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미감에 ‘고졸하다’는 말이 있다. 기교는 없지만 예스럽고 소박하다는 뜻이다. 한국적 아름다움을 말할 때 자연스러움과 함께 빼놓지 않고 쓰게 되는 말이다.
마음속에 앉아 있는 고향 마을을 떠올릴 때 느껴지는 정겨움과 푸근함이 묻어나오는 정서다. 흙냄새 물씬 풍기는 시골집 황토방이나 구수한 된장찌개 같은 맛이다. 우리네 골동품에서 찾을 수 있는 편안함인데, 조선시대 분청사기 맛을 고졸함의 으뜸으로 친다. 목기나 석탑, 석불 같은 데도 고졸한 미감이 담뿍 담겨 있다. 박수근이 ‘국민 화가’가 된 것도 바로 이 고졸한 미감 덕분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름다움은 고졸함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정남선의 회화에도 고졸함이 맛깔스럽게 스며 있다. 마치 할머니나 어머니가 평생 써온 장롱이나 반짇고리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느낌의 맛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좋아한다.
정남선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고졸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의 그림을 보면 전통 민화가 떠오른다. 민화의 소재인 모란, 호랑이, 바위, 물 등이 등장하며 평면적 구성을 기본으로 하는 공간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꼼꼼하게 살피지 않으면 진부한 전통 회화 같아 보인다.
한국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겠다고 나서는 작가들이 흔히 빠지게 되는 함정이 있다. 소재주의가 그것인데, 전통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다. 즉 민화나 도자기, 전통 공예의 이미지를 가져와 자신의 작품 속에 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적 미감을 찾아냈다고 당당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정남선 작품도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쉬운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이는 것이 민화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남선 회화에서 우러나오는 한국적 아름다움은 소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색채에 있다. 다소 퇴락한 느낌의 색채는 오방색을 기본으로 조금씩 변조돼 있다. 그의 색채는 우리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지는 못한다. 화려하지 않고 침잠된 색조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도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색채에 스며들게 된다. 고졸한 느낌을 담고 있어서 한없이 우러나오는 맛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방식의 채색 기법으로 공들여 연출한 화면이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우리의 대표적인 미감인 고졸함을 색채의 깊이와 맛으로 터득한 정남선 회화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