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처럼 불어나던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900조 원을 넘었다. 가구당 평균부채가 5000만 원이나 된다. 빚을 갚기는커녕 생계유지를 위해 빚을 얻어야 하는 서민들로서는 앞날이 깜깜하다. 특히 전세가격이 올라 계약을 바꿀 때마다 몇 천만 원씩 빚을 얻어야 한다. 여기에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고통까지 몰아치고 있다. 현 추세로 나갈 경우 서민들은 회생이 어려운 파국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별 대책 없이 직장을 쫓겨나온 750만 베이비부머의 추락은 시간문제다.
실로 큰 우려는 제도금융권 대출이 어려워진 서민들이 사금융으로 몰리면서 악성부채를 양산하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정부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은행권의 대출을 억제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자 저축은행이나 보험사 등 제2금융권으로 서민들이 대거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최근 정부는 제2금융권으로 서민금융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2차 규제정책을 내놓았다. 상호금융에 대해 비조합원의 대출을 억제하고 예대비율을 상향 조정할 예정이다. 또 보험사의 가계대출에 대한 건전성 규제도 은행 수준으로 강화할 방침이다. 사실상 서민들을 금리가 천정부지로 높은 사금융으로 내모는 정책이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금융기관들의 대출정책을 이익 중심에서 상생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금융기관들은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대출정책을 폈다. 그 결과 서민경제는 사상최악으로 치달아도 금융기관의 이익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모순을 낳았다.
서민경제가 쓰러지면 궁극적으로 금융기관들도 함께 쓰러질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이 상생을 중시하는 것은 미래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집중적으로 금융지원을 하여 다시 이들을 일어서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금융기관과 서민경제가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한다. 고용을 창출하고 국민소득을 증가시켜 서민들을 부채의 덫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물론 경제저변을 살리고 양극화를 해소하여 균형성장의 근본동력을 창출한다.
이런 견지에서 우선 은행권은 경제를 담보로 잡고 국민소득을 이자로 빼앗아 가는 차압행위를 중단하고 기술과 신용을 담보로 기업과 서민을 일으키는 금융의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여기에 저축은행, 카드사, 증권사. 보험사 등 제2금융권도 정책을 바꾸어 서민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회생시키는 금융기관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더 나아가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 등 서민금융도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대출의 효율성을 높여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고려대 교수·전 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