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 회화에는 집에 대한 생각을 담은 그림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선조들은 풍수가 좋은 곳에 집을 짓기를 원했다. 이런 장소는 경치가 빼어나고 살아가기에 풍요로운 환경을 지닌 곳이었다.
지금도 명승으로 꼽히는 곳에는 옛 정자나 누각 혹은 고택이 있다. 그만큼 집은 이상적 공간을 연출할 수 있는 조건을 지녀야 했다. 이런 곳의 집을 그린 그림과 그곳을 찾아가는 사람이 등장하는 주제의 작품은 조선 산수화에 한 흐름으로까지 등장한다.
겸재 정선의 ‘인곡유거’나 ‘인왕제색도’,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 표암 강세황의 ‘미법산수도’ 등이 이런 생각을 담은 그림들이다.
그런 작품 중 조선 회화사의 마침표처럼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조선 말 요절한 천재 화가로 꼽히는 고람 전기(1825-1854)의 대표작 ‘매화초옥도’다. 추사 김정희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던 그는 스물아홉 살에 짧은 삶을 마쳐 추사의 마음을 미어지게 했다고 전한다.
이 그림의 이야기는 분명하다. 겨울 한가운데 산골에 초옥을 짓고 묻혀 사는 벗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세상으로부터 멀어져서 외롭게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아간다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훈훈한 그림이다. 그래서인지 겨울 풍경임에도 따사롭고 정겹다. 마치 마음 넓은 벗이 보낸 크리스마스카드 같은 느낌이다.
그림에는 ‘역매인형이 초가집에서 피리를 불고 있다’는 화제까지 등장해 이상적인 공간에 집을 짓고 사는 선비를 그리워하는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역매’는 전기와 교분이 두터웠던 오경석으로, 조선 말기 통상개화론자로 활약한 인물이다. 따라서 깊은 겨울밤 초옥에 앉아 문을 활짝 열어둔 채 피리를 부는 풍류객은 오경석이고, 거문고를 어깨에 메고 다리를 건너오는 붉은 옷차림의 인물은 작가 자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류지선이 추구하는 회화의 생각도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이상적인 풍경을 집의 구성 요소를 설정하는 것은 같지만 집에 대한 생각은 현대인의 보편적 욕구를 담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아름다운 해변을 배경으로 숲이 우거지거나 온화한 초원이 펼쳐진 풍경 위에 기하학적 구조의 집을 등에 태운 말이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고람 전기의 ‘매화초옥도’ 같은 전통 산수화를 배경으로 말과 사람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비현실적 느낌의 엉뚱한 풍경화로 보인다. 배경으로 그려지는 풍경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제 풍경이다. 작가는 여행을 하면서 만난 이런 풍경을 스케치하거나 사진으로 담는다. 채집된 풍경을 다시 구성해 이상적인 풍경으로 화면에 옮긴다.
풍경이 상징하는 것은 전통 사상으로 말하면 풍수가 좋은 곳, 즉 이상적인 장소이며 말은 그런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