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물’로 간 바둑 크게 놀아라!
▲ 미국에 프로바둑이 생기며 바둑의 세계화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러시아에서도 지금 프로바둑을 기획하고 있다. 바둑 인구나 열기로 보아 유럽이나 러시아에서 먼저 프로바둑이 탄생될지 모른다는 예상도 있었으나, 역시 미국이 앞서는 모습이다.
세계바둑계, 특히 한·중·일은 미국에 프로바둑이 생기기를 학수고대해 왔다. 바둑 세계화에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미국에 프로바둑이 생긴다면 바둑보급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는 동시에 ‘바둑 시장’ 또한 폭발적으로 확장될 것이니까. 바둑은 전통적으로 예도의 한 분야지만, 지금은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스포츠화하고 있고, 예도든 스포츠든 요즘은 돈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시대이기에, 목하 성쇠의 갈림길에 서 있는 바둑에게 미국 시장이야말로 매력 넘치는 블루오션이 되리라는 기대인 것.
그동안 여러 나라의 여러 사람과 단체가 미국의 프로바둑을 위해 공을 들였는데,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우리 김명완 9단(34)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서도 유망한 신예였던 김 9단은 승부사로서 정점을 밟기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진로를 수정, 바둑의 신천지 개척이라는 새로운 꿈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가 올인했다. 미국의 프로바둑 시작이 김 9단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는 물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김 9단의 아이디어와 헌신적 노력이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유럽 바둑이 그렇듯 미국 바둑의 역사 또한 만만치 않다. 씨앗이 뿌려진 때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륙횡단철도를 놓는 데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들, 하와이 수수농장에 투입된 우리 동포들, 그들 중에는 분명 바둑을 두는 사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05년에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유태계 독일인 에드워드 라스커(Edward Rasker)라는 청년이 친구와 함께 바둑책을 접한다. 당시 두 사람은 체스의 고수였는데, 일본 바둑책의 영역본을 보고는, 나무로 만든 판 위에 두 사람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색깔의 돌을 놓아가며 승부를 겨루는, 처음 대하는 동양의 게임에 맹렬한 호기심을 느끼며 바둑에 빠져들었고, 그 신기함에 금방 매료되면서 동호인을 모으기 시작했다. 1934년에는 영어로 쓴 ‘바둑입문’이 출간되었고, 1935년에는 미국바둑협회가 생겼다. 1949년에는 바둑 소식지 ‘바둑 저널’이 등장했으며 1959년에는 바둑대회가 열렸다. 여기까지가 이른바 맹아기.
다소간의 우여곡절과 침체기를 겪은 후 미국바둑협회가 신장개업한 1974년부터 본격 히스토리가 쌓인다. 1977년에는 미국인이 일본기원에서 프로입단대회를 통과했다. 미국인 최초의 프로기사 제임스 커윈(James Kerwin)이다. 당시 마흔 살이 좀 안 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제임스 초단은 1980년 가을인가에 한국기원을 찾아 비슷한 연배의 한국 프로기사 김윤태 4단(작고)과 대국한 적이 있다. 김 4단은 춘천 바둑의 대부로 무지무지한 싸움바둑이어서 당연히 서양의 꽃바둑 제임스 커윈이 몇 합을 못 견디고 나가떨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제임스 초단의 승리였다. 제임스 초단 또한 물불 가리지 않는 싸움바둑이었다. 관전자들은 제임스의 혈관에는 서부의 황야를 누볐던 건맨의 피가 흐르고 있는 모양이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제임스 커윈이 다녀간 지 얼마 안 있어 이번에는 미국인 소녀가 한국에 바둑유학을 왔다. 당시 로스앨러모스의 핵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한국인 물리학자 김규태 박사가 아버지이고 어머니가 미국인인 재니스 킴(Janice Kim)이었다. 처음 올 때 열다섯 살이었던 재니스는 몇 년 동안 한국을 왔다갔다하면서 공부했고 초단을 딴 뒤에 돌아가 ‘사마르칸드(Samarkand)’라는 이름의 바둑책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는 등 지금까지 열심히 바둑 보급활동을 하고 있다. 한동안은 서양 유일의 여자 프로였는데, 러시아의 스베틀라나 쉭시나(스베타), 헝가리의 코제기 디아나 등이 한국기원에서 입단함에 따라 지금은 그저, 그러나 아직도 미국 유일의 여자 프로기사다.
1963년 캘리포니아 출생으로 1981년에 일본기원에서 입단해 지금 9단인 마이클 레드먼드(Michel Redmond)가 미국을 포함한 서양인 프로바둑 최고수. 실력도 상당해 LG배, 춘란배 같은 세계대회에서 8강, 4강에 오른 적이 있다.
이들 외에 미국에서 활동했거나 활동하고 있는 프로기사는 제법 된다. 우선 김명완 9단 전에 바둑의 고수이자 포커의 고수로 이름을 날렸던 우리 차민수 4단이 있고, 중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을 거쳐 한국에 정착해 10여 년 행복한 프로기사 생활을 보내다가 중국으로 돌아간 루이나이웨이-장주주 9단 부부도 미국에 머무는 동안 LA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바둑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열심히 모색했었다. 지금은 젊은 중국 남녀 프로기사 대여섯 명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미국 자체의 프로제도는 없었고 프로기전도 물론 없어서 이들은 출신은 프로면서도 아마추어처럼 각개약진할 따름이었던 건데 이제 프로제도가 생기고 프로기전이 만들어지면 이번에 입단하는 프로들과 함께 이들도 한·중·일·대만의 프로기사들처럼, 예컨대 ‘미국기원’ 혹은 미국 프로바둑협회 소속이 될 것이고 기전에 참가할 것이다.
미국에서 생기는 프로기전. 처음엔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른바 흥행이 되기 시작하면 모르긴 몰라도 미국 시장의 덩치로 보아 그 크기가 현행 한·중·일 기전의 100배쯤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기대 섞인 관측이다. 지금 세계대회 우승 상금은 3억 원 안팎. 그렇다면 300억? 글쎄, 설령 거기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일단 100억 소리는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미국바둑협회 홈페이지(www.usgo.org)에 들어가 보시거나 올 여름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다면 인디언 ‘체로키’의 고장 노스캐롤라이나로 한번 가보셔도 좋겠다.
이광구 객원기자
Tip 미국에선 바둑을 왜 ‘GO’라고 할까
‘GO’는 바둑이다. 한자 ‘바둑 기(碁)’의 일본 발음이다. ‘碁’는 ‘棋’와 같은데, 우리나 중국은 ‘棋’를, 일본은 ‘碁’를 주로 쓴다. 일본이 우리나 중국에 앞서 서양에 바둑을 보급한 탓에 서양에서는 바둑이 ‘GO’로 굳어졌는데, 최근 한국 바둑이 약진하면서 서양 바둑인들도 대개는 ‘바둑’이란 말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관계된 바둑행사에는 ‘바둑’을 쓰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GO’는 바둑이다. 한자 ‘바둑 기(碁)’의 일본 발음이다. ‘碁’는 ‘棋’와 같은데, 우리나 중국은 ‘棋’를, 일본은 ‘碁’를 주로 쓴다. 일본이 우리나 중국에 앞서 서양에 바둑을 보급한 탓에 서양에서는 바둑이 ‘GO’로 굳어졌는데, 최근 한국 바둑이 약진하면서 서양 바둑인들도 대개는 ‘바둑’이란 말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관계된 바둑행사에는 ‘바둑’을 쓰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