 조직이 생겨나고, 이 조직들이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나름대로 중앙 정치무대에서 잘나갔다고 할 수 있는 나조차도 돈이 없다 보니 이런 조직 앞에선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소규모 부락들을 한 바퀴 도는 데에만 3개월이 걸리니 이름 석 자 알리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선을 통해 현역의원을 꺾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증언을 공천 경쟁에서 열세에 놓인 군소 후보들의 하소연 정도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광주 동구 투신자살 사건을 통해 이들이 지적한 기득권 카르텔의 일단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지검 공안부는 지난 2월 29일 사조직에 가담해 선거운동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계림1동 통장 백 아무개 씨(57)를 구속했다. 백 씨는 조 관장이 투신할 당시 꿈나무도서관에 같이 있었던 인물이다. 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통장 신분인 데도 선거인단 모집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광주 동부경찰서도 지난 2월 29일 관권 선거 의혹을 받고 있는 유태명 광주 동구청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경찰은 지난 1월 전남 화순의 한 식당에서 광주 동구에 출마한 박주선 의원과 유 청장, 현직 동장 13명이 모여 식사를 했고 이 자리에서 모종의 ‘박 의원 지원 결의’가 이뤄진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도 광주 동구에서 박주선 의원을 돕기 위한 조직적인 선거인단 모집이 이뤄졌고, 숨진 조 관장도 1000명이 넘는 선거인단을 모집했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직 검찰,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등장 인물과 여러 정황들이 앞서 전남지역 예비후보들이 언급한 ‘기득권 카르텔’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박주선 의원 측에서 “광주 동구와 관련하여 각종 추측성 보도와 오보가 난무하고 있다”며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은 오히려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 의원 측은 조 관장이 1인당 1만 원씩 주고 선거인단 1200명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에 대해 “1만 원 입금 통장 내역은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뒤집어 보면 ‘이번엔 돈이 오가지 않았지만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 때엔 매표 행위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모든 비난의 초점이 민주당과 호남에 집중되는 것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국민참여경선을 한다면 새누리당과 영남도 다를 게 없을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영남 역시 새누리당 일당 패권주의 하에 있다는 점에서 일리 있는 지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민주당 경선 선거인단 부정 모집 의혹들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 결과가 이번 총선은 물론 향후 호남지역 정치구조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박공헌 언론인
▲ 조 아무개 도서관장이 투신자살한 광주 동구 계림1동 도서관.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자살 충격’ 광주 동구 가보니
박주선, 무소속 저울질
<일요신문>은 지난 1031호를 통해 광주의 민심을 전한 바 있다. 당시 기자가 만난 광주 시민들은 대부분 신선한 인물을 통해 지역을 바꿔줬으면 하는 속내를 지니고 있었다. 3주 후 다시 찾은 광주 동구는 투신자살 사건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건 현장인 계림1동 주민자치센터 꿈나무도서관은 운영 중이었지만 자원봉사자 한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 씨가 뛰어내린 5층 계단 창문은 단단히 막혀 있었다. 이 계단 창문은 크기가 작고 여닫이로 되어있어 뜯어내야만 뛰어내릴 수 있는 구조였다. 도주를 우려해 화장실까지 동행했다는 선관위 단속반이 왜 조 씨의 자살을 저지하지 못했을까 의아한 부분이었다.
현장에서 조사를 지켜봤던 박주선 의원 측 보좌관은 “선관위에게 사법권이라도 있느냐”며 “어떠한 경우라도 조사 과정에서 모멸감을 주거나 인신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조사 당시 밖에는 언론사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제보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비후보 측 사람들이 캠코더로 찍는 등 혼자서는 감당하기 벅찬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에 광주선관위 홍보국은 “통상적인 조사 과정에서 빚어진 불미스러운 일이다. 박주선 의원 측이 잘못을 선관위로 돌리려는 행동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모든 혐의는 검찰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선관위가 압수한 문건에는 ‘(유태명) 청장 지시에 의한 지원’, ‘(박주선) 의원님 참여 격려’ 등 현역 의원과 구청장과의 연결 고리를 암시하는 증거물도 발견됐다. 하지만 박주선 의원 측은 그저 황당하고 무고한 죽음에 황망하다는 입장이다. 박 의원은 사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투신한 조 씨와는 개인적인 만남이 없었고 어떠한 부탁이나 요청을 한 사실이 없다.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실체적 진실이 있다면 정치적·법적 책임을 기꺼이 지겠다”고 말했다.
현재 광주 동구 지역은 사고가 난 뒤 곧바로 선거인단 모집 활동이 정지됐고 지난 2일, 무공천 지역으로 최종 결정됐다. 동구의 한 예비후보 측은 “무공천으로 지정될 경우 후폭풍이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또 이번 사건에 연루된 박 의원이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진단했다.
박주선 의원의 비서관 박 아무개 씨는 “희생자가 나온 마당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어 답답할 뿐이다”는 입장이었다. ‘어쨌든 숨진 조 씨가 박 의원을 도와주려다 죽었으니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박 씨는 “박주선 의원 역시 피해자인데 여기서 불출마를 선언하면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명예 회복을 해야 한다”고 말해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광주=김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