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죽 쑤고 양쪽선 주워먹기
지난 6년간 MBC <무한도전>은 불가능을 몰랐다. 스스로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성이라 칭하는 이들은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도전했고, 성취했다. 하지만 타사 경쟁 프로그램을 연파하던 <무한도전>도 집안싸움만큼은 이겨낼 재간이 없나 보다. MBC 파업 여파로 <무한도전>이 5주째 결방됐다. 이전까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주말 예능의 최강자로 우뚝 섰던 <무한도전>은 재방송으로 전전하며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이어 KBS 2TV <자유선언 토요일>에도 덜미를 잡혔다. MBC에 이어 KBS의 파업까지 임박한 상황에서 이런 예능계 판도 변화는 올 봄 내내 계속될 전망이다.
4주째 결방이 이어지던 2월 25일 기준으로 <무한도전> 재방송의 시청률은 9.5%(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 같은 날 <놀라운 대회 스타킹>과 <자유선언 토요일>은 각각 13%와 9.6%를 기록했다. 멀쩡히 눈뜨고도 당하고 있는 셈이다.
MBC는 전통적으로 예능에서 강세를 보였다. 올해 <해를 품은 달>이 등장할 때까지 내세울 만한 드라마가 몇 없던 MBC는 예능으로 자존심을 세웠다. <무한도전>이 건재했고 <우리들의 일밤(일밤)> ‘나는 가수다’가 화제를 모았으며 <세상을 바꾸는 퀴즈>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등이 꾸준한 성적을 거두며 장수 예능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파업이 장기화되며 MBC 예능국이 흔들리고 있다. <무한도전> <우리 결혼했어요> 등 야외 ENG물은 결방됐다. <세상을 바꾸는 퀴즈> <놀러와> 등 스튜디오물은 부장급 비노조원 PD들이 대신 녹화를 진행해 결방은 막았다. 하지만 대타는 대타일 뿐이다.
파업에 동참 중인 한 MBC 예능국 PD는 “스튜디오물은 일정 포맷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녹화만 진행하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게스트 섭외부터 토크 콘셉트까지 담당 PD가 일일이 신경 쓰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때우기’식으로 결방을 막는다고 해도 프로그램 자체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단박에 알아볼 것이다”고 말했다.
파업의 여파는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위대한 탄생 시즌2>의 하락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위대한 탄생 시즌2>는 지난 2월 10일 생방송에 돌입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방송 체제로 전환되면 시청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위대한 탄생 시즌2>는 10% 초중반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방송된 시즌1이 생방송 첫 회에서 시청률 20%를 넘었음을 감안하면 가슴을 칠 만한 결과다.
당초 <위대한 탄생 시즌2>는 2월 3일 첫 생방송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파업의 여파로 한 주 결방됐고, 이는 치명타가 됐다. 트렌드가 급격히 변하는 방송가에서 결방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초래한다. <위대한 탄생 시즌2>가 결방 후 주춤하는 동안 SBS <일요일이 좋다-K팝 스타>는 더 치고 올라왔고, 케이블 채널 Mnet <보이스 코리아>까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MBC 예능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위대한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던 서창만 PD의 빈자리가 크다. 담당 CP가 연출을 맡고 있지만 매번 같은 패턴이 반복될 뿐,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는 주지 못하고 있다. 한번 돌아간 채널을 돌이키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MBC 예능국이 파업으로 인해 입은 손실은 엄청나다”고 토로했다.
MBC의 파업은 방송사 사정을 넘어 MC 판도에도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국민 MC’ 유재석에게 타격이 크다. 지금의 유재석을 있게 한 <무한도전>은 5주째 개점휴업이다. 녹화가 진행되지 않으니 출연료도 지불되지 않는다. 그가 회당 1000만 원 안팎의 개런티를 챙기는 것을 감안하면 금전적 손실도 만만치 않다.
유재석이 8년째 맡고 있는 <놀러와>도 요즘 진퇴양난이다. KBS 2TV <안녕하세요>와 SBS <힐링 캠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안녕하세요>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횟수가 더 많아지고 있다. <힐링 캠프>는 정치인 박근혜 문재인에 이어 배우 최민식 등이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시청률은 <안녕하세요>에 뺏기고, 화제는 <힐링 캠프>에 뺏기는 모양새다. MBC 예능국 관계자는 “<놀러와>의 부진은 파업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치고 올라가야 하는 상황에서 파업에 발목이 잡혀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더욱 뼈아픈 결과다”고 덧붙였다.
MBC <일밤>은 프로그램 시작한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두 코너 모두를 외주 제작사에 맡기는 초강수를 띄웠다. 하지만 MC와 아이돌 가수들이 시골 마을의 홍보곡과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농부가’와 남녀가 성역할을 바꿔 체험해보는 ‘탐험남녀’ 모두 기존 예능 프로그램을 혼합시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파업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급조된 기획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방송인 강호동의 컴백설이 솔솔 흘러나오면서 MBC는 더욱 답답한 상황에 놓였다. 얼마 전 강호동이 3월 이승기가 SBS <강심장>에서 하차한 후 친정으로 복귀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KBS는 강호동이 정신적 지주로 있던 ‘1박2일’의 첫 번째 시즌을 매듭지으며 연거푸 그의 모습을 담았다. 직·간접적으로 강호동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파업 중인 MBC는 강호동을 잡기 위해 손 쓸 여력이 부족하다.
KBS 역시 파업이 임박해 있다. 특히 시즌2를 시작하는 ‘1박2일’은 채 새 멤버들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결방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컴백 시점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호동 잡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애매한 상황이기는 MBC와 매한가지다.
강호동의 한 측근은 “아직까지 강호동의 컴백 여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강호동이 방송 복귀를 결정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MBC를 선택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긴 파업의 여파로 예능국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유재석이 MBC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 속에 강호동마저 타사 프로그램을 통해 돌아온다면 MBC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반면 SBS는 분위기가 좋다. 우선 <일요일이 좋다>는 희희낙락이다. 유재석이 이끄는 코너 ‘런닝맨’이 정상 궤도에 올라섰고, 생방송 체제에 접어드는 ‘K팝 스타’는 가파른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시즌2를 맞이하는 ‘1박2일’과의 정면 승부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1박2일’이 결방될 경우 손쉬운 압승도 가능하다. 또한 자체 민영 미디어렙을 통한 광고 영업에 나선 터라 시청률 견인을 위해 강호동 영입이 절실한 SBS 입장에서는 경쟁사의 파업이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